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내 멋대로 파리에 관한 이야기일거라고, 적어도 미술관 순례기이겠구나라고 생각해버렸다. 파리 블루- 우울한 파리- 라는 뜻이었을까. 이 책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풀어놓았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에세이라고 해야할까. 이 글을 쓰는 동안, 아니면 그 이전, 이후까지도 작가는 우울하다. 항상 멋지고 낭만적인 도시였던 파리마저도 왠지 우중충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바리바리 싸들고가 방문하는 곳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퐁피두센터, 오르쉐 미술관, 루브르... 좀 더 밝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다소 의외였다. 역시나 여행을 가서 보는 것들은 자신이 아는 것에 한정되어진 것일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나 역시 힘들고 괴로웠기에,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책읽기가 조금 버거워졌다. 그녀의 어두운 기억 역시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같이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이 아무 데서나 부둥켜안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파리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다시《백년 동안의 고독》주인공들처럼, 그들의 사랑놀이는 그들 자신뿐 아니라 주변 모든 것에까지 영향을 미쳐, 심지어 주변 가축들의 번식력까지 엄청날 정도로 늘려놓듯 그들 사랑에 나도 덩달아 감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처럼 이 책 곳곳에서 부둥켜안고 있는 연인의 모습에 대한 글이나 사진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이가 둘이나 있고, 남편도 있는 그녀도 외로웠던 것일까. 그녀의 글 중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 이야기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사랑에 집착하고, 결국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와 명성을 얻지 못하는 까미유의 모습에 자신이 투영되어서일까- 그녀는 로댕을 오뎅이라고 부르면서 (이 부분은 참 크게 웃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피식 웃었다.) 까미유의 일을 안타까워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여행기가 있고, 어떤 여행기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당시 상황에 따라 달라지듯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과 끝에 서로 상반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다만, 이 책을 여행을 가기 위한 지침서로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파리를 처음 느껴본다면, 너무 안타까울 듯 싶다. 자신의 파리를 잘 구축해 놓은 다음, 작가의 파리를 나와 비교하는 재미를 느끼며 읽업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