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

[도서] 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

김순남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세조, 이유 조선의 7대 임금이요. 할아버지 태종처럼 정난을 일으켜 조카를 따르던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보위에 오른다. 

세조는 세종이 아직 왕이 되기전인 1417년 충녕대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왕조국가에서 둘째는 애매한 위치다. 사실 자신의 목숨 보전하기도 힘든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8형제(적자 기준)를 둔 대표적인 집안 몇 군데는 늘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첫째는 태조 이성계다. 그의 맏아들 진안대군은 왕조가 개창되고 얼마 있지 않아 사망한다. 

제2자였던 이방과는 아버지를 닮은 무인이었으나, 왕조개창의 공은 동생인 정안대군(후에 태종)에게 더 있었다. 전실 소생인 셋째인 익안대군은 태종을 지지했고, 넷째인 회안대군은 태종과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다섯째, 여섯째는 모두 형의 편에 선 왕자였고, 일곱째와 막내는 태종에게 죽임을 당했다.

 

둘째는 세종대왕이다. 그의 맏아들 문종(향)은 적장자로 세종 말년의 치세에 기여했으나, 39세의 나이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붕어한다. 둘째 세조, 셋째 안평, 넷째 수양의 편에선 임영대군, 다섯째 광평은 요절했다. 여섯째 금성은 단종복위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일곱째 평원대군도 요절해서 세종말년의 숭불을 촉진시킨다. 막내는 영응대군으로 세종이 총애하여 승하할 때 영응대군의 집에서 생을 마쳤다. 이들은 형제끼리 다투고, 한 형을 지지하거나 또는 요절하는 등 아버지에세 슬픔을 안긴다. 

 

셋째는 현대가다. 현대가 정주영 회장의 첫째 아들은 교통사고로 현대가 아직 오늘날의 규모가 되기 전 작고했다. 둘째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다섯째 동생인 정몽헌회장과 대립했다. 셋째는 현대백화점 회장, 넷째는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 여섯째는 정치인 정몽준, 일곱째는 현대해상 정몽윤, 여덜째는 정몽일 등 팔형제가 아버지의 대권을 두고 대립한 이력이 있다. 

 

세조 이유는 무에 뛰어났고, 공법 제정이나 한글 창제에도 관여했을 만큼 나랏일에도 능했다. 하지만 세종대왕 승하 후 형인 문종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권세를 탐해서 죽을뻔한 위기에 있을 수도 있었다. 셋째인 안평과 대립했다. 

왕좌에 오른 이유는 단호하면서도 유능했다. 진관체제 확립, 국가 운영의 만세성법인 <경국대전>과 <동국통감>의 편찬, 검약을 기치로 국가 세출의 표준화를 도모한 「횡간」 제정 등 왕조의 기반과 토대를 굳건히 했고 왕권을 강화했다.

훈신들과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치적인 면에서 홍윤성의 만행 등을 눈감아주고, 신하들과 술자리를 많이 했다. 

 

군주평전 세번쨰로 태종, 세종에 이어 세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은 성종이다. 

 

다만, 명군의 이야기는 조금 부족하고, 폭군 또는 편가르는 정치 이야기가 조금 더 비중이 있는 듯하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