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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최고의 책
리영희 평전

[도서] 리영희 평전

김삼웅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지난 12월 5일 리영희 선생은 향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조문과 애도의 물결을 이루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 분향소에서는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이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던, 그동안 특별히 어떤 커다란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거나 한 경험이 없는 나 역시도 시대를 대표하는 별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에 한없는 허전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사상의 은사

새대의 선구자

60년대 70년대 80년대 대표적 지성

아 이 한반도의 살아 있는 정신

얼음

우리들의 전위와 후방

이상은 시인 고은이 리영희 선생 화갑 기념문집에 쓴 그에 대한 수식어다.

 

평전을 받아 손에 쥐고는 쉴 새 없이 읽어 나갔다. 재작년 임헌영 선생과의 자서전격 대담집인 <대화>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평전이나 자서전이나 모두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기에 기존 <대화>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함이나 식상함을 느낄 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나를 이끈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국토의 변방인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에서 태어나 일제 군국주의 교육을 받으며 해방과 더불어 월남하여 등록금이 없는 국립해양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지원입대하여 7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했으며, 이어서 언론사 외신기자로 시작된 언론활동과 한양대학교 교수 생활은 계속된 강제퇴직과 투옥으로 점철되었고, 그런 속에서도 지성과 이성으로 무장한 예리한 필봉을 멈추지 않았으며, 한국 사회에 깊숙이 똬리를 튼 우상들을 격파하는 전사의 역할을 행한 선생의 일생은 그 누가 읽는다 하더라도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20세기 한국 사회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인물에 선정된 리영희 선생님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실천하는 지성, 인식과 실천이 일치하는 인간'이라 거침없이 말하고 싶다. 

 

어떠한 훌륭한 인물이나, 경외로운 대상을 두고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남들이 하지 못하는, 혹은 충분히 물질적 유혹이나 입신양명, 개인적 안위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흔쾌히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러한 정신과 행동에 기인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리영희 선생 역시 7년간의 통역장교 생활을 통해 남들과 같이 미군을 등에 업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기자 생활을 통해 특종을 거머 쥘 즈음에도 남들과 같이 권력에 빌붙어 개인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것도 충분히... 그러나, 선생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냉철한 이성과 국제사회의 거시적 흐름을 꿰뚫어 사회에 고언을 내뱉고야 만다. 오직 진실을 추구하고 진리를 찾고자 하는 그의 정신은 영락없는 기자의 그것이다.

때문에, 그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3대 군사정권으로 부터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탄압과 옥고를 치를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그대로 가정의 경제적 궁핍함과 연결되기도 했으나, 끝끝내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날카로운 펜을 놓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 끝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을 무릅써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 서문중에서..)

 

나는 그의 유명한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생을 이야기하는 두 권의 책 <대화>와 <리영희 평전>을 통해 한 지식인의 삶과 그의 정신세계,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실천적 삶을 느낄 수 있다. 선생은 결코 편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양심이 향하는 대로 그대로 실천하는 생을 살았다. 양심이 향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매일 매일 뼈절이게 느끼며 생활하고 있는 내게, 일제의 폭압과 해방정국의 혼란, 미군정의 점령, 이승만의 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 파시즘 등 헤아릴 수 없는 시대적 소용돌이와 격변의 현장 속에서 그것을 지켜내기란 정말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른 말, 바른 행동 하나가 권력에 반하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가차없이 인권을 유린하던 서슬퍼런 독재정권의 한 가운데에서 말이다.

 

새삼, 선생의 삶이 소중하고 위대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또한 책을 통해 더 각인되어 지고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우리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를 향해 침 한번 뱉은 적이 없는 베트남에 우리 군대가 파병하여 수많은 살상을 행하고 아무 명분도 의미도 없는 전쟁 속에 야만적 행동을 자행한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핏발을 세우며 목청을 높이지만, 정작 베트남에 대한 공식적 사죄는 하지 않는다는 이 이중적 태도는 과연 우리들의 양심인가? 역시 이라크 파병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UAE 파병 또한 그 연장전 선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생의 일생은 죽는 날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이토록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역설적으로 선생과 같은 기자, 학자, 지식인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비관적 생각도 해본다. 물신주의에 매몰된 우리의 현재는 나 하나의 명예와 안위를 위해 진정으로 지녀야 할 각기 자신의 위치에서의 참된 가치는 2, 3순위로 밀려나 있는 것은 아닌지...비단 기자, 학자, 지식인을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까이 나와 내 주변, 바로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책을 덮으며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게 '리영희'란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그래, 나도 안다. 내 속물적 근성이 자그마한 이해관계에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얼마나 얄팍하고 자기 중심적인 결정을 해 왔는지를...또, 앞으로는 어떠할 것인가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곱씹어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시 시궁창을 향해 몸을 던질 지언정,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적어도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비록 그것이 자위행위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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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neone91

    자신이 생각한대로.... 진실을 추구하고... 그 어떤 외압에도 펜을 꺾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분이신 것 같네요..... 너무 쉽게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니 더욱....

    2010.12.13 23:10 댓글쓰기
    • 아바나

      정말 대단해요. 감동스럽구요. 그러니까 제가 꼭! 읽어보라는 거 아니겠어요? ㅎㅎ
      저 리뷰 쓰면서 별 만땅 주는 일 별로 없어요~~!!
      근데, <대화>와 <평전>은 모두 별 만땅!ㅎ

      2010.12.13 23:14
  • 노맨틱기타리스트발표맨

    리영희 교수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익한 글이네요..^^
    안락을 포기하고 잡은 펜끝에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10.12.16 21:17 댓글쓰기
    • 아바나

      안녕하세요, 첫 댓글이신가요? ㅎㅎ
      리영희 선생님의 책은 대화와 이번 평전 딱 두 권밖에 못 읽어 봤는데...읽을 때마다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안락 보다 '옳음'을 쫒아 살아온 그의 일관된 행동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듯 합니다.

      2010.12.1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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