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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딸에 대하여 - 오늘의 젊은 작가 17

[eBook] 딸에 대하여 -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철학 소설 3부작 중 <평범한 인생>이라는 작품이 있다. 단순하고 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삶에도 의미가 있다는 내용인데, <딸에 대하여>를 읽으며 그 평범성에 대해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 평범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것, 일 년에 한두 번은 여행도 가고 남들한테 자식 자랑, 손주 자랑도 하고 그런 삶. 주인공 '나'는 결혼하기 전 교사였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위해 퇴직하였다가 생계를 위해 도배, 교습소, 운전 기사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지금은 요양 보호사로 일한다. 사별한 남편은 해외파견 건설노동자였다. 남은 재산은 낡은 2층집 주택. 가방 끈이 긴 딸은 시간 강사로 일하는데 밑 빠진 독처럼, 계속 손을 벌린다. 이제는 주택을 저당잡아 돈을 융통해달라길래 들어와 살라고 했다. 함께 온 그 애는 딸의 오랜 동성 연인이다. 나는 그 애가 싫지만 못 본 체 한다. 딸과 그 애가 점령한 주방과 거실에서 밀려나듯, 나는 내 방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다음 날, 그 애에게 집에서 마주치지 말자고 한다. 그 애는 넉달 치 집세를 냈으니 권리가 있지 않느냐 당돌하게 반문한다. 그 애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딸의 모습에 불편해진 나는 일찍 집을 나선다. 내가 돌보는 환자 젠은 젊어서 성공한 사업가였고 많은 사람들을 후원했지만... 젠을 보며 나는 나의 미래를, 딸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섬찟하다. 요양원에서 아무리 눈총을 받아도 젠을 정성껏 돌보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나. 이제 그녀는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딸 대신 그 애를 붙들고 묻는다. 딸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직된 동료들을 돕는 시위를 한다고 한다. 퍼런 멍을 달고 들어오고, 집은 행동가들이라는 사람들과 피켓으로 가득하고. 왜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지 않느냐 원망하는 나에게 그 애가 말한다. 자신이 딸의 생계를 책임진지 벌써 몇 년 째라고. 이 관계가 의미가 없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윤택한 삶을 물려주지 못하고 경제적인 책임을 지지 못한 죄로 나는 할 말이 없다. 이게 부모로서 지은 죄일까.

 

주인공에게 평범한 삶이란 무난하고 안정된 삶이다. 최선을 다해 키운 딸은 똑똑하지만 사회와 타협하는 법을 모르며 제가 믿는 정의를 위해 어머니와 연인을 희생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어떤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삶이 괜찮은 삶인지는 안다. 평범한 삶. 대부분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범한 삶.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그런 평범한 삶, 엄마는 자식이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딸의 동성 연인을 못 본 체하는데 그 삶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피하고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인정하면, 딸이 앞으로 살아갈 삶은 젠의 삶과 다름없다는 예감이 들어서다. 결혼을 하면 남편도 있고, 자식도 생길 것이다. 늙고 아파도 돌봐 줄 사람이 생긴다. 엄마가 아는 평범한 삶, 젠과는 다른 삶이다.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으나 이 소설의 딸은 부재하는 아들처럼 느껴진다.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지 못해서일까? 함께 실린 평을 보면 자궁가족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그 연장선 같기도 했다. 딸의 연인은 며느리이자 또 다른 딸이고.

 

우리 딸은 평범하게 살 수 있었는데 왜 너를 만나서라는 원망, 딸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사정에 대한 해설을 해줄 사람, 딸의 빈 자리를 채우고 나와 잘 지내보려는 끊임없는 노력. 전통적인 가족에서 며느리 포지션이 아닌가. 게다가 가장이 큰 일, 바깥 일을 하는 동안 부모와 아내의 희생은 당연시되는 것도 은근히 겹쳐진다. 연인의 엄마와 잘 지내보려는 그 수많은 노력들과 밀어냄이 맘에 차지 않는 며느리를 보는 시모 같았다. 부모가 자식을 어떤 소유물처럼 느낀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사위라면 그런 말을 안 할 가능성이 있어서? 모르겠다. 경제적 불안정성에 관하여서는 언젠가 비혼을 다짐하는 글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렸다. 다는 기억이 안 나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다보면 당신이 생계를 책임지게 될 시기가 온다. 남자가 퇴직해서 집에 있으면 당신은 애들 키우고 마트 캐셔, 파출부로 일하게 된다. 그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이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글이었다. 주인공의 삶이고 우리네 삶이다.

 

<딸에 대하여>는 주인공, 젠, 딸, 딸의 연인, 요양 보호사 동료 등- 등장하는, 세대를 넘은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어떤 안전망 바깥에 있는 삶. 그런 삶에 대한 글이다. 신념을 지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불안정한가. 평범한 삶을 살아욌지만 여전히 평범한 그룹에 속하지 못한 '나'의 바람은 내일로 미뤄진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세계에서 그의 세계를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정의와 윤리를 찾는 딸과 딸의 연인의 열정이 때론 가리워진 세상의 고독을 보지 못한 것처럼. 모나지 않고 평범한 삶이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세상에 맞서는 딸과 딸의 연인을 젊은 날의 치기라고 짐짓 외면하는 것처럼. 겹치지 않는 세계에 몸을 담그고 상대의 일방적인 이해를 바라는 것은 평행선을 걷는 것... 그렇다면 세계를 넓혀서 겹치는 부분을 만드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삶이 고단하더라도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루를 살기도 힘겨워서 평범함이 사치가 되는 세계를 옮긴 글이다. 외롭고 서늘하고 지쳐서 놓아버리고 싶지만 놓을 수 없는, 그런 삶. 초반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사가 마지막에 몸을 뉘이는 장면 위로 맴돈다.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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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자목련

    아, 저는 아직 리뷰를 못쓰고 있어요. 그래서 우선 추천만 눌렀어요, ㅎ

    2018.01.12 10:5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엘리엇

      리뷰 쓰긴 했는데 딱히 맘에는 안 들어요 ㅠㅠ 좋은 소설이었어요!

