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도 비행기 안에서 보았는데... 처음엔 남자 주인공이 크리스 오다우드인 줄 알고 로즈 번이 새로운 코미디 영화를 찍었나 했다. 뭔가 두 사람이 좀 안 어울리는 조합 같아서 말이다. 아무래도 크리스 오다우드를 《아이티 크라우즈》에서 먼저 알게 된 터라 좀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에단 호크가 등장했을 때 너무 놀라웠다. 살도 찌우고 머리도 부스스하고, 한 물 간 락스타 이미지를 너무 잘 살려서... 크리스 오다우드가 모아 둔 여러 포스터 속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에단 호크인 줄은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점은 상관없이, 젊을 적 에단 호크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그 청춘을 살짝 추억하는 사진들이 종종 나온다.
주인공 애니는 런던에서 떨어진 시골마을의 역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남자친구 던컨과는 정말 오랫동안 사귀고 있다. 애가 있으면 벌써 학교에 가고도 남았을 나이. 던컨은 대학에서 미국문화에 대해 가르치는데, 터커 크로우라는 행적이 묘연한 싱어송라이터에 푹 빠져 있다. 거의 광신도 수준이다. 애니는 두 사람 사이가 더 진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던컨은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아버지의 유물 같은 박물관을 관리하는 것도 열심이긴 하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족족 윗선의 반대에 부딪친다. 금사빠인 동생 또한 골칫거리다. 늘 아이 같은 남자친구를 뒷바라지하는 것에도 지쳤다. 그래서 일이 벌어진다.
던컨이 모시다 못해 경애하는 '터커 크로우'의 미발매 녹음본을 듣고 '터커 크로우' 팬사이트에다 그 노래를 혹평하는 리뷰를 쓴 것이다. 그리고 그 포럼에서 어떤 사람이 메일을 보낸다. 자신이 '터커 크로우'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 노래는 쓰레기입니다. 그건 그렇고 여기 사람들 완전 또라이 같지 않아요? 한편, 완전히 삐져버린 던컨은 '터커 크로우'를 듣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있기 싫다며 나가버리고 그 시기 즈음 만난 강사와 본격적으로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애니도 '터커 크로우'라는 남자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워 간다. 그럼 터커 크로우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는 현재 열 살 남짓의 아들을 돌보고 있다. 아이 엄마네 집 차고에 머물면서 아들만 돌보고 있다. 아이 엄마는 다른 남자와 데이트 하고 있고.... 이쯤 되면 각이 나온다. 터커 크로우라는 인간이 얼마나 무책임한 인간인지... 설상가상으로 자식은 지금 돌보는 꼬마만 있는 게 아니다. 서로가 형제자매인지 모르고 있는 애들도 있다. 터커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외면하고 살아 온 터커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동생, 집, 아버지 등)을 다하며 살아온 애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호감을 느끼고 서로 만나 차라도 한 잔 마시기로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인생에 조금씩 발을 들이게 된다.
이 영화는 닉 혼비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 제목은 《벌거벗은 줄리엣》. 영화를 보고나니 오히려 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생략한 장면들은 어떠할까?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의 터커는 좀 멋진 모습을 연상하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평범한 아저씨일 뿐이고, 똑똑하고 재치 넘치는 애니는 자신의 모습에 의기소침해 하고 무기력한 현대인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껍데기를 살짝 가리고 그 내면을 보면 매력이 넘친다. 모든 사람에겐 찌질한 면이 있는가 하면 멋진 모습이 있다. 닉 혼비는 그걸 잘 아는 작가이고 말이다... 로즈 번과 에단 호크를 좋아하면 즐길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