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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도서] 남쪽으로 튀어! 2

오쿠다 히데오 저/양윤옥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오쿠다 히데오!

그는 내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회사 화장실에서...오늘 하루종일 이 책을 품고 다녔다. 어제 1편을 다 읽고 나서 더더욱 발동걸려 버린 내 궁금증은 도저히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참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리도 재밌고, 유쾌하고, 귀엽고 발랄할까? 책 속의 내용이 전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선함을 독자에게 안겨주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쿠다 히데오, 이 양반 진짜 마음에 든다. 나 역시 팬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책을 읽고나서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니 오쿠다 히데오를 만나는 내 첫 번째 책 선정이 탁월했음을 혼자 뿌듯해하고 있다. 혹시 가장 유명하다는(일본의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우리 나라에 가장 먼저 소개된) <공중그네>-물론, 이 책도 읽어볼 생각이다-를 먼저 읽었다면 어쩌면 지금 내가 갖는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흠모의 마음이 덜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글 잘 쓰고 재밌는 작가로 오해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머나먼 남쪽 섬, 따뜻한 이로오모테 섬으로 이사온 지로의 가족은 바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모습은 도쿄에서의 그것과는 180도로 변신한다. 이건 무슨 어라? 저거 우리 아버지 맞아? 하고 감탄할 정도다. 맨날 식탁 앞에 앉아서 귀를 후비거나 발톱을 깎거나 콧털을 뽑는 모습에서 무슨 고기가 물 만난양, 우물물을 퍼 나르고, 밭을 갈고, 집을 수리하고, 고기를 잡으며 정말 쉴 틈이 없다. 지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자빠질 지경이지만, 전기를 설치할 것이냐는 동네 아저씨의 물음에 가족 누구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그런 것은 필요없소!'라고 단번에 답해 버리는 아버지 말에 역시 또 한번 속 뒤집어 지고야 만다. TV도, 인터넷 게임도...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도쿄와는 완전 딴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무 거리낌없이 마루바닥에 앉거나 같이 밥을 먹거나 집안 여기 저기를 돌아보다가 먹을 것이며, 재봉틀이며, 심지어 경운기까지 온갖 것들을 가져다 준다. 대수롭지 않은 단 한마디만을 남기며..."어, 여기 OO가 없네, 우리 집에 OO가 남으니까 그냥 여기서 써~" 섬에서 나지 않는 야채와 몇몇 물품들만 뺀다면 돈 들어갈 일도 없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러한 것이 섬 주민들에게는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 서로들 모두 그렇게 사적 소유의 개념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법도, 국가의 보호(?)도 필요없을 그러한 곳이다. 지로와 모모코는 어느덧 TV 없이도 섬생활을 즐기게 된다. 푸르른 바다와 경치좋은 자연환경...지로와 모모코를 합해 전교생 7명 밖에 되지 않지만, 아버지의 묵시적 합의하에 이젠 학교도 가게 되어 친구들도 사귀었고, 동급생 나나에와의 핑크빛 설레임도 느끼며, 또 애완용 염소 멤셍이도 생겼고, 엉뚱하지만 맘씨 좋은 캐나다 여행객 베니와도 친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로 가족의 행복도 역시 오래 가지 못한다. 힘겹게 지어놓은 지로의 집이 리조트 건설을 위한 대기업에 의해 철거될 위기에 처하고 아버지는 이에 온 몸을 던져 막는다. 결국 자본과 공권력의 힘에 지로의 보금자리는 처절히 부숴지고 말지만, 아버지는 경찰로 부터 탈출하여 어머니와 함께 또 다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역시 전설속에 나오는'파이파티로마'섬으로 향한다. 물론, 지로와 모모코, 그리고 나중에 섬으로 건너온 누나에게 조만간 데려 올 것을 약속하며....

 

아버지 때문에 늘 맘 고생이 심했던 지로는 또래 아이들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 예컨대 학교를 가고 싶은데 아버지가 못가게 하면 어쩌나...제발 다른 아버지처럼 넥타이에 양복차림으로 어디가서 일을 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등등 가뜩이나 개인사 걱정많은 초딩 6학년의 머리 속은 언제나 복잡하기만 하다. 이를 바라보는 나 역시 참 한숨 푹푹 쉬게 만든다. 그러나, 아버지의 섬 생활을 통해 바라 본 아버지의 모습은 굳이 똑같은 그러한 성인이 되기는 싫지만, 왠지 닮고 싶고 든든하고 멋져 보이기까지 하다.

사실, 아버지는 그 옛날 과격파 운동권인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 동맹(혁공동)'의 전설적인 투사였고, 어머니 역시 운동권의 여전사였다. 하지만, 운동권 내부의 분파주의와 권력다툼에 염증을 느껴 자진 은퇴했고 지금껏 아나키스트로서 홀로 투쟁의 삶을 살아 온 사람으로, 체질적으로 통제와 억압을 거부하며 자유와 자급자족의 삶을 희망한다.

그는 과격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결코 세상을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남들을 속이거나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 나서지 않았고, 단지 자유롭고 간섭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했을 뿐이다. 그것이 잘못이나 죄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어쩌면 이 세상이 그들 부부와 별로 맞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섬사람들이 모두 반대하는데, 그 대기업도 곧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까? 라고 묻는 지로에게 현실에 있어서 이 세상은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지로에게 명확하게 설명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 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발 한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한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시종일관 키득거리며 그 유쾌하고 발랄한 문체에 쏙 빠져들었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의 긴장감, 아버지의 행동과 거칠지만 그가 내뱉는 감동적인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 뭉클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웃었다가도 마음이 짠~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소설 읽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내게 오쿠다 히데오는 정말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분명 그의 소설을 더 챙겨 보리라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나 할까... 그의 유머러스하면서 섬세한 문체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참 좋다.

 

마지막으로 과격한 우리 지로의 아버지.

이름도 자랑찬 우에하라 이치로가 '파이파티로마'섬으로 가기 전, 지로의 머리를 난폭하게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을 옮기며 어제, 오늘 눈물나게 재밌게 읽은 <남쪽으로 튀어!>의 마지막 장을 덮고자 한다. 지로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라 생각하며...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사는 그런 어른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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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unshine

    이 양반 저도 맘에 드네요...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네 사람들은 나하나 저항해봐야 변화지 않는다고 하지만...지속적으로 계속 싸우고 져도 좋으니 계속 저항해야 아주 작은 변화라도 있죠....변화지 않는다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않으면서 투정부리는 변명일뿐입니다.

    2009.12.22 01:26 댓글쓰기
  • 벤자민

    이 분 책 가운데 공중그네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덤으로 따라온 인터폴은 영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책 모셔가야겠어요..ㅎㅎ

    2009.12.22 14:12 댓글쓰기
    • 아바나

      얼릉 모셔가셔용~ㅎㅎㅎ

      2009.12.22 14:32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마지막 문장..져도 좋으니까 싸워...이럴 수 있는 엄마, 아빠가 됐으면 좋겠다 싶어요. 엄마,아빠 되면 지는 싸움..아니 싸움 자체를 안하려 들고 볕드는 곳만 이익이 되는 곳만 찾아가려고 하는 거..자식 핑계대면서 그렇게 되기 일쑤잖아요.

    2009.12.22 14:53 댓글쓰기
    • 아바나

      저도 그런 아빠가 될테야요!ㅋ

      2009.12.2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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