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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2051년 12월 25일, 내 생일이자 나의 절멸 예정일이다. 정확하게 81년을 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니지 요즘 세상엔 매장이 없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사어가 되었다. 심장이 멎으면 승화원에서 원자 단위로 분해되고 나의 일생은 국가 기록원에 데이터로 남을 것이다. 내 가족들은 아마도 내 기일에 나를 추모하며 내 일생을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남겨왔던 기록들과 했던 일들이 모두 남아 있으니 어설픈 자서전보다도 나를 잘 이해하게 되겠지.

 

사망이 아니라 절멸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만약에 2011년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에 온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정치,경제,사회를 포함한 인간의 생활 양식이 이렇게 빨리 바뀐 것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불과 40년만에 인류는 그동안 인류가 구축했던 모든 것이 바뀌는 기적의 시간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요한이 있다.

 

요한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물론 지금에 와서야 국적이라는 것은 지리적인 또는 문화적인 구분에 불과하다). 그의 생일은 2011년 11월 11일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알고있는 상식이다. 그의 생일을 기념해서 나라마다 거창한 축제가 벌어지고 그의 일생을 다룬 각종 미디어들이 넘쳐난다. 과거에 영도자의 생일을 이렇게 거창하게 축하한 건 일부 독재국가였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모든 인류가 요한의 생일을 축하한다. 인류는 그 시점부터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한의 생애에는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고 사람들마다 주장하는 바가 몇가지씩 다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진실한 의미에서 천재라는 점이다. 그는 이전의 모든 과학자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과학자이고 모든 독재자와 선동가들을 웃으며 설득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으며 모든 철학과 종교에 말 그대로 통달한 사상가이다. 어떤 이론이나 주장으로도 그를 이길 수가 없고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은 그가 정립해 놓은 이론이나 발견을 따라가고 해석하고 응용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요한의 업적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과학, 경제, 정치, 사회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첫번째 분야는 과학이었다. 그는 불과 열살이 되기도 전에 우리가 그전까지 알고 있던 모든 과학분야를 섭렵하고 발전시키기 까지 했다. 어린 요한을 스카웃하기 위한 경쟁이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연구기관에서 벌어졌지만 이미 열한살의 나이로 과학분야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못느낀다고 발표한 요한은 인류의 역사와 철학, 정치와 종교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요한의 위대함은 그가 불멸이라는 점이다. 20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그동안 연구해온 분자생물학과 의학등의 연구 성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동시에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수명을 제어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사회적인 파장을 고려해서 오직 자신에게만 불사 불멸을 허용하고 그 결과를 폐기한 것은 그동안 그가 공부한 인간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류가 거기에 동의하고 있다. 천재는 한명이면 되고.. 불사 불멸의 존재도 하나면 충분하니까.

 

요한이 사전에서 없애버린 단어는 무수히 많다. 굶주림, 차별, 독재, 불평등, 전쟁, 폭력, 기상이변, 급작스러운 재난, 질병, 환경파괴, 지구온난화등등이다. 최근의 인류는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소한 범죄와 폭력, 인간들의 예기치 않은 이상행동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 역시도 통제 가능한 수준이다. 각자가 자기가 추구하는 일들을 하면서(혹은 하지 않아도) 자기의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있고 비참함이라던가 과거와 같은 대규모의 재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인류는 유토피아의 시대를 맞이했다.

 

요한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그의 막대한 경제력과 과학 기술이 있었다. 스물 다섯살의 생일에 이미 세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된데는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안목으로 이미 주식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것도 있었지만 그가 설립한 요한테크놀로지가 개발한 핵심기술과 특허가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것은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줄기세포 치료법의 원천 기술과 인간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유비쿼터스 환경의 구축이었다. 그로 인해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모두 합병되었고 삼성이나 애플, 구글등의 유명 기업들도 모두 합병되었다.

 

날씨를 통제하고 수확량을 늘리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함으로써 식량문제를 해결한 것도 그의 업적이지만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을 바닷물에서 추출한 것은 인류가 직면했던 에너지 위기와 환경 오염을 동시에 해결하는 쾌거였다. 그로 인해 세계의 모든 에너지 관련 기업과 농수산물 관련 기업이 그의 소유로 들어왔다. 그의 미래에 대해 의구심과 의혹을 품고 있던 다국적 기업들이 그를 제거하려고 꾀한 것은 아마도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온유한 성품의 요한이 드물게 분노했고 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했던 모든 관계자들은 일찍 세상을 떠야 했다. 모든 세계 인류가 알다시피 개인의 탐욕을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관계자가 저질러온 악행은 입에 담기가 끔찍할 지경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악행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것. 이것이 지금의 보편적인 상식이다.

