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관 가기 애매해서 방구석 미술관이다.
생각보다 꽤 맘에 드는데 한 작품을 내가 원하는만큼 감상할 수 있게 되니 작품을 좀더 '잘' 감상하고 싶어져서
화가의 생을 다룬 영화도 보고 틈날 때마다 모아둔 미술사 책도 보고 있던 차에 #드가
믿고 보는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내년 여름에 미술관투어 하려고 클림트 사놨는데(제일 판매부수가 많다고) 코로나 터져서 언제 갈 수 있을지 묘연하다.
여행X예술가라는 컨셉이 신박해서 여행이 끝난 후든 여행을 준비하든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리즈가 지속은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니까 나름 팬이지만 돈이 없어서 모으지 못한 것 뿐이군,하는 생각을 했다.
서점 갔다가 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이런 거 될 리는 없는데 안되면 돈 주고 사지,뭐 하고 신청했다.
이런 의무적인 느낌을 싫어하지만 드가는 괜찮지 않을까. 모네, 고흐, 드가... 대중적인 작가들이고.
덜컥 됐다. 책선물받은 느낌.
인상주의 화가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드가도 왠지 알고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책을 읽으며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고흐나 마크로스코 급의 서사를 가진 화가 같지는 않았다.
미술 공부하러 이탈리아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고 금전적인 이유로 작품을 하지 않아도 됐던 금수저기도 했고(초상화의 노신사가 그의 조부)
열정이 이글거려 미쳐버린 작가도 아니었기에 오랜 세월 작품활동을 하고 요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저자인 #이연식 작가가 미술사에 애착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1. 파리 여행 정보에 충실하려 애쓴 느낌, 그리고 이제 언제 갈 지 알 수 없는 파리의 전경이 시원하게 두 페이지에 실려 있는 것.
루브르가 피라미드를 품은 것은 일동의 신성모독, 마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이교도의 신에게 영혼을 맡긴 것과도 같다. 과거와 현재, 유럽과 비유럽의 결합이다. 루브르는 특정 시기의 유럽 문화를 대변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역사, 미술사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의 역량에 영향을 많이 받아
내게는 믿고보는 전원경 작가여서 이미 그 작가에 대한 팬심이 있기 때문에 드가나(발레리나 아냐)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안망했으니까 계속 나오겠지)보다 저자가 의심스러웠는데 간간히 프랑스 대문호의 작품 언급도 좋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흐름도 좋았다.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회화의 숨은 제작과정들을 비전공자가 읽을 때 설명한 것도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유화의 경우, 캔버스에 갈색을 칠하고 시작하는데 드가는 그렇지 않았다는 소소한 것도 그냥 재밌었고
미국인 여성 화가를 인상주의화파의 모임에 받아들이는 사람이면서도 드레퓌스 사건에서는 강경한 쪽에 서있다는 것도.
인간은 역시 그 속에 있을 때는 하나의 면으로 평가하기 어려운데 지나고 나면 참 쉽단 말이지.
내게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가였다.
그의 그림은 발레리나의 튜튜같이 화사했는데 어느날 책을 읽다가 그 시대 발레리나들은 하층민이어서 고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그게 새로웠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뇌에 차서 자기 귀를 잘라버렸다거나 우울해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지 않아도 어떤 작가에 대해 안다는 것은 그림을 풍성하게 해준다.
하루에 한 작품씩 구경하며, 그가 이런 과감한 구도를 쓴 것과 자신의 주변을 그린 것, 노동하는 여성들을 그대로 그린 것을 찬찬히 생각한다.
언젠가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지긋이 오래 감상할 수도 있겠지.
이 책이 그 시작.
드가는 역설적인 예술가이다. 인상주의 그룹의 핵심이었지만 가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또 많은 예술가가 기회만 있으면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려 했던 것과 달리 드가는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기에, 그는 그런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