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키 마사오.
나는 그의 창씨개명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 시절 창씨개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빼앗기는 것, 혹은 얻을 수 없는 것을 비교해 본다면, 지금의 시각으로 어찌 그러할 수 있었느냐! 를 말하는 것은 별로 공정치 못한 것 같다. 그 시절 모든 이들은 대일본제국이 전쟁에 패하리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고, 그보다는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를 지금의 입장에서 뭐라 말한다는 것이 조금 불공평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그래서 창씨개명을 한 자들에 대한 비판보다는 끝까지 꿋꿋하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싸운 이들을 칭송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정희의 창씨개명 역시 조금은 관대하게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 박정희로 한정 지을 때의 이야기이다. 오늘의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는 한국사회에서 아주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름이다. 과정이 어찌되었건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지금은 그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의 딸 또한 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다카키 마사오의 개인적 야욕으로 점철된 삶은, 당시 존경받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될 만한 교사직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거쳐 황국의 신민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는 그렇게 출세하고 싶어했고 권력을 누리고 싶어한 인물이다.
다만, 지금에 있어서 그의 공과를 가려서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둥,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고 생가를 기념하고 기타 등등 그를 우상화 하는 것은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하더라도 누구나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문제이며, 정권 탈취와 유지를 위해 저지른 수많은 정치적 살인과 만행은 나열하지 않더라도...백번 양보해서 조국의 근대화, 경제적 발전의 초석을 이룬 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판단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굴욕적 한일수교와 아무 명분없는 전쟁인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들어 온 자본을 토대로 대기업 위주의 중화학공업과 수출산업의 육성은 분명 경제적 파급효과와 성장을 이룬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며,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한 채, 고향의 부모님을 위해, 동생들을 위해, 생업을 짊어져야 할 처지이기에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죽도록 일해 온 우리들의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은 고스란히 자본가와 국가의 뒷거래와 같은 몫으로 돌아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전태일 열사 역시 그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그 한몸 불살랐으며, 우리의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이렇게 죽어라 고생한 민중들의 가슴 아픈 삶이 뒷받치고 있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런지 모른다.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에게 손을 빌어 차관을 얻어 종자돈을 마련했고, (강제징용, 위안부 등 모든 전쟁의 개인적 배상권 마저 박탈하게끔 한 졸속 협상) 베트남 파병을 통해 달러를 얻어 역시 종자돈을 마련한,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전장터에 흘린 피의 댓가,(미국 군인 1명을 전투에 참가시키는 비용의 1/5 도 안되는 돈이면 한국군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그토록 참전을 종용했단다..) 이러한 민중들의 피묻은, 가슴 아픈 모든 사연들을 등에 업고 축적된 자본이란 말이다. 만약 그렇게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리를 지속한다면, 저 일본이 말하는 을사늑약 후,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여타의 일들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단 말인가!
나는 다카키 마사오를 옹호하는, 아니 숭배하는 자들의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리고 대놓고 박정희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매스컴에는 그가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긴, 이명박 지지한다는 사람도 주변에서 한번도 본 적 없지만 지지율은 내려가질 않더라.)
과연, 우리 국민이 멍청해서 그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여기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앞,뒤 사태파악 못하는 멍청한 자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토록 목에 핏대 세우는 까닭은 그들의 역사, 그들의 조상(?) 역시 다카키 마사오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광복 이후에도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왔으며 또, 그 안락한 상태 그대로 지금에 이르고 있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작금의 이러한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그 독재자의 딸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그녀는 어찌되었든 현재 여당의 비중있는 인물이며, 차기 여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이기 때문이다. 다카키 마사오에 대한 향수(물론, 경제적인 측면)는 그녀에 대해 나쁘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다카키 마사오가 개인적 야욕에만 불타던 독재자였기에 그녀의 딸마저 비판받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의 개념일 것 같아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한 누구의 딸로만 치부할 수 없는 암울한 독재시기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담당했던 자로서, 그가 지닌 사상은 결코 우리 민중의 삶을 위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병행할 수 없는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화 박정희는 편협한 책이다. 적어도 다카키 마사오를 존경하는 많은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하다. 비록 편협하기 짝이 없는 책이지만,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져보고 만약 거짓이 아니라고 한다면 역시 한 인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쉬이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장기 집권, 영원한 집권을 위해 내걸었던 소위 '유신헌법'의 내용을 열거하며 그러한 판단의 논거로 활용해 보련다. 유신헌법의 내용 뿐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비화들을 통해 그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1.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로 뽑는다.
2.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연장한다.
3.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으나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
4.대통령은 긴급조치권 등 초헌법적인 권한을 갖는다.
5.대통령이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및 법관의 임명권을 갖는다.
보라.
위 내용이 그가 누리며 끝까지 최고 통치자로서 영위하고 싶어하던 권력의 내용이다. 이는 헌법의 내용이니 누가 흘리는 말도 아니고 조작한 것도 아니다.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의 소유자라면 저 다섯가지 헌법의 내용만 보더라도 손쉽게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 이래도 우리는 여타의 과는 덮고서 그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섬겨야 하겠는가?
독재자 박정희의 개인적 야욕과 정치적 연명을 위해 아무런 죄없이 숭고한 목숨을 져버려야 했던 1,2차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민청학련사건, 민족일보 조용수사장, 장준하 살인사건 등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 그 밖에도 명분없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어버린 분들과,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척박한 환경에서 묵묵히 땀흘려 노동하다가 산화해 가신 모든 노동자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고개 숙여 삼가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