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아닌척 에두를 것 없이 말하자. 솔직히 이런 여자 피곤하다. '이런'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
일단 목수정은, 책의 부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비혼(非婚) 상태에서 프랑스 남자 희완(나이는 책 속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진과 그의 아버지의 나이로 미루어 보아 아주 아주 젊게 봤을 때 50대 후반으로 추정됨)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칼리와 함께 프랑스 어딘가에 살고 있다.
좋다. 그럼 앞서 내가 말한 피곤한 '이런 여자'는 비혼모에 외국남자와 살아가는 30대 후반(이젠 40대 초반일게다)의 여자를 말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조금 부담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피곤'은 아니다.
그럼 대체 뭐냐?
선천적으로 통제와 억압을 거부하고, 뚜렷한 주관과 농도짙은 자의식으로 점철되어 스스로 생각하는 '아님'에 대해 끝까지 따지고 싸우고 투쟁하며,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에 유독(?)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그런' 여자 말이다.
어떤가. 피곤할 것 같지 않은가? 어쩌면 무서울 수도 있을걸?
그런데 이상하게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결코 사진 속 그녀가 예뻐(!)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곁에 있고, 그 똑똑한 언사로 매사에 논쟁 아닌 논쟁을 해야만 할 것 같은...그래서 조금 피곤할 수 있겠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리고 그 자유를 억압하는 그 어떤 것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그녀의 당당함과 낙천적 사유에 경외로움 마저 느낀다.
내가 처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일전에 포스팅한 바 있는 한국 국립 오페라단의 상설 오페라 합창단이 하루 아침에 전원 해고되는 과정에서 이를 막고자 '연대'의 힘을 빌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정명훈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완전 어이없이 거절당하고 마음을 짓밟힌(음악가 정명훈의 실체를 똑똑히 확인시켜 주는) 그 일화를 통해서 였다.
목수정은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하늘하늘 거리는 원피스를 즐겨입고(심지어 그 복장에 하이힐을 신고 집회에 나가기도...) 줄곧 '연애'만을 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는 그녀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에 흥분하고 그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그야말로 당찬 '인간'이라 여겨진다. 학교를 졸업후 관광공사에서 일하고, 그리고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기획자로, 이어서 혈혈단신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문화정책을 공부하며 다시 귀국후 국립발레단 기획업무를, 곧이어 민주노동당에서 문화정책 담당을 맡아 일했다. 그가 겪은 프랑스에서의 일상과 민주노동당에서의 일들은 묘한 감정을 내게 불러 일으켰는데, 정말 훌륭한(즉, 우리나라와는 극도로 대비되는)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와 이를 실현케 만드는 그네들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부러움과 동시에, 한없이 척박한 한국 진보세력에 그나마 희망의 불꽃이 되어 준 민주노동당(2004년 17대총선에서 무려 9명이라는 국회의원을 당선시킨..나도 그때 많이 흥분했고, '희망'이라는 단어와 '활력'이라는 단어 두 개가 머리 속에 돌고 돌아 나도 모를 작은 미소와 흥겨움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생생~) 의 정파적 갈등과 이기주의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허탈함 그 자체로 추락시킨 어이없음이 생각나서 또 한번 안타까운 과거와 그로 인한 현재의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척. 봐도 고집세고 똘망하며 옳은 말만 하는 그녀의 가슴 속, 머리 속 일관성도 '희완 트호뫼흐'라는 이 발음조차 힘든 이름을 지닌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예술가와의 만남으로 인해 특정한 인생의 목적지(그녀의 표현으로 '사회주의적 장치가 부분적으로나마 작동되는 사회, 자본의 힘이 드문드문이라도 무력화 되는 사회가 세상을 얼마나 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건강한 사회주의적 이상을 실천하는 사회에 대한 신념')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자신을 다그치는 삶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자유롭게 풀어놓은 영혼의 열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열망의 진화 자체가 중심이 되는 삶의 방식에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그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 사고의 전환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어쨌든 좀 더 유연한 머리와 그에 따른 행동이 그녀 안에 자리잡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칭송하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은 그녀의 남친이자, 그녀 딸 칼리의 아빠인 희완에게서는 몇 곱절 더 충만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 역시 자유로움을 무진장 추구하는 놈이지만 난 죽어도 그 양반처럼은 행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느끼게끔 해주는 철저한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에 심지어 그녀를 '신'으로까지 여기는 오바스러움도 볼 수 있었다. 희완의 페미니즘적 논리는 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함이라는 측면보다는 그동안의 세월동안 남성으로부터 억압된 여성에 속죄(?), 댓가(?)를 치르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남성이 더욱 더 여성으로부터의 상대적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로 받아들여 진다.
이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아, 이 두 단어 너무 많이 욹어먹는다.)의 커플을 바라보며 갑자기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기도 했다. 뭐,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결혼도 안한 처녀가 느닷없이 배가 불러와 아이를 낳고자 할 때, 목수정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지만, 비혼의 목수정은 뱃속의 칼리에게 말한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현혹되지 말고 자유롭게, 완전히 너 자신만의 가치와 의지로 선택한 너의 인생을 누리렴."
당연히 그녀의 자식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또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리라는 것은 쉬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펼치고 새벽잠 설치며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 내용에 대한 공감과 내가 행하지 못하고 있는 삶에 대한 대리만족도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나, 무엇보다 책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감의 마음을 보탤 수 있으니 어찌 다음 장이 궁금치 않을 것이며, 어찌 도중에 책장을 덮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 그녀의 올바르고 실천적인 삶은 부러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희완의 정신세계 역시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이 재밌고, 유익하며 쑈킹하면서도 생각할 꺼리를 많이 제공해 주는 에세이를 많은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실은 벌써 주변의 몇 명에게 추천해 주었고 그 중 한 명은 바로 주문했음을 곁에서 지켜 보았다.
조금은 우유부단하면서 자신의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조금 부족한 이, 언제나 꼿꼿한 주관으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 모두에게.. 전자에게는 보다 큰 자신감을 갖도록 유인하며, 후자에게는 더욱 더 단단함을 스스로의 마음 속에 심어 줄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더불어, 아직도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에 은연중에, 혹은 너무나 당연하게 가부장적 사고와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과 죄책감 없이 행하고 있는 많은 짜증나는 남자들과, 또한 어이없게 그러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더(!) 짜증나는 여자들에게도 마구마구 읽히게 만들고 싶어지는 책이다.
목수정은 젊게 사는 방법으로 영원히 철들지 않는 삶을 이야기 한다.
"나는 젊게 사는 방법을 안다. 그건 오래도록 철들지 않으면 된다. 그럼 남들한테 철들라고 잔소리 할 일도 없고, 도리어 세살 짜리 아이한테서도 종종 잔소리를 듣는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영원히 젊게."
나 역시 영원히 젊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