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신화(myth)의 개념을 구조주의의 방법론으로 도입한 것은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만, 이를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본 사람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였다. 바르트는 신화가 그 자체의 작용을 은폐시키며 ''당연한(natural)'' 존재로서 의미를 제시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신화는 거의 예외 없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촉진하고 이에 봉사한다고 보았다.



지금은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리영희 교수에게, 해방 이후부터 반세기에 걸쳐 한반도는 신화로 뒤덮인 암울한 공간이었을 게다. 통치권력 유지를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성화(聖化)했던 국가, 또한 그에 충실히 복무했던 언론 및 다수의 지식인들로 가득한 신화의 땅에서, 리 교수는 그러한 신화를 철저히 해체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삼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 리 교수가 폭로한 ''신화''들의 정체는 이제 대중들도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거대한 군산복합체라는 사실,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며, 작금에 와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하등의 이유도, 전쟁을 통해 얻을 실익도 전혀 없다는 내용들은 언론이나 간행물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내 책이 한 부도 안 팔려 인세가 0원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리 교수의 바람은, 그의 후학들을 통해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의 사학법 문제에서도 보듯, 그러한 신화를 여전히 맹종하는 세력이 있다. 너무 묵어 군내가 나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아직까지도 물고 늘어지며 음모론을 펴는 야당과 보수언론, 종교계, 사학단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자들이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구심까지 생길 만큼 어이가 없다. 신화의 힘은 그만큼 무섭다.



"나는 어쩐지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와의 역사적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가 사실은 절반은 이기고 절반은 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패도지한 것으로 폐기되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절반은 지고 절반은 이기지 않았나 싶은 장면들을 본다. 이런 인식과 관점은 남·북한의 통일 형태와 앞으로의 남북 관계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일까?" (p. 271, 「통일의 도덕성」중에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혹은 전적인 사회주의는 존재 불가능함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 왔다. 어떻게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에서,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으려면 두 체제 간의 결합은 불가피하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풍요는 보장하되 비인간화를 조장하기 쉬우며, 사회주의는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는 반면 빈곤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체제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한,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바로 리영희 교수가 꿈꾸는 한반도의 미래였다.



그런 이상을 이루려면 우리(남한)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월함과 관련된 신화부터 걷어내야 한다. 리 교수가 이 책에서 소개한 일화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적절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통일된 독일을 방문해 헬무트 콜 총리와 대담하면서 "북한이 동독 같으면 남북한 관계의 평화가 가능할 텐데…"라고 하자, 콜 총리가 "그러면 남한은 서독만 한가?"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실로 통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한국의 촘스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아니 어쩌면 그런 호칭조차 본인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을만큼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리 교수지만, 못내 안타까운 점이 있다. 이 분이 그토록 미국의 폭력성에 대해, 반공주의의 허구성에 대해 수많은 저술을 남겼건만, 여전히 이 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그의 저술을 읽어보지 못한 채 신화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리 교수의 담론이 소위 ''주류언론''을 통해 전달될 수 있었던 기회는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러니 일부러 ''찾아 읽지'' 않으면, 평생 이 분의 이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는 불운을 맞을 수도 있다. 내 주위에는 딴에 학생운동을 한다면서도 리영희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세기가 넘었지만,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는 한 리 교수의 책은 계속 출판되어야 하고, 본인은 원치 않겠지만 인세도 계속 받으셔야 한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