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왠지 빛을 못보고 하루에 열여덟시간씩 공부만 한 사람처럼 피부가 하얗게 떠있었다.
'그래서 이 넥타이가 얼마라구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2009년 시즌에 풀린 페라가모 넥타이 디자인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보통 짝퉁은 광이 틀리잖아요? 너무 번쩍거린다고 할까? 빛을 받으면 천박하게 반짝거려서 한눈에 짝퉁이라는게 딱 티가 나죠.'
거리에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하는 형국인지라 혹시 누가 불러 세울까봐 무서워하는 소매치기처럼 사방으로 눈알을 굴리면서 그 남자는 수다스럽게 말을 이었다.
'요 무늬 보이시죠? 이게 잘 못 찍으면 번지거나 무늬가 일정하지 않거나 디테일이 망가지는 겁니다. 이렇게 딱하고 봤을때 은은하고 간격이 일정하면서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제대로 만든거죠.'
나는 그냥 길가다가 눈에 띈 짝퉁 넥타이 가격이 궁금했을 뿐이다. 안그래도 얼마전에 짜장면 먹다가 튄 얼룩이 안빠져서 아끼던 넥타이 하나를 분리수거한 아픈 기억도 있고 해서 같은 브랜드의 짝퉁은 얼마인지 자연스레 궁금했던 것 뿐인데.
'그래서 이 넥타이는 격이 틀리다 이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인 정신이라고 해야겠죠.'
그 남자는 보일리도 없는 먼산을 지긋이 쳐다보며 쓰고있는 뿔테안경을 슬쩍 올리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나도 급할 것 없는 귀가길이 새삼스레 급해지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가 내 소매를 잡았다.
'손님, 진정한 특 에이급을 구분하시려면 요 뒤의 라벨을 보셔야 됩니다. 저희는 페라가모 생산공장에서 직접 빼온 라벨을 쓰거든요. 이것도 위치와 바느질하는 실의 색깔, 강도까지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하구요. 전문가가 수작업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이말씀입니다. 아.. 이런 작품은 정말 어디가도 구경하기 힘드실겁니다.'
페라가모 매장에 가면 산처럼 쌓여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 인내심을 발휘한 기억이 있는가를 돌이켜 보니, 꼴보기 싫었던 부장이 빙부상을 당했을때 장례식장에 갔다가 개그콘서트를 보며 터져나오던 웃음을 참느라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래서 그게 얼마라구요.'
고시원 책상에서 하루에 열여덟시간씩 공부만 한 거 같이 피부가 하얗고 검정 뿔테가 잘 어울리는 허름한 잠바 차림의 그 남자가 말했다.
'단 돈 이십팔만원입니다. 손님.'
제길, 정상 매장가격의 두배쯤이 아닐까?? 이사람 공부만 하다 미친건 아닐까?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짓는 것도 이해합니다.'
오지랍 넓은 표정을 지으며 짝퉁 넥타이를 파는 고시생 닯은 중년의 남자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는 가격이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준것인지 나도 자리를 뜰 생각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저희 작.품.은 딱 한점씩만 만듭니다. 물론 오리지날은 매장에 여러개가 있겠죠. 하지만 손님이 이 작품을 사신다면 손님은 이 세상에서 딱 하나 뿐인 오리지날과 완전히 똑같은 어둠의 명장이 만든 페라가모 넥타이를 소유하시게 되는겁니다. 물론 매장에 들고가서 바꾸실수도 있습니다. 저희 작품은 매장 직원도 구분 못할만큼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손님의 마음속에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생길겁니다. 이건 진짜가 아니다. 가짜야. 가짜라구. 나는 이 세상에 딱 하나 뿐인 진짜랑 똑같은 완벽한 가짜 페라가모 넥타이의 소유자다. 라는 자부심 말이죠. 같은 말을 두번 하기는 싫지만 저희는 한 모델당 딱 하나의 짝퉁만을 만듭니다. 말 그대로 작품이죠.'
내가 그 넥타이를 샀는지, 사지 않았는지 욕을 퍼붓고 돌아섰는지는 굳이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을 통털어 햇볕도 제대로 못본듯한 구부정한 그 남자, 넥타이를 팔던 그 남자만큼 자기 확신에 가득한 사람은 없었다고. 그리고 어둠의 명장이 만든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오리지날과 똑같아서 매장 직원도 구분을 못하는, 심지어 오리지날보다 비싸기까지 한 넥타이를 매고 다니며 세상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어떤 은밀한 쾌감을 얻고 있는 사람들도 가끔씩은 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