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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아름다운 집

[도서] 아름다운 집

손석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일전에 MBC100분 토론에 패널로 나오신 이 책의 저자인 손석춘 새사연 원장님께 토론과정 중 그의 발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이메일로 여쭌 적이 있다. [손석춘 원장님께 보낸 메일(MBC100분 토론을 보고...)]

이 책은 그 이메일의 답장을 통해 알게된 책이다. 이 소설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을 읽다보면 손원장님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도 볼 수가 있는데, 사실 그것 역시 굉장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따라서 과연 누가 그 역할일까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겨가며 결국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에서는 '아, 중요한 것은 나의 궁금증 자체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 하나와, 1938년 부터 시작하여 혼란스런 해방정국의 남과 북의 현실을 거쳐 마지막 생을 마감한 1998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지식인의 60여년 동안 변함없이 온 몸을 던져 살아간 혁명의 길, 그 지식인의 철학과 인식이 바로 손원장님의 그것과 동일시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내 책읽기 출발점의 궁금증을 정리 했다.

 

이진선...

이름 자체도 생소하다. 워낙 지식이 없는 내 탓이겠지만, 흔히 해방정국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정파별 대표적 지도층이었던 박헌영,여운형,김구 등의 이름과 비교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요즘 '비주류'와 '비주류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는 듯한데, 한참 그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 나의 독서는 함께 이루어졌다. 주인공 이진선 역시 철저히 비주류의 삶을 살아갔기에 그 단어는 매스컴에서 사용되던 그것과 함께 묘한 느낌을 내게 던져주곤 했다.

 

한겨레에서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손석춘에게 중국 연길에서 걸려 온 전화로 부터 책은 시작된다. 연길에서 걸려온 어느 노인의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기록'을 전달해 주겠노라는 제보...평상시 기자는 그러한 제보를 많이 받지만 막상 취재시에는 하찮은(?) 것들이 많았기에 그 제보 역시 그저 그렇게 세간의 기억속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많았으나, 손석춘 기자는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 바로 연길로 향하고 그 노인을 만나 무수히 많은 기록이 적힌 수첩 보따리를 받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노인으로 부터 받은 수첩 속 일기의 내용 그대로를 수정없이 옮긴 글이다.

그 일기 속에는 1938년 부터 기록이 시작되는데 그 당시 연희전문대 학생이었던 이진선이라는 한 지식인이 남한-일본-남한-북한에서 살았던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고뇌.. 해방 후 북한 사회에서 이루어졌던 공산주의세력간의 권력투쟁, 진정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숭고한 이념이 아닌 또다른 수정주의로의 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유혹이나 개인적 안락함과도 타협하지 않은 1998년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도 진정한 혁명가로서 살아간 그의 삶은 그저 감동스러워만 하기에는 너무나 애절하다.

 

아름다운 집.

책의 제목은 6.25전쟁 당시 북에서 미군의 폭격을 맞고 사랑하는 그의 아내 여린과 함께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 역시 사랑하는 그의 아들 서돌이와의 어느 날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혁명하러 가느냐는 다섯살 박이 아들의 물음과 혁명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아버지의 되물음에 천진난만한 다섯살 박이 꼬마 서돌이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 살 수 있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맞죠?" 

결국 이진선의 삶은 그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으며, 그 안에 깃든 아내 여린과의 애틋한 사랑과, 아내와 아들이 폭탄과 함께 사라져 버린 뒤 알게 된 최진이와의 가슴아픈 사랑 역시 사랑 그 자체의 관점으로만 읽혀지지 않는다.

 