      2018.01.12 15:51
  • 파워블로그 게스

    말씀하신 것중 언젠가 생계를 여성이 책임지는 때가 온다는 그 말 정말 그런 경우 자주 봐요. 잘배우고 능력있으면 뭘하나요 경력 단절이 뺏어간 건 경력단절 구 자체만이 아니라 엄청난 자신감 상실인걸요. 남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제 여자가 집안 생계에 책임감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들은 실상을 몰라서 그러는거죠. 지들이 애 키우고 해도해도 끝도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집안일을 하면서 이대로 청춘이 기회가 사회적 위치가 서서히 사라진다고 느끼게 되는 일을 겪어보라고 해야죠.그러다 퇴직하면 이미 포기한 경력 깨끗이 잊고 아무 일이라도 하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여성인거는 오랜 경력 단절이 그거 아니면 안된다는 자만심 혹은 자존심도 뺏어갔기 때문일거에요. 어제까지 상무님 부장님 소리듣다가 어디가서 굽신거리겠어요? 결국 이래저래..
    책 내용을 보면 일단 딸의 행동도 조금 마음에 안들어요. 엄마 집에 파트너까지 데려다가 살게 되었다면 이거 뭐 부모 등골 빼먹는 건데.. 큰 정의를 위해서 작은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자라면 큰 정의의 빛도 바래질 수밖에

    2018.01.13 20:3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엘리엇

      게스님 말씀에 공감해요. 첨언하자면 딸의 태도에는 저도 그랬는데 복합적인 심정을 잘 포착해냈더라고요. 부모가 바라는게 자식이 잘 사는 건데 여기 나오는 딸은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면서도 한편으론 소수의 길을 가잖아요. 똑똑한 내 새끼가 보따리 장수 된 것도 서러운데(작품에서 엄마가 그걸 표현하지 않지만요) 왜 굳이 험한 길로 가려는지 이해를 못하는 엄마의 심정이요. 김숨 글에도 나오는 사회가 바라보는 남자 없이 사는 여자에 대한 시선(흠 있는 여자의 경우 더 쉽게 취하려는 눈길들) 같은 거 하지만 자식도 클만큼 컸고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하기엔 가시적으로 물려준 것도 없는 그래서 말 못하는 부모의 심정 그런 게 참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딸도 어려움이 많았겠죠. 하지만 함께 사는 연인이 또 다른 부모 역할을 하더라고요. 경제적인 면에서요 그래서 아들처럼 느껴졌나봐요. 집에 있는 돈 급하다고 빼쓰고 부모 집으로 들어가는... 그런 편견 때문에요. 여기 해설에도 실린 얘긴데 퀴어가 이 작품에선 경제적 불안정 측면에서 제시되거든요.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단어도 불어로 la precarite라고 영어로는 precariousness였어요.

      2018.01.15 14:44
  • 파워블로그 CircleC

    평범이라 말하지만 그건 참 가변적이고 상대적이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아파트 한 채에 1~3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 가고 하는 게 평범한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밥 안 굶고 자식 거느리며 사는 게 평범이고. 끝없이 비교를 하는 이상 평범의 기준과 욕구는 늘 오락가락할 겁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내려 놓아라? 이런 사회, 이런 구조에서는 절대 어렵죠.
    사람의 맘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이게 평범한 거고 어떤 사람에겐 저런 게 평범한 거죠. 나이 들어 우리가 말하는 평범은 우리가 살아오며 배운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 있어요. 모두 각자가 원하는 평범을 만들어가길 정말 바랍니다.

    2018.01.16 22:5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엘리엇

      써클씨님 말씀대로 평범함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죠. 소설 속 나의 평범함이 저렇고요. 우리가 흔히 보는 주말 연속극 서민들도 서울에 집 있고, 차 있고 자식 장성해서 독립했고 먹고 사는 데 지장없고 기타 등 등 그렇잖아요? 이거 대단한 거잖아요. 그런데 평범하다고 나오지요. 평범하다는 기준 자체가 아무래도 주변과 비교하여 정립되는 것 같고요.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학업 성적 대학 취업 연봉 결혼상대 아이 또 그 아이의 성적 등 어떤 사이클이 있잖아요. 거기서 아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아? 그런게 대체로 평범한 삶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듯해요. 82년생 김지영의 삶도 공감을 얻었지만 대학 졸업 후 무난하게 취직하고 결혼하고 하는 과정도 누군가에겐 부러움이 대상이 되니까요. 소비와 욕망의 시대에, 남들만큼 열심히 살았는데도 먹고 살기 힘든 고학력 중년 여성의 삶과 생각이 묻어나오니 참 많이 슬펐어요.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을까요. 쉼 없는 삶에서 이런 생각이라도 하니 삶을 붙들 수 있는 거다 싶고요. 저도 쓰면서 평범성의 고정관념을 떠올렸는데 한 번 더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1.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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