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씨네큐브에 <하얀리본>을 보러 가서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 리플렛을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참 재밌고 유쾌하겠다. 음악도 분명 좋을거야~ 라고 혼자 머리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원작이 책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우연찮게 신청한 코레일 문화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한 권의 책을 받아들고는 참 재미나게 읽었다. 내가 느낀 재미는 저자 엘리엇 타이버의 유쾌하고 유머스러스하면서도 맛깔나는 문체가 우선적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무거운 주제가 따라오는데 그 역시 내가 상상치 못한 것이라 더 큰 흥미를 유발한 듯 하다.
엘리엇 타이버는 1969년 8월(그래, 그때도 지금과 같은 8월이었다), 뉴욕 주 베델의 화이트 레이크에서 열린 '우드스탁 뮤직 앤드 아트 페스트벌'의 1등공신이며, 이와 관련하여 벌어지는 모든 일화와 그의 개인사, 가족사는 100% 실제임을 첫 장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맨허튼에서 나름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나, 주말에는 시골마을 베델에서 파산 직전에 몰린 부모님의 모텔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기를 십 몇년...이웃마을에서 열리기로 한 '락 페스티벌'이 수많은 히피족들에 대한 반감과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것이라는 주민들의 반대로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그들의 마을에서 집행하기로 결정, 우여곡절 끝에 페스티벌 유치에 성공한다. 늘 고요하기만 하고 부모님의 모텔은 수익은 커녕 이자 내기에 급급한 답답한 상황에서 갑자기 몰려드는 전국의 히피족들로 인해 마을에 무려 50만 명에 육박하는 인파가 몰리면서 아수라장이 되는데, 결국 이 과정에서 엘리엇과 그의 부모님, 그리고 많은 이들을 변화시키고 더더욱 커다란 그 무엇인가를 가슴 속 깊이 느끼게 된다.
이를 둘러싼 각종 일화들도 무척 흥미롭지만, 그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또 하나의 무거운 주제를 엘리엇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성애자, 소수성애자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엘리엇 자신이 '게이'이며 그 시대(그러니까 1950~60년대)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보다 더욱 더 가혹한 차별과 폭행 등 인권의 완전, 완전 사각지대로 내몰렸던 것이 바로 동성애자들이었다. 이는 책의 전반부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그의 유소년기의 성 정체성과 성장해서의 일화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페스티발 유치 과정에서의 히피족들의 자유로운 성 생활의 묘사에 있어서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소수성애자의 내용으로 볼 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사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 유쾌하지 않은(상대적으로), 그리고 무거운 주제에 대한 이야기 마저도 엘리엇 특유의 유머감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볍지 아니하면서도 또 깊이 가슴 아리지 않게, 그러나 문제의 핵심을 명확히 짚어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 역시 작자의 뛰어난 솜씨가 아니겠는가를 여실히 느끼는 부분이다.
여기서 굳이 소수성애자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장황히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수성애자들에게 보내는 편협한 시선과 정신병적 취급따위는 하지 말았으면 하고, 특히 집.단.적.인. 폭력아닌 폭력과 편견을 행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짧은 내 소견이다. 인간은 그저 인간이기에 존중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시 각설하고...
아무튼, 수많은 반대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베델 마을에서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무사히 끝났고, 엘리엇의 부모도 더이상 압류의 공포에서 시달리지 않게 되었으며, 마을 주민들 역시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꿈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엘리엇은 아버지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당당한 고백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그토록 염려하던 고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안락한 노후생활을 행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본인 역시 인생의 동반자인 앙드레(물론, 그도 남자!)와 함께 하며 행복한 생활을 지속했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라 속마저 후련하다. 또한 엘리엇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했고, 꿈과 자긍심이 충만한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으며, 언제나 느긋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긍정적 사고를 지닌 영원한 히피 사업가 마이클 랭의 그 멋진 모습에 나 역시 매료되었다. 책의 첫장에 쓰여진 엘리엇의 헌사문에 '당신에게 내. 평.생.토.록.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글귀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어볼 때 정말 정말 적합한 글귀라는 것이 내 마음 속에도 와 닿았다.
재밌으면서도 생각해 볼 꺼리를 던져주며, 흥미진진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가미시켜주는, 음..썩! 괜찮은 독서였다.
이젠 영화가 궁금해진다. 조만간에 보러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