"원래 인생이 함정입니다."
한때는 방송 작가, 현재는 번역가, 미래는 작가?
포기하지 못해 한없이 초라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딴짓과 후회 전문가 노지양이 전하는 실패와 반전의 랩소디
번역가라는 직업을 선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교시절, 내 꿈은 무엇이고 미래 진로는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에 이런저런 직업들을 꽤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번역가라니!! 영어만 봐도 울렁증이 돋아서 지금도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반이라면, 의사소통은? 우리말이 아닌 제2 외국어를 우리의 정서대로 문맥에 맞게 또는 전문용어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원서를 해석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과정이 아니다. 번역을 하고 교정을 보고, 그렇다고 책이 다 출간되는 것도 아니지만 고생하고 난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세상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물론 노암 촘스키 책을 교정 한 번 없이 술술 번역한다는 언어 천재에 대한 전설은 나도 들은 있지만 나처럼 평범한 수준의 어휘력을 가진 대부분의 인내형, 노력형 번역가에게 번역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일의 무한 반복이다. 번역에 요구되는 집중력은 상상 이상의 수준이다. 여행이 주는 자극, 새로움은 집중도를 낮추고 번역의 질을 낮춘다. '번역은 멀티가 안된다'는 것이 번역가들이 모여서 하는 하소연이다. 마감할 때는 설거지조차 힘들어 집이 난장판이 된다. /p57
14년 차 번역가 노지양은 경계에서 방황하던 시간들을 단정한 단어들에 기대어 풀어나가고 있다. 14년째 번역을 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번역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자전거를 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글쓰기, 노지양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글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 쉽게 생각해왔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혀 쉽지 않은 일인데...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하겠지만 실제로 종이에 옮겨 적지는 않는다. 짧은 문장은 쓰지만 긴 문장으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번역을 일로 대해서만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저자와 책에 애정이 있어야 한 문장이라도 나아지고 완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싫어도 좋은 척, 재미없어도 재미있는 척하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다가도 한 문장만 사랑스러우면 '옳지, 역시 훌륭한 책이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번역했다. 10패 후 1승만 해도 감격하는 격이다. 번역할 때만은 내가 번역하는 이 책이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유일한 스포츠 팀인 것처럼, 절대 버릴 수 없는 운명의 연고지 팀인 것처럼 사랑해야 했다. /p83~84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 책과 문장으로 만났던 그림과 공간과 음악과 도시와 사람이 희미한 모습으로 스치듯 지나가면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웃으며 보내준다. 번역가라는 직업으로 똑똑한 사람, 식견이 넓은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내면이 풍부한 사람은 되었다. /p76
번역가의 에세이라 조금 더 호기심이 일었던 건, 알지 못했던 분야의 흥미로움이 커서였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번역서를 읽으면서 번역자들의 이름과 번역 후기도 챙겨보게 된다. 원작자에 가려진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그 책을 쉽게 읽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선호하는 번역자들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연말엔 좀 쉬엄쉬엄 책도 읽고, 정리도 해보겠다고 했는데, 생각지 않게 읽을 책들이 몰려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읽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그만하면 너도 글 쓰고 싶어지지 않아? 써봐..'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난 에피소드가 별로 없어서 쓸 이야기가 없다고... 그러니 동생 왈 '그럼 언니가 읽는 그 많은 책들의 스토리엔 뭐가 특별한 사건들만 있는 거야? 그것도 그냥 그 사람들의 일상일 거 아니야...' 하는데 순간 띵~ 어쩌면 말로는 난 글쓰기는 못하니까 잘 쓰인 글만 읽겠다고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한 자락쯤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쓰고 싶다."라는 가사로 된 99절 노래를 부르며 주변인을 괴롭혔던 사람이 어떻게 천천히 문서창과 수첩을 열게 되었는지, 만성 욕구불만이었던 사람이 내면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었는지 이 책에 넘칠 정도로 담겨 있으니 혹시라도 나와 같은 분이 있다면 손을 살짝 들어 하이파이브 하면서 읽어주면 좋겠다. 머리로만 책을 쓰던 우리 중 한 명이 다행히 60세가 되기 전에 책 한 권은 썼다는 걸 축하해주시면서. /p9 노지양 작가님 출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halarious에는 '웃기다'라는 뜻도 있지만 'merry, cheerful'즉, 즐거운 기분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나 같은 ' halarious moment' 수집가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더 웃기 위해, 남을 우시고 또 내가 웃기 위해, 기왕이면 밝고 빛나는 하루를 위해 오늘도 소재를 찾아 헤맨다. 뭐 웃긴 일 없나? /p182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