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전라도에서 보낸 시니어들에게 이 시집 한 권, 최승권 시인의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를 기꺼이 추천하고프다.
시인의 생일은 봄인가 보다. 남편 생일에 두릅을 무치는 아내의 뒷모습을 시 한편에 담았다. 그게 우리집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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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생일이랍시고 / 아내는 심심산골 밭에서 / 계곡 물소리에 초목머리 감고 나타난 / 남녘 개두릅 한상자를 택배하였는데 .....(생략) .... 다듬고 데치고 찬물에 옴싹 씻기더니 막걸리 식초에 찰고추장, 다진 마늘을 개고 / 종당에는 통깨에 참지름 돌돌 몇 방울 사알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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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두릅 나물무침 중에서)
시어들 하나 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라. 참지름 돌돌 몇방을 사알살... 을 읽으면 진짜 고소한 참기름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진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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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
장독대에도 나뭇가지에도
갓 핀 매꽃에도 송이송이 맺혀 있다가
하얀 열정들이 쌓여서 더욱 싸늘해지면
모두들 이때쯤이다 싶게 길 한모퉁이에
구름할멈 모자에 목도리 두르고 흐믓하게 웃으며 서 있다.
웃다가 웃다가 슬픈 제 몸 녹아서 흥건한 기쁨으로 흐르더라도
골목마다 아이들의 작고 여린 노루 발자국들을 남겨 놓았다.
(눈 사람과 나 중에서)
시인은 눈 내려 쌓이면 아이들이 만든, 동네 어디엔가 서 있던 눈사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여 반백년을 넘긴 지금까지 그의 기억속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 아내와 딸, 그의 추억속 공간과 풍경들을 모두 시어로 차곡차곡 엮어서 시집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흙바람 이는 돌담벼락 모퉁이길에서
하냥 기다리는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자식들 돌아올 허기의 초저녁을 위해
담홍빛 손전등 여럿을 벙글어 매달아 놓으셨지요.
악아, 살다보니 사싱에 골목이 이렇게 환한 날도 다 있어야.
(능소화 통신 중에서)
자식들들에게 어머니는 영원한 추억이고 그리운 사랑일게다. 그 시절 누구라도 그랬듯 자식농사 때문에 시골깡촌에서 광주로 올라와 “사람들은 사과를 창고에 쌓아놓고 먹더라.”며 부러워 하던 내 어머니가 자식들 먼저 챙겨 먹이고 늦은 저녁 아버지의 밥그릇을 이불 속에 넣어두곤 했던 기억까지 모두 소환되었다. 시골집 감나무 아래 올망졸망한 어렸던 네 형제들이 찍은, 막내는 자기가 없다녀 볼 때마다 서운해 하는 그런 낡고 낡아서 더 소중해진 흑백의 가족사진처럼 시인의 시어들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사진은 아니다.
.. 내 나이보다는 어리고 젊은 친구들에겐 단편 드라마 근대 시대극에서나 볼 법한 낯선 풍경화일 수 있겠지만,`시집에서 뜬금없이 만나는 유튜브와 페북이란 단어까지 포함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그래서 곽재구 시인은 그의 시집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한 모양이다.
사람은 무정해도 그대는 유정해서
꽃그늘로 입그늘로 그 자리에 서 있구나
돌아올 봄날을 기다리며 묶인 도꾸처럼
녹슨 철문과 금 간 담벼락을 지키고 있구나
(무정식당 살구나무)
하지만 시인의 시들이 동네 한귀퉁이를 지키는 나무와 수줍게 피어난 꽃으로 시선을 옮겨오면 수묵화에 색감을 더한 듯 색감이 다시 살아나기도 해서 올 봄 선물받은 이미경 작가의 두 번째 그림 에세이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가 시어로 변신한 느낌이다.
한편의 풍경 속에서조차 먹먹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 이 시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질반질하면서도 반짝거리는 몽돌같은 시가 된 건 전라도 입말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엄니, 송편이 겁나 이쁘네요.
엄니, 솔찬히 맛나게 생겼네요.
(설레임 중에서)
TV드라마에서 듣는 촌스럽고 부자연스러운 그런 전라도 말이 아니라, 가슴 밑바닥부터 차오로는 따듯한 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전라도 말로 지어진 그의 시어들은 추억상자가 되어 전라도에서 태어나 자란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 하게 만든다.
몇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형제 도시락을 싸주시던 풍경이며 함께 송편을 빚던 그런 추억들이 가슴 절절하게 다시 떠올라 형제들 단톡방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좋은 추억일수록 자주 꺼내보는 게 어떤 힘을 주는 지, 알 수 있게 하여 주어서 고맙다.
이번이 두번째 시집이라는, 이름 낯선 시인의 시어들이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고 기쁘고 다시 한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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