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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도서]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공저/심은우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 중 일부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당시 10여분 분량의 그 영상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마음의 작은 울림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역시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다시 한번 인터넷 동영상을 찾아 보는 수고(?)를 자연스럽게 행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  것 같다.

 

랜디 포시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컴퓨터공학 교수이다. 내가 느끼는 랜디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생활하는 완벽주의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 일상 생활에서의 깔끔함(?)과 조카들, 자녀들,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그의 따뜻한 마음의 범주를 제외한 업무적인 면에서 말이다. 몇 개월 남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 하는 그의 노력, 그리고 아버지 없이 성장해 나가야 하는 세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비록 십여개의 종양이 그의 몸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그는 마지막 강의를 시작하며 집안에 코끼리가 있다면 손님에게 코끼리 먼저 소개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인용하여 종양을 코끼리에 비유했고, 역시 그 종양 먼저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암 투병을 하며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환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팔굽혀 펴기로 그의 건강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의 마지막 강의는 사랑하는 부인 재이의 생일날이었고(부부간에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생일), 재이는 랜디의 건강을 위해 그의 마지막 강의를 반대하지만, 랜디는 그 마지막 강의야 말로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모든 이들에 대한 꼭 행해야 할 어떤 의무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강의는 시종일관 즐겁다. 힘들었던 시간들, 병마와 싸우는 처절한 사투는 강의 내용에 없다. 다만, 자신이 어렸을 때 부터 꿈꿔왔던 일들과 성취한 일들, 또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더이상 새로운 느낌(막내 클로이는 18개월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랜디로 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조차 할 수 없다)을 가질 수 없는 그의 사랑스러운 자녀 딜런, 로건, 클로이에 대한 최대한의 기억을 선사하기 위한 내용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청중과 독자는 어쩌면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그의 강의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가 지닌 따뜻한 마음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내가 느끼는 랜디는 아무래도 똘끼가 다분한 사람인 것 같다. 그가 결혼 전에는 조카들과 함께하며 최대한 조카들에게 많은 경험을 심어주고자 했다. 어느 날 랜디가 새로 뽑은 폭스바겐 컨퍼터블 승용차에 그의 누이는 조카들에게 "새 차니까 조심해야 한다. 타기 전에 발 털고, 아무거나 건드리지 마라, 더럽히지도 말고.." 등등을 주문하고 있을 때, 랜디는 총각 삼촌만이 할 수 있는 생각 - '저런 훈계로 아이들을 기죽이다니. 당연히 차를 더럽힐 수 있어. 아이들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을 하며 음료수 콜라 캔을 따고 캔을 뒤집은 다음, 뒷좌석 천 시트에다가 쏟아버렸다. 놀라 자빠질 일 이지만 랜디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 물건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캔콜라를 뒤집어 쏟는 동안 그의 조카들의 크게 벌어진 입과 놀란 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눈에는 어른들의 규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미치광이 랜디 삼촌이 있었고, 그 놀람과 더불어 너무도 사랑스러웠을 런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조카 크리스는 독감에 걸린 탓에 뒷좌석 전체에 먹은 것을 다 토해 버렸지만, 먼저 쏟아진 콜라 덕택에 죄책감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나 사고를 벗어난 행동이나 현상에 대해 '대단함' 내지는 '미친짓'이라는 평가를 하게 된다. 더불어 경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라면 도저히 행하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가 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랜디의 이야기에는 이러한 대단함과 미친짓이 많이 소개된다. 콜라 뒤엎기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부딪히는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교휸을 심어준 재이와의 일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 등은 내가 책을 읽으며 특히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러한 또라이 랜디에게는 그의 성장과 함께 정신적 영양분을 흠뻑 넣어 준 다름아닌 그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아버지 역시 내가 보기에는 랜디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은 또라이 대왕이라 생각된다. 그의 강의 속에서도 아버지는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충분히 매력적인, 인간을 중시하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 여겨진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 책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비단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한 개인의 치열한 삶 그 자체 보다는(물론, 그 자체 역시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저 그렇게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과 내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과연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울림을 느끼게 해 주는 짧지만 좋은 책. 그에게는 마지막 강의가 되었지만, 내게는 결코 마지막일 수 없는 좋은 강의 하나를 뿌듯한 마음으로 가슴에 품어본다.

 


* cf. yes24에도 마지막 강의 영상이 있더군요. http://www.yes24.com/24/goods/298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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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neone91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책입니다....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시한부라는 안타까움을 앞세워 이 책을 읽는다면... 오히려...그 느낌이 반감될 것 같네요.. 그냥...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읽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추천~~

    2010.05.02 18:45 댓글쓰기
    • 아바나

      랜디 포시 본인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강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은 시간에 대해 얼마나 더 재미있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더라구요.

      2010.05.02 18:50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저도 이거 읽었는데..훈훈하고 인간미가 있더라구요. 가족들 사진도 밝아서 좋았구요. 작년인가 사망했다는 부고보고 안타깝더라구요.

    2010.05.02 22:47 댓글쓰기
    • 아바나

      맞아요~ 훈훈하고 인간미...그것이 다른 암투병 관련 경험담과 같은 내용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에요. 죽음을 앞에 두고 있지만 절대로 우울하지 않아요~

      2010.05.02 23:25
  • Today

    이런 똘끼라면 다분히 사랑스러운걸요. 쿠헤헤. ^ ^

    2010.05.05 10:59 댓글쓰기
    • 아바나

      사랑스러운 똘끼?ㅎ

      2010.05.0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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