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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도서] 동물농장

조지 오웰 저/도정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일전에 뒤늦게 읽은 <1984년>(리뷰: 지금은 더 세련되고 고도화된 1984년!)을 통해 조지 오웰을 처음 만나고 나서 생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그 유명한 고전과 작가를 이제서야 접한다는-과 묘하게 작용한 어떤 부채의식은 자연스럽게 그의 대표작인 <동물농장>으로 나를 이끌었으며, 결론적으로 말해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더 많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아니 읽어야 한다는 관념적 부추김이 지속적으로 작동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구 소련, 특히 스탈린 시대의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적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동물농장에 비유하며(또는 그렇게 알려진) 신랄하게 풍자한 이 작품과 작가의 문학성을 논하기 앞서 책 속의 내용이 나와 내 또래의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분명 시대가 선사하는 '아이러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비록 조금은 퇴색하고 그 농도가 많이 낮아졌다고 하나, 우리는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휴지통에 버리지 못한 사회적 통념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이 책이 쓰여진 1940년대나 한국판으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 이후 시점에서의 지배세력의 목적은 분명 '반공주의'의 전파였음은 굳이 수고스럽게 경로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 충분함에 충분함을 더한다. 하지만 정작 조지 오웰은 여타의 서유럽 좌파들로 부터 비판과 오해를 받았을지언정, 분명한 사회주의자였으니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진정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표면적인 부분만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기득권 세력의 조급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면서 때문에, 이를 '아이러니'라고 칭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역자인 도정일 문학평론가에 의하면 <동물농장>은 시대적인 풍자이면서 동시에 우화라고 평하고 있다. 즉, 우리가 무려 2천6백년 전에 쓰여진 '이솝 우화'를 읽을 때 얻는 교훈처럼 우화는 당대의 현실문맥에 반드시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서사 형식이며, 생산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면서도 그 효력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도정일 교수의 평론에 동의하고 있음을 책을 읽으며 느꼈는데, 동물농장 속에 의인화된 주인공들은 반드시 스탈린 시대의 주요 인물들과 1대1로 매칭시켜 바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애써서 일구어 온 사회변혁의 산물을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에서 벗어나 또 다른 계급, 계층을 형성하며 그들만의 울타리 속에서 합리화를 지속하는, 그래서 결국 모든 대다수의 삶은 혁명 전이나 그 이후나 크게 나아진 바 없이 고통의 연속일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도 충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저 동물농장과 같은 수준의 혁명적 사회변혁의 역사적 경험도 없지만 말이다)

<동물농장>의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어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이 점점 더 안락함을 추구하며 부패에 빠져들고, 원초적 평등에서 '불평등의 평등론'을 주장할 때, 왜 다른 모든 동물들은 이를 저지하고 폭동 내지는 제2의 혁명을 이루지 못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물론, 매서운 이빨을 자랑하는 훈련된 개들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커다란 이유였겠지만, 궁극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많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학습된 지식도, 발전될 사고의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하루가 멀다하고 돌아다니며 모든 상황을 나폴레옹과 돼지들의 합리화로 이끌어 내는 유창한 언변의 소유자 스퀼러는 가뜩이나 주체적 사고를 정립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지적 능력을 지닌 대다수 동물들에게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고난의 현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984>에서도 그러했지만, <동물농장>에서도 끊임없이 그네들의 역사는 재생산 된다. 오로지 현재의 권력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그것만이 선(善)임을 강조한다. 이 역할 역시 뛰어난 언변력을 지닌 스퀼러의 몫이고 '또다시 존즈가 찾아오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지?'라는 절대적 명제 속에서 그의 궤변은 합리화 된다. 그들이 다짐했던 7계명도 조금씩 수정되고 끝내는 한 가지만 남는다. 그것도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불평등의 평등론'으로...
이러한 역사 왜곡 내지는 여론 호도를 역사속에 나타났던 전체주의 국가의 전유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왠지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굳이 전체주의 국가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의 조,중,동 등과 같이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기득권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여론을 조장하고 마치 그것이 모든 공익을 위하는 것인양, 좀 더 극단적인 표현으로 혹세무민하는 그들의 작태는 자연스럽게 스퀼러의 그것과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물농장'은 이전의 '메이너 농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말았다.
동시에, 본채에서 시끄럽게 맥주를 마시며 카드를 즐기고 있는 돼지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인지 돼지의 모습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버렸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이후의 추정되는 '동물농장'의 삶은 예전의 인간의 자리에 돼지가 앉아 있고, 착취자의 역할이 인간에서 돼지로 바뀌었을 뿐, 더이상 동물들의 자체적, 주체적인 삶이 아닌 그저 예전과 똑같은 착취와 억압의 일상이 반복되는 퍽퍽한 하루가 지속될 것이다. 메이저의 혁명적 연설을 통해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모두 힘을 합쳐 존즈를 몰아낸 직후의 승리에 찬 그 성공적이고 가슴 벅찬 '동물농장'은 이제 요원한 추억만으로 남아 축쳐진 수많은 동물들의 어깨위에 드리워진 씁쓸함의 뒷모습만을 비추어 줄 뿐이다.

결국, 남은 것은 과연 우리는,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신, 처음 가졌던 그 부채의식과 이상야릇한 의무감으로 또 다시 조지 오웰의 다른 책들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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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랑

    제가 'KBS 책 읽는 밤'에서 재밌게 본 적이 있는데요, 다시보기에서 사라졌네요.재밌게 봤었는데 한번 보시라고 날짜확인하러 갔더니 그날 분만 없어졌네요.흑흑

    2011.06.06 09:57 댓글쓰기
    • 아바나

      아, 예전에 그 프로그램 저도 재밌게 봤는데...<동물농장>은 못 봤구요. 안타깝네요.ㅜ.ㅜ
      근데 그 프로그램 지금도 하고 있나요?

      2011.06.06 15:31
    • 나랑

      다시정정
      4월 5일에 있어요.
      _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다시 보니 있네요. 제가 잘못봤을 수도 있고 시스템 점검일 수도 있는데요, 덕분에 다시 봅니다.

      2011.06.06 15:54
    • 아바나

      덕택에 잘 봤습니다.^^

      2011.06.07 00:40
  • nineone91

    뉴스 앵커가 그러더군요.... 뉴스 보도 끝에... 조지오웰의 동물동장이 따로 없다구요.... 음~~ 그 뉴스가 북한 관련 뉴스였던 것 같던데.....ㅎㅎ

    2011.06.09 14:56 댓글쓰기
    • 아바나

      동물농장은...나폴레옹은...굳이 스탈린 시대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도, 내 가정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현상과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이점이 이 책이 정치/사회 '풍자'이면서도 값진 '우화'일 수 있는 이유라고 여겨져요.^^

      2011.06.09 20:21
  • 아씨 난 그와중에 열라 열심히 일하던 나귀였나. 그 놈이 정말 짜증났음.

    2011.06.10 01:04 댓글쓰기
    • 아바나

      나는 하나도 안짜증나고 오히려 우직한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것 같아서 경외로왔는데...

      2011.06.10 14:52
    • 당하는 것 같아서 싫다 말일세.. 개혁이던 나발이든 당하지 않았음 좋가써

      2011.06.1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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