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의 책을 챙겨볼 정도는 아니고 소설집의 제목들이 너무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김금희가 말했지,라고 오해할 만 해서
건너뛰었던 책이다.
나는 청년이 혼자 강당 입구까지 왔으니까 거기까지 안내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시인 J가 다가가 청년에게 도와드릴까요, 물었다. 어디까지 도와드리면 편하실까요?라고. 나는 J의 태도에 좀 놀랐고 이내 부끄러워졌는데, 지하철역까지 함께 가줬으면 좋겠다고 청년이 조심스럽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강당 입구가 아니라 지하철역까지 함께 가줄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청년이 더운 여름에 조금 덜 헤매게 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내가 여기까지 해주겠다 미리 선 긋지 않는 선의. 그러한 선의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배어나올 수 있는 것.
-여전히 배우는 날들 78~79쪽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프로 선긋기러인 나로써는 뜨끔한 곳이 있었고 내가 이 책을 예단했구나,싶었으며 왠지 저런 글들이 많다면 자주 꺼내 읽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네서점 에디션을 애타게 찾았으나 삼고초려 끝에 그냥 포기하고 온라인으로 샀다.
빛과 명암만 구별할 수 있고 아직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없는 준이에게는 그런 작은 변화가 무척이나 놀랍고 드라마틱하며 화려한 풍경의 연쇄였을 것이다.
머리도 감지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만나자는 사람에게 말하자 "저도 그렇게 나갈게요"하는 답이 돌아와 이상하게 울컥하던.
무서워할 준이를 예상 못하고 어두컴컴하고 괴성이 흘러나오는 공룡 테마파크로 데려가 결국 울리고 만 초보 이모,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준이에게 안 돼, 작가가 되면 안 돼,하고 다분히 자기 투사적인 반대를 하던 이모,(후략)
-어쨌든 오늘 즐거웠어요
조카를 보러 가는 길에 읽은 이제 사춘기가 됐다는 작가의 조카이야기는 즐겁고 따스했는데 정작 나는 조카에게 엄마 이리와, 아빠 이리와 하고 배척을 당하고 마상을 입었던 것이 초보 이모의 인생.... 나도 너보다 네 엄마가 힘들까 봐 간 거거든!!
아무튼 이런 글들은 작가도 가족같고
그는 책에 자료 사진이 필요하면 편집자가 나가서 직접 찍어라, 필요하면 자기 자신이 사진 모델이 되어라, 하는 식으로 다분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편집자의 업무를 하염없이 느리는, 늘리고 늘려서 대체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질 틈도 없이 부연 안개처럼 야근과 격무가 노상 깔려 있는 출판사의 노동조건에 한껏 힘을 실어주는 말을 강조했다.
이런 걸 보면 비록 출판업계 종사자가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같은 직장인 같기도 했다.
영화에서 디킨슨은 종교가 모든 일상을 통제하는 시대에 맞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살기 위해 분투한다. 교회에 나가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부하고, 하나님에게 구원받고 싶느냐는 교사의 물음에 "나는 죄를 '느낄'수 없어요. 자각하지 못하는 죄를 어떻게 회개하죠?"하고 항변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다룬 <조용한 열정>이라는 영화는 이 산문을 읽지 않았다면 존재도 몰랐을 터였다. 아니 에밀리 디킨슨 자체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역시 작가는 작가를 덕질하네요.
<매기스 플랜> 같은 영화의 감상평도 있었는데 영화평이 꽤 되어 몇몇 영화들은 표시해두었다. 왓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