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사형당했다
근래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정치 참여라.. 예수는 정치범으로 사형당했다. 예수와 관련한 모든 해석과 의견들은 예수가 '왜 사형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형은 당하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가장 끔찍한 처형 방법이었다. 목을 치든 매달든, 총으로 쏘든 전기의자에 앉히든 어느 시대나 처형 방법의 공통점은 가장 짧은 시간에 절명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처형은 정반대였다. 절명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높이 매달려 죽어 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십자가형은 로마 시민에겐 사용되지 않았고 노예와 식민지 백성들에게만 사용되었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십자가 처형은 정치적 반역자에게 적용되었다. 그 지역 어디서고 고개만 들면 보이는 높은 곳에 발가벗겨 매달려진 채 몸을 뒤틀며 서서히 죽어 가는 사형수의 모습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로마에 저항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몸서리쳐지도록 되새기게 했다.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해석이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 영성가, 비폭력주의자, 하느님의 아들 등등. 그런 모든 해석이나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절대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지배 체제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와 관련한 모든 해석과 의견들은 예수가 '왜 사형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라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인 그가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영성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영성가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영성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비폭력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비폭력주의자'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서 예수의 모습에서 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똑 떼어 내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입네, 예수는 영성가입네, 예수는 평화주의자입네 하는 것은 예수를 욕보이는 일이다. 사형은커녕 일 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짓이다.
예수를 제대로 좇고 있는지는 무엇보다 지배 체제와의 관계로 증명된다. 사회적 모순이 존재하는 한, 다들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졌다고 해도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예수를 좇는 사람은 지배 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가 살던 세상처럼 지배 체제와 불화했다고 해서 쉽게 죽임을 당하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배 체제의 직간접적 탄압과 주류 사회에서의 배제,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에게서―심지어 같은 길을 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조차―일어나는 오해와 곤경은 다르지 않다. 지배 체제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와 곤경에 처하지 않으면서, 이쪽에서도 칭찬받고 저쪽에서도 존경받으면서, 예수를 좇고 있다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예수전 254~256쪽)
*출처 : 규항.넷 http://gyuhang.net/2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