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작가가 이리도 많다. 금정연이라는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지만 서평가이자 작가인 그의 택시 사랑은 참 깊고 넓기도 하다.
차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요즘. 차가 없으면 거래처에도 못가고 장거리 출장도 못가는 마당에 이런 애절하기까지한 택시 사랑은 좀 이해가 안되는 정신 세계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택시를 타고 만난 택시 기사들과 동승했던 지인들의 이야기는 낄낄거리게 만든다. 나를.
작가의 문장은 그 사람을 투영한다고 생각하기에 금정연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이라면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와 사건들을 제공하지 싶다. 시니컬하게 툭툭 내뱉는 말들이 곱씹을 수록 재미있는 대학 동창 희태가 떠오르는데 사업가로 대성한 그 친구가 책을 쓰면 이런 책이 나올까 싶기도 한데.. 걔는 돈 안되는 일에는 큰 흥미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루는 이야기들은 다양하면서 재미있다. 수영 배운 이야기, 주례 선생님한테 낚여서 평균나이 51세의 시나리오 창작 집단에 쫓아 다닌 이야기, 시를 가르쳐주신 이승훈 선생님 이야기, 택시 탔다가 봉변 아닌 봉변 당한 이야기랑.. 안동에 출장 갔다가 하마터면 동대구로 갈뻔했던 이야기까지. 작가의 개그가 곳곳에서 지뢰처럼 터진다.
이승훈 선생님의 담배라는 시를 옮긴다.
담배
이승훈
깊은 밤 술에 취해 택시를 타면 담배 생각이 나고 난 기사 옆 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말한다 담배 한 대만 피웁시다 그러세요 어떤 기사는 허락하고 에이 좀 참으세요 어떤 기사는 참으란다 깊은 밤엔 많은 기사들이 담배를 허락하고 난 창문을 반쯤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가 떨어져 기사에게 담배를 빌릴 때도 있다 어느 해던가? 성냥을 켜던 나를 보고 기사가말했지 선생님 이상하네요 아니 켜기 쉬운 라이터를 두고 왜 성냥을 넣고 다니십니까? 네 성냥이 좋아서요 라이터는 무겁고 성냥은 가볍잖아요? 그런 밤도 있었다
출처: http://ksjkimbyeoll.tistory.com/701 [살구꽃이 피면]
그러게.. 읽다보니 착착 감기는 시다. 이런 시를 좋아한다면 나쁜 사람일리 없다는 어설픈 선입관까지 생길 지경이다.
학교마저 나랑 동문이니.. 어쩐지 정이 가더라.
우울할때 꺼내 읽으면 한참동안 유쾌한 기분전환이 될만한 책인데..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만한 구절이 역시 책속에 있다.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우리는 지구하고도 한귀퉁이에 잠깐 살다가는 한점에 불과한 인생.. 이라던가.. 뭐 그런 식의 문장인데 (문장을 기억하는 능력에 한해.. 나는 거의 빵점짜리다. 명언이나 인용구를 잘 쓰지 않는 이유는 그걸 외우지 못하기 때문)
책을 뒤져 찾아낸 정확한 문구는 이거다. 영원의 관점으로 응시하면 우리는 넓디넓은 우주의 무수한 별들 속 한 점에 불과한 존재야.라는 것인데 금정연의 아내가 술에 취하면 설파했던 이야기라고. 그들은 그것을 점론이라고 불렀다 한다. "영원의 관점으로 응시하면"이라는 표현은 중세 철학자들이 자주 쓴 것이고 마크 롤랜즈도 그런 말을 했다고. (마크 롤랜즈느 또 누구냐..)
책이 맘에 들다 보니 리뷰도 길다. 이런 사심에 가득한 리뷰라니. 아무튼.. 시리즈는 지금까지 세권 정도 본 것 같은데 작가들이 다들 개성도 강하고 뭔가 재기 발랄, 유쾌 상쾌 통쾌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방향성은 각자가 다 다르지만.
책이 얇다고 가격도 얇지는 않은게(9900원) 좀 맘에 걸리지만.. 만원도 안하는 책 한권으로 기분 전환이라던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쓴 글들을 읽으면 머리도 참신해 지니 좋다.
금정연 작가도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 나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내가 갈뻔한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상당히 긴 시간을 건너뛰어 내가 다녔던 한양대를 졸업한 인연이다. 탁재형피디처럼.. 인연이 닿아서 만나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쓸모없는 첨언이지만.. 나도 택시 운전 자격증이 있다. 벌써 2년전에 따뒀다. 여차하면 택시를 운전하다가 그토록 택시를 사랑하는 금작가를 태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짜 웃기겠네. 길 막힌다고 혹시라도 투덜댄다면.. 영원의 관점에서 응시하면 지금 이순간도 번개가 치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라고 한마디 해줘야지. (너무 뻔하긴 하다)
문학 작품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소소하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http://ksjkimbyeoll.tistory.com/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