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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도서]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 저/공진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책은 무척 재미있다.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어보면 그 짜임새나 진행 방법이 아주 체계적이고 잘 짜여진 판(세계) 위에서 캐릭터들이 상호작용한다는 인상을 받는데, 반스의 에세이는 보다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우리가 흔히 보는 요리 에세이들과는 다르지만! 일례로, 하루키의 글을 보면 유쾌하면서도 쿨한 하루키가 읽히지 않는가. (이제 와서는 하루키가 진짜로 유쾌한지 아니면 쿨한 이미지를 추구하면서 그게 녹아들었는지 알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반스의 글에도 작가의 성격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다. 처음에는 너무 따진다, 깐깐하다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보다 보면 빙그레 웃으며 공감하게 된다. 대작가답다.


원제는 《The Pendant in the Kitchen》인데, 왜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같은 제목으로 번역했을까? 처음엔 주방조명인 줄 알았는데 'Pendant'가 깐깐한 사람 혹은 꼬장꼬장한 사람같은 뜻이 있다고 한다. 주석도 그렇게 달아놓고 왜 자꾸 '현학자'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간혹 번역이 좀 거슬리는 점이 있었는데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이 책을 통해 인간 줄리언 반스에 대해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일단 처음은 일종의 불평으로 시작한다. 왜 요리책은 늘 불친절할까? 라는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휘감고 있다. 나는 그저 맛있고 즐거운 요리를 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고!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많은 레시피들은 '이렇게 하시라'고 하지만 '이렇게 해도' 결국 실패하게 된다. 반스는 'Chop'과 'Slice'를 구분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에서 많이 웃었고 또 공감했다. 둘은 엄연하게 다르다! 얼마 전에도 요리를 하는데 고기 담당인 사람이 "거기 양파 좀 잘라줘" 하는 거다. 나는 당연하게 거의 Chop을 해다주었다. 그랬더니 아니랜다, 자기가 바랐던 것은 'Slice'였단다. 그럼 양파절임을 할 거라고 얘기를 하든가... 그러니까, 이미 이 책 도입부에서 나는 살짝 웃고 있었다는 얘기다. 나도 요리책 사기를 좋아하고 읽기를 즐기는데 정작 그 레시피들을 따라 음식을 만든 적은 별로 없다. 진짜 생각해보면 그렇다. 거의 없다.


나는 이른바 '감'에 따라 요리를 하는 편이다. 왠만하면 지키는 편이지만 디저트 만들 때는... 뭐 한 큰술 뜨라고 하면 적당히 퍼고, 설탕을 두 컵 넣으라고 하면 한 컵 반 정도만 넣는 식이다. 가끔 완전 실패, 완실에 가까운 요리가 나오는데 이를 가리켜 반스는 "자신의 요리실력에 대한 과도한 자만"(73쪽)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정말 찔렸다. 그리고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오늘은 맛있는 걸 해먹어야겠다. 저번에 봐둔 레시피를 따라야겠다! 그런데 막상 펴보면 재료가 하나 없거나, 재료손질이 번거롭거나 한다. 그럼 비슷한 다른 레시피를 펼친다. 마찬가지로 번거롭다. 그러다보면 또 먹던 거 먹는 거다.


반스 또한 그렇다니 기쁘기도 하고, 아니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또 재밌었던 거는 누군가 뭘 안 먹는 이유를 듣고 나면, 그 이유가 자꾸 생각나서 나도 안 먹게 된다는 거 그것도 웃겼다. 성게를 왜 안 먹어? 했더니 콧물 맛이라서 안 먹는다고 그랬다고... 그리고 요리사 친구가 리조또 만들 땐 막 휘젓는거 귀찮으니까 처음부터 다 때려넣고 한 번 끓인 뒤 뚜껑 닫고 내버려둬! 라고 했단다. 반스는 너무 기발하다면서 한동안 그 레시피를 따랐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친구는 원래 레시피대로 막 육수를 부어가며 저어대고 있었다지 뭔가. 이젠 그렇게 안 한단다. 그럼 진작 좀 얘기를 해주지 그랬냐!!


그렇게 반스는 문학 이야기, 삶 이야기, 요리 이야기가 한데 뭉쳐져 즐거운 작품을 내 놓았다. 줄리언 반스는 스스로를 굉장히 낮추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미 그는 훌륭한 요리사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 쓰는 김에 하나 더 생각나서 써 보자면 "찌르퉁한 푸주한" 이야기인데 이게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영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슈퍼나 마트에 있는 정육코너 직원들은 사근사근하고 친절한데 비해서 정육점에서 일하는 분들은 뭔가 부르퉁하기 그지 없다. 어디 부위를 주세요, 이걸로 주세요 하면 마트 내 정육코너 직원은 그걸로 주고 저울에 올린 뒤, 우리가 확인하게 해준다. 반면 푸주한은 그런 요구는 묵살하고 자기가 고른 고기를 저울에 휙하니 올려서 우리가 눈금(숫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휙 봉투에 넣어 포장하곤 한다... 반스도 그걸 경험하고 있었다니 역시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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