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는 오전 9시에 찾아온다. (중략) 이윽고 잠잠해진 복도를 일렬종대의 발자국 소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와 속도로 돌진해 왔다.
멈추지 마!
문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사카키바라는 독방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무릎 위에서 떨고 있는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제발 멈추지 말아 다오! -p.9-
소설은 사형수가 아침마다 오늘은 저승사자(사형 집행)가 자신에게 오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감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장면을 처음에 보여준다. 일본에는 유독 사형 제도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처럼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해당 주제가 낯설지는 않다. 극악무도한 악인들을 사형이라는 제도로 처단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응보의 결과일 것이다. 개인의 복수로 인한 혼란을 막고자 국가적인 형법제도를 만들어 집행을 하게 된 것이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항상 오판을 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13계단』은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3개월 정도 남은 사카키바라 료의 원죄(?罪, 억울한 죄)를 증명하기 위해 교도관인 난고와 가석방된 상해 치사 전과자 준이치가 합심하여 무죄 증거를 수집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사카키바라 료는 사고 당시의 기억을 일부 일어버린 상태(역행성 건망)인데 7년간 독방에서 생활하던 중 갑자기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 그 때 본인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지금처럼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p.14-
이 단서를 가지고 스기우라 변호사는 어느 독지가의 도움으로 사카키바라 료의 무죄를 밝혀줄 사람으로 안면이 있는 교도관 난고에게 연락하게 되고 난고는 같이 활동할 사람으로 준이치를 지목하게 된다.
“살인자는 자네뿐만이 아니야.” 난고가 말했다. “나도 둘이나 죽였어.” 준이치를 귀를 의심하며 난고를 쳐다보았다. “네?” “나도 이 손으로 사람을 둘이나 죽였다니까.”
“무슨 뜻입니까?” “사형 집행” 난고는 시선을 떨구었다. “그건 교도관의 업무였어.” 준이치는 할 말을 잃고 난고를 바라보았다. -p.156~157-
교도관인 난고는 본인이 집행한 사형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사형 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의 난고는 악인들을 누군가는 처단을 해야 하는데 그 임무를 교도관이 맡게 된 것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번째 사형수의 형을 집행하면서 사형 제도에 의문을 품게 된다.
‘개정의 정’이란 ‘죄에 대해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가’를 뜻하는 용어로 죄를 범한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있다면 형량을 감형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개정의 정’이라는 걸 과연 다른 사람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느냐와 만약 개정의 정을 보인 사람이 있다면 범죄 종류와 관계없이 감형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60번 사형수의 경우 종교에 귀의하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고 피해자의 유족이 재판장에게 피고인은 충분한 위로와 사죄를 표명했으니 사형을 시키지 말아달라는 탄원에도 불구하고 감형 없이 사형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난고는 교도관이라는 직업에 염증을 느끼고 원죄로 고통 받는 사형수인 사카키바라 료를 돕기 위한 의뢰를 승낙했던 것이다.
『13계단』에서는 교도관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과 사형을 준비하는 과정, 집행을 담당하는 사형수의 고통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13이라는 숫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13이라는 숫자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좋지 않다. 우연인지는 몰라서 『13계단』에서 사용된 13이라는 숫자는 사형수인 사카키바라 료가 기억 속에서 무서움에 떨면서 올랐던 단의 숫자이면서 일본에서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사형 집행 가인서(사형 집행 명령서)에 사인을 받아야 하는 관료의 수라고 한다.
사형 제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마지막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작품으로, 그냥 읽고 넘기기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에도가와 란포상의 심사위원이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말처럼 왜 이 작품이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받게 되었는지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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