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김수영'이란 이름 석자를 내가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한 십여 년 전 쯤으로 기억하는데, 김규항의 첫 단행본인 'B급좌파'에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라는 소제목의 내용을 통해서 였다. 그 이후로 김규항이 늘 옆에 두고 있다는 김수영 전집(시,산문)을 나 역시 구입했었다. 책 속에 들어있는 48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김수영의 런닝셔츠 차림의 흑백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커다란 눈망울과 함께 야릇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평범하지 않은 묘한 감정을 내게 불러일으킨다.
나는 지식인이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또 그 역할을 할 능력도 없으며, 그러하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 김수영 전집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김규항의 말이 십 여년 전에 내 머리 속에 많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뭐, 아직도 다 읽지 못하고 책장에 고히 모셔져 있긴 하지만 말이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집을 통해 그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되지만, 책을 읽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그를 알고 싶다는 조급함은 이 평전을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일 것 같다. 부유했던 그의 유년시절과 손이 귀한 집에서 태어나 몸은 약하지만 영특함을 보였고, 그리고 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의 태생적 자유주의적 기질이 생성되고 자라났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제 멋대로(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살아갈 수 있었던 환경적 영향으로 그 주변인물(동생들) 보다 늘 우선시 되었던 그의 생활은 기술한 자유주의적 사상의 좋은 토양이 될 수는 있었을지언정, 책 읽는 과정에서 나는 좀 재수없다고 할까? 아무튼 내게 기분좋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는 1921년에 태어나 광복과 4.19혁명, 5.16군사쿠데타를 겪은 한국 현대사의 복잡 다단하고 혼란스러운 요동치는 사회적 분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또한 그 와중에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인민군이 되기도 했고, 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로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이념적 정체성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 태도를 의미심장하게 느껴 볼 수 있다. 지독한 완벽주의, 고집불통에 그 어떤 위선도 참을 수 없는 근본적인 그의 정신세계는 그대로 그의 생활속에 실현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 미군의 통역사로 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통속적인 개념의 아주 훌륭한 직업일 것이다. 그러나 김수영에게는 '더러운' 직업으로 여겨지며 그 더러운 직업은 그가 지속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돈이 없어 생활이 어려워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초반부에서는 너무나 귀하게 자라기만 한 그에게 전혀 호감이 가지 않았고, 또 그러한 환경 탓에 그의 내면적 세계의 철학을 정립하는 자양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때문에 어쩌면 그의 가치가 폄하(?)되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연 이념적 성향을 떠나 '자신이 지향하는 바'와 '실제 생활속의 모습'과의 일치성, 혹은 그 간극의 좁힘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만큼 떳떳하고 자신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비단 혼란스러웠던 그 시대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물을 수 있는 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사정으로 이 책 역시 집중해서 읽지 못하고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띄엄띄엄 읽었기에 내게 그 감흥이 덜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오늘 날에도 언제나 회자되고 있고 그의 글과 사상을 본받으려 하는 많은 이들이 있는 것은 바로 꿋꿋하고 변치않는 그의 사상과 실천적 삶에 그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정한 자유주의자 김수영. 비록 이제서야 그의 삶을 접했으나 역시 많은 것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이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내게도 실천이라는 단어로 행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부실했던 책읽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