언제나 느끼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아픈 우리의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채, 어제의 독립군 토벌대가, 서민을 괴롭히던 악랄했던 순사가, 미군정의 통치 편의성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며 그들의 비호아래 오늘의 군장성과 경찰간부, 그리고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위정자와 사회 지도집단이 되어 또다시 조선민중들 앞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광경을 그저 가슴으로 성토하며 오늘날까지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대사. 그 과정 속에는 여러가지 노력들이 있었고 발전도 꾀하였을 것이나 2009년을 살아가는 현재에 있어서도 아직도 '척결'이란 단어를 당당하게 내놓을 수 없음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반면에 북한은 적어도 친일파 척결(토지개혁까지 포함된)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따라서 80년 광주민주항쟁 이후 미국의 본질을 알아차린 남한의 청년학생과 수많은 양심세력들이 북한정권의 정통성이 남한의 그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에 더 많은 끌림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러한 정권의 정통성이 개인의 우상화와 권력세습이라는 지극히 봉건적인 낡은 세계관의 형태로 사회체제가 작동된다는 것에 당연히 그 누구라도 찬성할 수 없을 것이며, 게다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추구한다는 국가에서의 그러한 행태는 더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진선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일제치하에서 부터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대내외적으로도 남북한을 통합하여 유일한 조선공산주의 운동의 수령임을 인정받은 박헌영과 같은... 본인을 포함한 남한 출신의 혁명가들이 하나둘씩 숙청당하고 진정한 '아름다운 집' 건설이 아닌 소위 주도권의 쟁탈을 위한 활동으로 변질되는 현상들...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우상화 작업과 세습화 작업을 더해가는 현실들...많은 고민과 회의 속에 스스로 살아 온 삶에 대한 그의 고뇌는 실로 읽는 이의 가슴을 움켜쥐게 만든다.

 

처음 책을 배송받고 나서 4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위에서 말한 중국 연길 노인의 전화로 시작되는 첫 머리를 넘기면서 그 부담은 궁금증과 안타까움, 애절함과 아름다움으로 바뀌어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두운 시절 혁명가로서의 삶이기에, 때로는 기록 자체가 나중에 발각되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기에, 중요한 순간 또는 일정한 기간동안 아예 기록이 없기도 하다.

일기의 형식이기에 특히나 내가 성인이 되어 비판적 사유가 가능했던, 실제 몸소 느끼며 살아온 90년대의 남한 실상을 이진선의 눈으로 그려보는 것도 퍽이나 흥미로웠으며, 책 속에 등장하는 낯익은 이름들...이를테면 윤동주, 황장엽...등의 청년시절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다 살기좋고 윤택하며, 인간적인 세상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고통받고 힘든 세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무슨 'ism'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살기좋고 윤택한,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념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거론하기란 참으로 거북하기 그지 없다. 그동안 주구장창 권력과 정치권의 방패막으로 정략적으로 이용되어 온 소위 '빨갱이론'과 역시 끊임없이 세뇌당한 반공주의 교육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뭔가 게림찍하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또한 경제력의 차이를 보이면서 자연스레 그 부분만을 가지고 우리의 시선 아래 놓고 내려다보는 입장이 은연중에 마음속에 있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지속적 논란이 되어 온 북의 인권유린 문제, 핵무기와 또다시 불거진 권력세습문제, 체제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현재의 북한은 아무리 그 사회,정치적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고 반대한다 할 지라도, 손석춘 원장님의 말씀대로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대화하고 하나로 뭉쳐나가야만 하는 유일하고 대등한 상대방이다. 적어도 영구 분단의 한반도 체제를 고착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책이 가져다 주는 고마움이다.

'아름다운 집' 이 한 권의 책은 그 선정에서 부터 읽고 느끼고 쓰기에 이르기까지 더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 주었다. 

다른 이들에게 다함께 같이 읽어보자는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불우한 현대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혁명가로서 온 생을 살아간 많은 이들 중에서 '이진선'이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인의 깊은 성찰과 절여오는 가슴아픔과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또 한편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북한의 해방이후 현재까지의 일련의 모습들을 남한출신 공산주의자 '이진선'의 눈으로 보다 냉철하게 살펴보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진정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어줍잖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손석춘 원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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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

    주인공 '이진선'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또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네요....

    2009.06.12 20:02 댓글쓰기
    • 아바나

      네..우리나라 역사중에서 광복후 격동기에 벌어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북의 실상도...
      한 지식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혁명가로서의 삶과 가슴아픈 사랑이 펼쳐지는 와중에 시대적 상황이 자연스레 언급되니까...

      2009.06.12 20:08
  • 책에봐라

    이런 책이 있는지 몰랐네요^^ 소중한 정보입니다*^^*

    2009.06.13 01:12 댓글쓰기
    • 아바나

      ㅎㅎ 소중한 정보라고 하시니까 기분 좋네요~^^

      2009.06.13 02:21
  • 이거 또 가슴아픈 역사네요.... 불편한 역사를 간직하고 갈라선 조국에 실상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던 그분의 또다른 시각...느낄점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2009.06.13 03:08 댓글쓰기
    • 아바나

      가슴아픈 현대사도...북의 주도권 다툼도....이진선의 끊임없는 고뇌도....

      2009.06.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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