 

지금의 세계에는 국가도 있고 국경도 있고 고유한 문화도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옛날처럼 살아가고 모든 것이 요한이 태어나기 전인 2011년 이전의 생활상과 비슷하다. 아마도 그때의 사람들이 지금을 방문한다면 과거와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자동차와 각종 전자기기, 그리고 녹지가 많기는 하지만 비슷한 자연 환경을 보며 달라진 점이 없는 것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자신의 수명을 자신이 정할 수 있다는 것일게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의 수명을 정할 수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다국적 기업의 수장들은 군대와 경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을 동원해서 요한을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한의 정체와 동향은 지금도 그렇듯이 늘 오리무중이다. 그의 얼굴이나 신상이 매스컴에 노출되는 경우도 없었지만 이전에 발표된 사진이라던가 관련자료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 어느때이건 자신의 외모와 골격을 바꿀 수 있는 트랜스포머였기 때문이다. 그가 발명한 나노로봇과 분자생물학의 기술로 이것이 가능했는데 이 기술로 그는 불사 불멸의 존재가 된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을 늘 익명의 틀에 묻어 둘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인종의 어떤 사람도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 내가 길에서 스쳐 지난 많은 사람들중에 요한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국적기업의 수장들과 요한이 꿈꾸던 세계의 걸림돌들은 조용한 청소부들에 의해 서서히 제거되어 갔다. 나노단위의 로봇들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도 대기중에 흩어진 나노 단위의 로봇들은 날씨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오염을 청소하고 모든 것을 요한의 마스터 플랜에 맞도록 지구 자체를 조정하고 있다. 아마도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의 현실을 본다면 요한을 가히 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리라. (물론..요한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도 있지만 요한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수명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나노단위의 로봇들 덕분이다. 건강하게 하루 하루 충실하게 살다가 자신이 정한 수명에 따라 절멸을 수행한다. 고통도 없고 뒤척임이나 기나긴 병치레도 없다. 요한에 의해 맞이한 이 새로운 세계에서 죽음이란 예기치 않은 사고사이거나(물론.. 극히 드문 일이다.) 자신이 선택한 날에 닥치는 평화로운 죽음 뿐이다. 절멸이 수행되기전에 이를 연장하거나 단축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변경이 없다. 정해진 기간일수록 충실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경구다. 무의미하게 늘어나는 것은 지구공동체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수명 연장은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마치지 못한 연구가 있다거나 쓰지 못한 작품이 있다거나 풀지 못한 소원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에 말이다.

 

절멸전야에 조용히 앉아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본다. 인류가 직면했던 모든 수수께끼는 요한에 의해 해명이 된 부분이 많아서 더 이상 수수께끼가 없다고들 하지만 과연 절멸 이후의 인간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지금도 우주로 떠나 보내고 있는 우주 이민선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새로운 삶을 일궈낼 것인지 궁금한 것은 많기만 하다. 요한이라면 이 모든 것에 대답을 가지고 있겠지? 한때 그리스도교에서 요한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그를 악마이며 사탄이라고 규탄할때도 그는 종교의 자유를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의 세계에는 모든 종교가 자유롭게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나 정신세계는 과거와 비해 너무 풍부하기 때문에 역사가 깊은 몇몇 종교, 지역색이 강한 독창적인 문화와 관련된 종교들을 빼놓고 말도 안되는 사이비 종교는 모두 사라졌다.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는 인류가 가지고 있던 끔찍한 오해를 없애는 큰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절멸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가 나의 마지막 수수께끼이다. 나는 요한 덕분에 너무 행복한 일생을 보냈다. 과거처럼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데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과거라면 부유층만 먹었을 꽃등심이라는 부위도 공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생산된다) 인류의 전쟁이나 갈등, 민족분쟁등도 이미 사멸된 단어이다. 인류는 평화로운 가운데 자기 자신의 생과 인류 공동체를 위한 헌신, 그리고 각 지역에 흩어진 인류의 보물들에 대한 감상으로 일생을 설계한다.(아, 물론 언어의 장벽도 사라졌다. 태어날때부터 선택적으로 이식할 수 있는 휴대용 전뇌장치는 외국어를 즉석에서 번역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없지만 그 아름다운 울림 때문에 아직도 말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그 수수께끼도 내일이면 풀리리라. 나는 식구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내 데이타에 관한 국가 기록원의 열람 권한을 넘기고 밤늦게까지 마시고 즐기다가 식구들의 눈물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게 될 것이다. 그후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절멸을 맞이하며 승화원으로 옮겨져 DNA 캡슐에 담긴후에 내 가족들의 데이터 열람 키로 다시 재생되리라. 그렇게 되면 과연 사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라는 의식은 우주의 어디로 가서 어떻게 재생되는 지 알 수 도 있겠지. 아무리 요한이라해도 죽을 수 없는 불로 불사의 몸이니 그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내가 먼저 풀 수 있게 된 셈이다.(비슷한 이유로 절멸의 시간을 앞당기는 사람도 많다.)

 

자, 이제 마지막 글을 쓴다. 이것이 내가 남기는 세상에서의 마지막 기록이다. 행복하게 살았고 인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아서 더욱 행복했고 이러한 행복을 누리게 해준 요한에게 다른 모든 인류가 느끼는 것과 같은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길이 막다른 벽에 부딛히는 깜깜한 어둠뿐이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으련다. 내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들이 이 평화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에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천국은 이미 이세상에 도래해 있다. 신의 질투가 우리가 사는 이세상에 미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천국에서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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