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감동적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는 누구나 쉬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토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 또는 행동을 하였을 때야 비로소 감동이란 단어가 가슴 속에 아로 새겨질 필요조건이 형성되는 것일 게다.
송우석 변호사는 바로 그러한 필요조건을 자신의 삶 속에서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영화는 내게 충분히 감동적이었으며 많은 이들을 그토록 영화관으로 이끌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그의 감동적인 삶과 행동 뿐 아니라 더불어 현실 속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었던, 그것도 일국의 대통령으로 함께 했던 사람이 지금은 우리 곁에 없기 때문에 감성적 측면에서의 그 상승작용이 심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해 본다면 아무리 절차적 민주화 혹은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었다 하더라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 사회 속에서 느끼고 발생하는 답답함과 비상식적 일들에 대한 속풀이 내지는 어떠한 대리만족의 감정도 함께 녹아들었을 것 같다.
송우석 변호사의 의식은 소위 '자각'의 과정을 거쳐 사고와 행동에 질적 변화를 이루며, 변화된 방향으로 일관된 실천을 행한다. 물질적 풍요로움 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온 몸으로 깨닫고 역시 이를 온 몸으로 실행한다. 아니,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다기 보다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불의'를 알아챘다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런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 옛날 빚진 고마운 국밥집 아들(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 이해관계에 얽힌 피변호인이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 만약 송변호사가 변호한 박진우란 학생을 이미 알고 있는, 게다가 예전에 그렇게 고맙게 대해 준 국밥집의 아들이 아닌 전혀 모르는 어떤 이었어도 과연 그 사건을 수임했겠는가에 대한 의문은 굳이 확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인적 감정이 스며든 이유있는 계기가 없었어도 발벗고 나서야 진정한 정의로움이라고 외칠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는 극적 효과를 위한 영화 속 내용 중 하나로 여겨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잠깐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영화 속 송변호사와 정 반대편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인물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차동영 경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진정으로 자신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한 경찰일 수 있다. 정말로 자신의 일(그냥 쉽게 말해 빨갱이를 처단하는 것)이 국가적 사명을 띤, 그리하여 자신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나마 다른 이들이 편히 살 수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적어도 본인의 생각으로는 진정한 애국자요, 진정한 대한민국 경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일이 잘못 된 것인 줄 인식하고 있으나 명예 혹은 이익 등 본인의 입신양명, 사리사욕을 위해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 부터 시작해서 온 몸으로 그렇게 진정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마치 반대편에 서 있는 송변호사와 같이 지극히 순수한 인물 말이다. 영화의 주 포커스는 송변호사에 맞춰 있기에 알 수 없지만, 차경감은 분명 그러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되며, 지금도 역시 차경감과 같은 이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있다.
바로 여기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답답함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하지만 그것은 단언컨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현실 그 자체이다. 그 속에는 첫 단추 부터 잘못 끼워진 가슴 찢어질 듯한 우리의 현대사가 자리잡고 있다. 해방정국의 어지러운 시기, 열강의 이해관계와 얽혀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우리만의 통일정부가 수립되지 못한 탓에 숨죽이며 처분만을 기다리던 친일파 세력이 다시 득세했고,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며 민족의 분단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으며,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인물의 군사쿠데타를 통해 장기간 진행된 독재권력와 권위주의적 통치는 자연스레 기득권의 권력유지와 연장을 위한 각종 세뇌교육을 통해 그들을 위한 가치관을 주입시켰고 어떤 이는 여기에 스폰지와 같이 그대로 흡수되고, 또 다른 이는 그러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계급적 측면의 자각은 고사하고 스스로를 이 나라의 주체적인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국가권력의 의도대로 그야말로 '국민(말 잘 듣는국가의 백성)'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역시 자연스럽게 차경감과 같은 우리들이 생겨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래서 더 답답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영화 속 송변호사는 변호사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 속 송변호사를 보면서 변호사만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그 분을 기리며 많은 이들이 그리움에 젖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분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 분의 철학과 가치관을 떠나서 대통령으로서 행한 통치행위, 구체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옹호, 반노동적 정책 집행, 명분없는 반인권적 이라크 파병 결정 등에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으며,오히려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설사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 여겼다 하더라도(이후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바로 일어났지만!), 당시 미처 깨닫지 못한 실수였기에 후회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 행위에 대한 평가는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역시 안타까움과 애닲음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한다. 영화를 보며 훔쳐 내어야만 했던 내 눈물의 질량은 비단 탄탄한 구성의 시나리오와 송강호라는 흥행 보증수표인 일류 배우 때문만은 분명 아니다. 오늘은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