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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들, 이젠 허무로 채워지는...
dyyu0724
200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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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책은 내가 3년 전쯤에 처음 접했던 책이다. 우연히 책방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제목, 어디서 먼저 본듯한 표지그림에 끌려 나도 모르게 선택하게 됐던 책, 그리고 현재 나는 '상실의 시대'를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원제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나는 유유정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마 새롭게 창작했으리라고 추정되는 제목 '상실의 시대'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상실'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기이한 뉘앙스를 풍긴다. 원래 있었던 자리에 있어야 마땅할 것이 어딘가로 행방불명돼버렸을 때의 느낌은 아련함, 그리움, 존재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과 미련, 현재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슬픔과 아픔의 울림 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애당초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어느 새 가까운 곳에 위치했었다가 돌연 사라져버린 무언가에 대해 상실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이 사물이었던 사람이었든지 간에 겪어본 상실감은 피상실자를 우울감과 어둠의 침연으로 빠뜨리고 만다. 물론 하나 없이 태어난 인생이라지만 그렇게 살아나온 인생이기에 사람은 곧잘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영영 자기 곁에 두고자 하는 과욕을 부린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얻은 것에 대해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하기 보다는 막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더 깊게 느끼도록 하는 횡포를 부린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본 이 책은 사람으로 하여금 반복적인 '상실'에 대해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어버리라고 말하는 대신, 어차피 반복되는 잃어버림에 대해 초연해지고 달관해야만 한다는 얘기를 하고있는 것만 같다. 어찌보면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허무'와 '허탈'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인생을 더 잘 살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처세술(?)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잃어버림'에 대한 면역을 기름으로써 결국엔 끈질긴 집착과 집요함을 내던져버리고 자유로움 속에서 편안하게 갈 길을 갈 수 있다는 심의를 조심스레 제시한다. 물론 무라카미는 불교도는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가 작품의 마지막까지 애지중지하는 가치는 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꾸만 주위의 누군가가 떠나버리고 사물이 없어진다고 해도 누군가에 대한 애틋하고 가없는 마음은 절대 버리지 말고 아니, 역설적으로 그런 감정만은 지켜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자, 우리는 정말 왜 살아가는 걸까. 조물주가 존재한다면 그는 우리를 왜 이토록 험난하고 고된 세상으로 내던져버린 것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진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미 다 인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누군가와 정을 나누고 마음을 공유하며 상대를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 바로 내 자신처럼 부족함도 있고 나약한 존재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 허물들을 채워주며 행복을 누리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내 빈틈을 채워주리라 기대하던 진실이 어느순간 착각으로 변질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도저한 상실의 우물에 빠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또 그 사랑을 시작하길 바라는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진심이 아닐는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소설 속에서는 극단적인 상실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살'과 '죽음'이 빈번하게 나오지만 그렇게 내 주위에 누군가가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해도 이에 굴하지 않는 생명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치… 인생이 전혀 허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에 휩쓸려버린 채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사랑하자,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자, 설령 그가 내일 나를 떠나버린다고 해도, 군데군데 페인트자국 벗겨지듯 비어있는 삶의 어떤 부분을, 우리는 사랑 외에 다른 것을 채워넣을 도리가 없다. 허나 나를 떠나간 그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며 원망하지 않는 것. 차라리 그 대신에 다른 누구와 살을 부대끼며 새사랑의 싹을 틔우는 게 지혜일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할 실수투성이 우리지만 그런 실수를 스스로 용서하면서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주기'를 시작하자. 그게 작가가 바라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