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공부의 핵심은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세상에 “질문하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부터 질문하는 학생을 혼내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있다. 교사의 판단에 따라, “그냥 외워!” “쓸데없는 질문 하지마!”라고 면박을 준다. 교실 내에서 교사의 권위는 절대적으로 행사될 수도 있기에, 교사 자신이 의도한 수업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하는 어떠한 학생의 행위, 질문도 허용하지 않기도 한다. 이 경직된 분위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며 “질문하지 않는 삶”은 하나의 행태로 습관화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삶은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을 때-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정해진(?) 경로를 벗어난다-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우왕좌왕, 헤매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세상을 향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질문을 던지는 시점까지의 지식과 정보, 경험을 가지고 그 나름의 답을 내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 답이 더 이상 나에게 자극을 주지 못할 때까지. 그것이 생각하면 사는 삶이며, 생각하며 살지 않으며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며, 그것은 인간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루하다.
김헌은 ‘반복해서 질문하는 삶’의 중요성을 머리말에서 강조한다. 질문이 많다는 건, 단순히 질문의 개수가 아니라 “굵직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계속 던진 횟수의 문제”라 지적한다. 그는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존재와 죽음, 자존과 행복, 타인과의 관계, 시민의 힘, 교육, 역사의 발전, 갈등을 넘는 화합, 그리고 인간의 성장에 대한 아홉 가지 큰 질문을 가져온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질문의 기초는 먼저 사실 확인의 절차, 즉 팩트 체크가 선행적이다. “정말?”, “진짜야?”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의 대화 속에서 참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대화 상대가 제공하는 정보의 진실성을 묻는 의도의 말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사실 확인, 팩트 체크의 단계를 건너뛰고, 상대의 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배경에는 화자(話者)의 ‘생각 없음(mindlessness)'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기실, 『진실의 흑역사』 톰 필립스의 말처럼 세상에 거짓은 흔해 빠졌고, 진실은 희박함에서 기인한 양적 차이가 문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실확인절차의 첫 번째로 육하원칙을 따져볼 것을 주문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를 분류해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나 자료를 찾아보라고 조언하며, 마지막으로 내용 자체가 논리적으로 정합하는지 알아보라고 한다.
주어진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으면 정보 이외의 것들, 화자와 수용자의 관계, 주변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상황까지, 즉 앞뒤 맥락 관계를 파악하여야 한다. 사실 당파적 이익, 이데올로기, 왜곡된 언론의 보도 등의 문제로 정보의 정확성만큼이나 맥락 파악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적극적 실천 및 행동의 단계로 접어들기 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가치 판단의 단계가 있다.
김헌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먼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의 실용적, 경제적 판단이 있다. 한 마디로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의 윤리와 도덕적 가치 판단이다. 그리스인들의 마지막 기준은 가장 그리스인다운 질문이라 저자가 평가하는 가치 판단의 방법인데 ‘아름다운가, 추한가?’라는 질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추구한 미(美)는 단순한 외적 미와는 다르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추구하는 가치이며 뭔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끌어당기는 어떤 가치라 그는 말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에 등장하는 ‘실천적 지혜, 프로네시스(phronesis)’를 인용하며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며 시의적절하고 상황에 잘 맞은 답을 끌어내는 것’이 좋은 질문을 던지는 방법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에피쿠로스학파(쾌락을 중시), 스토아학파(절제를 중시)와 더불어 같은 시기 풰론이 이끈 ‘회의학파’의 ‘에포케(epoche)’를 강조한다. ‘에포케’라는 말은 ‘판단 중지’라는 뜻으로 매사에 성급하게 결론을 도출하지 말고, 신중하게 판단을 보류함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회의’는 어떠한 진리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말한다. 이 ‘에포케’의 습관이야말로 질문을 끊임없이 지속해나가는 힘이 되며, 내가 아집에 빠져 타인을 멸시하거나 핍박하는 것을 방지하는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