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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도서]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저/김종철 등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예전에 한 선배와 어설픈 이념논쟁을 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선배 왈,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 초기부터 존재해 온 하나의 생활양식이지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없다. 이데올로기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현실에서 결코 전복될 수 없다." 사실 나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필요도 없고, 또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게끔 만들어져 있는 존재다.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한 뒤 역사가 새로 시작되지 않는 한, 사유재산과 화폐를 인정하는 경제체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복되기엔 자본주의는 너무 멀리 왔다. 그렇다고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 개발지상주의가 절대 바람직한 체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인간의 존재가 한낱 통계수치로 전락하고 돈의 흐름이 모든 정책결정의 핵심 요인이 되며, 갯벌의 생태적 가치보다는 간척사업이 더 부각되는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하면서도 인류가 천년만년 아무 걱정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만 이를 대체할 만한 대안적인 모델이 마땅찮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거대권력을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복''이 아닌 ''개량''을 하기도 사실 쉽지 않다. 일단 국가의 규모가 너무 크고, 일개 국민국가의 노력만으로는 이 같은 세계적인 흐름을 바꿔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흘러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라다크. 지역적으로는 인도에, 문화적으로는 티베트에 속한 산악지역의 촌락. 전기, 전화, TV가 없어도, 혹심한 기후와 빈약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마냥 행복하다고 말하는 곳. 주민들 중 누구도 ''우리는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 곳.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네 일''과 ''내 일''도 별로 구분하지 않는 곳. 남녀 성역할의 구별도 따로 없고, 노인과 아이들이 존경받는 곳. 라다크에서 이런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아닐까. 불교와 공동체의 규모. 만물은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그물처럼 무한히 엮어져 있다는 ''인드라망''의 철학은 상호의존성을 중요시하는 집단적 특성을 이루는 데 직접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기껏해야 100호를 넘지 않는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즉각 알 수 있고, 상당히 구체적이고 맥락중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간디도 인류가 진정한 독립과 자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은 자급자족의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자치적 민주주의 뿐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저자는 이 같은 생활방식이 결코 진보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수천년 동안 존재해왔던 가치, 즉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적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인류의 삶은 이 가치에 토대를 둔 채 이루어졌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바라직한 미래상 역시 이 가치로 회귀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미래가 ''오래된 미래''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라다크의 생활양식마저 자본주의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고, 라다크의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현재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 과연 우리가 현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라다크적 삶의 양식을 내세울 수 있을까. 이는 훨씬 더 버거운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천성산의 자연적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터널 뚫는 일이 우선이고, 새만큼 갯벌의 무한한 생산성도 개발논리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게 우리의 실상이다. GDP가 늘어도 사람들은 별로 행복해지지 않고, 농촌은 텅텅 비어만 간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 라다크를 우리 사회로 가져오는 일은 너무도 요원해 보인다. 인내심을 갖고 멀리 볼 일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긴 만큼, ''오래된 미래''를 되찾아오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실현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 의해 이 작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듯싶다. 어차피 ''미래''니까, 언제 찾아와도 반드시 찾아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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