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쉬는 날이면 엄마와 동생이랑 같이 시내에 있는 서점에 종종 가곤 했다. 우리가 자주 가던 곳은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이었다. 건물 전체가 서점이었기 때문에 이 층 저 층으로 다니면서 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점이 주는 알 수 없는 편안함에 이끌려 커서도 종종 혼자서 서점에 구경을 가곤 했다. 종로서적이 폐점한 뒤 지하에 있는 영풍문고나 교보문고를 가게 되었지만 사람도 너무 많고 복잡하고 낯설어서 그런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짧은 시간 내에 한 바퀴 돌고 나올 때도 많았다. 지금도 서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종로서적이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 있는 그 곳.
지금은 오프라인 서점보다는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구입하는 비율이 높지만, 여전히 나는 서점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책을 고르는 걸 좋아한다. 또한 새 책 냄새를 맡는 게 어찌나 좋던지……. 특히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인 경우에는 매대에 있는 책 중에서 가장 깨끗한 책을 고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인터넷으로 책을 받게 되면 책상태가 간혹 좋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고른 책을 안고 서점을 나오면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왠지 모르게 가볍다.
난 어릴 때 대형서점을 통해서만 서점을 접했기 때문에 동네마다 평범하게 또는 특색 있게 운영되는 작은 규모의 서점에 가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다. 조용하게 내 방식대로 책을 구경하고 싶은데 책방이 작을 경우 책을 사고 나오지 않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책방을 가는 이유는 책을 사기 위함도 있지만 내 마음을 충전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작은 서점보다는 큰 서점을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에 등장하는 고바야시 서점은 실제로 일본의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70년간 운영하고 있는 작은 서점이라고 한다. 이 책은 고바야시 서점의 주인인 고바야시 유미코를 모델로 한 소설로, 출판유통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인 오모리 리카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직접 유미코 씨에게 들은 이야기 중의 일부를 선택하여 각색하였다. 그래서 리카의 성장이야기와 유미코 씨의 에피소드가 소설 속에 같이 등장하게 된다. 픽션과 논픽션의 결합! 실화를 바탕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리카를 향한 유미코 씨의 조언에서 진솔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취업을 준비하다가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한 리카. 그 전까지 책이나 독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리카에게는 생소한 분야의 회사였고 그래서 더없이 낯설었다. 1개월의 연수가 끝나고 리카가 발령 받은 곳은 오사카에 있는 지사 영업부였다. 자신감이 현저히 낮고 사람을 만나는 곳만 피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리카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게다가 도쿄를 떠나 오사카로 가라니.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회사인 것도 걱정스러운데 거기에 타 지역의 영업부라니! 리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두려움을 앉고 첫 출근을 하게 된다.
리카는 본인이 연수한 한 서점에 도움이 되고자 몰래 베스트셀러를 배본하려다가 그 사실을 들키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지사장의 지시로 고바야시 서점에 가게 된다. 두려움에 떨면서 가게 된 고바야시 서점에는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우아한 아주머니가 리카를 맞이해주었다. 자존감이 낮았던 리카는 유미코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
“우리 가게 얘기가 별로 재미없었어?”
내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유미코 씨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유미코 씨처럼 일에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이제 막 일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렇긴 하지만요.”
“일도 사람이랑 마찬가지야. 조금씩 좋아지면 되는 거야.”
(중략)
“우선은 하나씩이라도 괜찮으니까 일이나 회사,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서 좋아해 봐. 그러면 자연히 좀 더 알고 싶어질걸? 뭐든 괜찮아. 모처럼 연이 닿아서 다이한에 들어왔는데 일도 회사도 사람도 좋아하지 못하면 아깝잖아.” -p.91-
“리카 씨. 충고 하나 해도 괜찮을까?”
“어떤......?”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쓰면 정말 얄팍해져.”
“하지만 저 같은 건.”
“봐, 또 ‘저 같은 건’.”
(중략)
“저는 그냥 저를 지키고 싶은 것 같아요.”
“지키고 싶다?”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기를 낮게 말해서 방어벽을 치는 거예요……. 참 약았죠.” -p.115-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일 때 나도 마음이 맞는 선배를 통해 힘을 얻은 적이 있다. 힘들 때 마음 터놓고 편하게 의논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자 행복이다. ‘라떼는 말이야~’를 들먹이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인생선배들이 있었기에 힘든 순간에도 억지로라도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런 소소한 훈훈함이 서로서로 연결되면 그나마 삭막하고 차갑게 느껴지던 세상이 조금은 따뜻함으로 채워지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내가 받았던 그 온기를 후배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따뜻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곳, 고바야시 서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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