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그 제목만 보고서는 그리 손이 가지 않을 그러한 책이다. 의례히 다른 스타벅스 관련 서적과 같이 그 색다른 마케팅에 관련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고, 초국적 기업 중에서도 마케팅으로 유명한 스타벅스의 한국시장내 고가정책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으며, 고가정책에 따른 그 초과 이윤은 커피 농장의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보다는 고스란히 스타벅스의 몫이라 생각했기에 그다지 썩 읽고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이유는 비록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좋은 책들을 잘 선정해서 읽고 계시는 성균관대 김혁 교수 때문이다. 김교수님은 회사에서 예전에 부장급들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MBA과정의 담당 교수이며, 그 과정이 끝난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교육생들에게 이메일로 좋은 책들을 본인의 감상과 함께 소개하고 계신다. 나는 예전에 올린 바 있는 포스팅 (그래, 그래서 자네는 좌파인가?)에서 언급한 회사에서 업무와 상관없이 '책'을 매개체로 하여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상사를 통해서 김교수님의 추천서를 함께 공유했었고, 이 책 또한 그러한 이유로 읽게 된 책 중의 하나이다.
책의 내용은 최고의 엘리트코스의 길을 걸어온 미국 굴지의 한 광고회사 중역이 해고를 당하고, 그 이후 설립한 광고 컨설팅 회사의 파산과 함께 60대 중반에 이르러 이혼까지 하게 되면서 개인적 삶에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스타벅스 브로드웨이점에서 말단 파트타임 점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인간적 삶을 새롭게 깨닫고 스스로의 삶에 일대 전기를 맞게 되는 어찌보면 뻔(?)한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 마이클 게이츠 길의 광고회사 경력이 말해주듯 글이 아주 깔끔하고 매끄러우며, 이는 감동적 내용과 더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도중에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이 책이 내게 감흥을 불러 일으킨 이유는 한 스타벅스 매장내에서의 따뜻한 인간미를 아주 리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동안 미국내 백인의 부유층이 누리고 있던 사회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었고, 또 백인우월주의로 인해 그의 부하직원으로 입사한 한 흑인여성이 특별한 내세울 것 없는 흑인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광고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은 일도 있었으나, 정작 그가 파산후 일을 찾아 고민할 때, 배려의 마음으로 직장을 제공해 준 이는 다름 아닌 매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흑인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그동안 백인 중심의 오만한 생각을 갖고 살아왔음을 깨닫기도 한다.
뉴욕의 한 작은 스타벅스 매장...
60대 중반의 광고회사 중역이라는, 스타벅스 말단 점원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경력을 지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매장 바닥과 화장실 청소 밖에 없다는 사실에 답답해하며, 또 어느 날은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다 말끔한 정장을 빼입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제는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고 비천한 서비스업 종사자인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며 한없는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결국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가 비참한 오늘의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한다.
비록, 스타벅스 매장내 주변 동료들은 모두 20대이며, 혼자 60대의 힘없는 노인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생각해 주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으며, 이내 매장일에 적응하고 드디어 자신감없어 하던 카운터 앞에서 돈을 만지며 고객을 대면하는 일을 맡았을 때, 아빠가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딸 애니와의 만남은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참 잔잔하다. 그리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삶의 추락이 예고없이 다가왔을 때, '과거는 짧게, 미래는 길게'라고 되뇌이며 '오늘'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는 의미있고 감동적인 한 백인노인의 이야기이며, 그 주변의 크리스탈이라는 스타벅스의 매장 관리자인 젊은 흑인여성은 참으로 인상적인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스스로의 사회적 삶에 위기가 찾아 올 것이며, 그것이 경제적 위기이건, 그밖의 다른 위기이건 간에 우리들의 삶은 항상 그 위기를 뚫고 헤쳐나가야만 한다. 어쩌면 참 괴롭고 슬픈 삶일 수도 있겠지만, 전직 광고회사 중역이며 스타벅스 매장의 말단 점원이 행한 그 삶의 위기는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사람들과 함께 최고의 스스로를 발견하며 극복해 나갔으며 그 과정은 새로운 희망과 열정을 갖게 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사실 나는 스타벅스 한번도 안가봤다. 근데 이젠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유심히 둘러보고 싶다. 그 안에서 마이크가 분주히 일하고 있는 모습과 책속에서 묘사하고 내 머리속에 상상했던 그 작은 공간의 광경을 되뇌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