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는 보통명사는 부를 때마다 참으로 사랑스러움과 애절함이 함께 느껴지는 단어이다. 아마도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 속에 녹아들어 있는 희생이 있기에 더더욱 그러함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책 속에는 또 다른 우리들의 영원한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참으로 순박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과격한 투사의 삶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가 버티고 서 있다.
이 책은 저자
이 소 선.
이 세 글자를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들의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 소외받는 이의 어머니로 대변되기도 한다. 그녀는
그녀가 벌써 여든 살이 되었나 보다.
이젠 다리가 아파서 그렇게 마다하던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나이, 어쩌면 멀지 않은 죽음을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
책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가슴 절여옴에 울컥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더더욱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어제의 아무것도 모르고 순박했던 그저 시골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들, 딸들을 오늘의 과격하고 열렬한 투사로 만드는,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라는 것이다. 특히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투사보다 더더욱 격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소선은 아들의 죽음을 통해 본능적으로 의식화 되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참으로 눈물겹다. 오직 아들이 바라던 노동조합 건설과 인간다운 노동자의 삶을 위해…. 그리고 드디어 청계피복노조는 합법화 되고 그 승리의 뿌듯함도 만끽한다.
나는 여기서 우리 나라의 노동운동 과정과 이소선이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 등을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노동자의 어머니였던 그녀가 진정한 노동자의 삶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몇 번의 투옥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몸 바쳐 노동자를 위해 살아간 그녀의 꼿꼿한 인생역정에 진정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녀의 생각과 사상은 참으로 올곧다. 원칙을 알고 그 원칙에 근거하여 모든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한다. 누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서가 아니다. 그녀의 삶 속에 그 현명함이 묻어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때문에, 청계노조의 위원장 자리도 아들과 함께 일한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그녀의 사상과 의식 부분이었다. 그녀의 삶을 바라보기 전에는 그저 그냥 그런 모양이지 하고 생각했던 내 스스로가 한 없이 부끄럽다. 그녀의 사고와 말과 행동간에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그 일치성은 그 어떤 진보 정치인과 유명한 운동가 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말 하면 경망스러울 지도 모르겠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너무 많으시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말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래도 그동안 비록 불협화음과 부작용이 발생되었을지언정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온 노동계의 모습이 최근 몇 년 동안 그 사이에서도 갈등이 증폭됨을 느낄 수 있었고, 현재는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 마저 위협받고 있는 오만한 정권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현상을 그녀가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의도가 되었건, 그렇지 않았건 노동자의 삶을 위해 한 평생을 몸 바쳐 살아온 우리의 어머니. 이소선.
※ 더불어 이 책을 권해주신 분께 더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