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있는 오류라는 것은 종종 거창한 연역적인 이론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아차 싶을 정도로 스스로 생각지 못했던 실제 사례들을 통해서 확연히 들어나고, 또한 성찰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책 소개정도만을 봤을때 '그래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잘못들이, 특히 평균, 통계적이 수치에 대한 관념에서 많겠지. 그런 이야기들도 한번쯤 읽어봐야해'라고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분량이 다소 작아서 그렇지 참으로 날카로운 지적들이 만은 글이었다.
"우리 자신이나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분류되면 학교생활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어지고 사다리의 낮은 곳에서 살아갈 운명에 놓일까 봐 불안해한다. 상위권의 일류 학교에 들어가 높은 성적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고용주들이 우리를 거들떠도 안 볼까 걱정한다. 성격 테스트에서 잘못 대답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현재 우리는 다른 사람들 모두와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길 요구하는 한편 아메리칸 드림을 주위사람들과 비교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옹졸한 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여기에서 '아메리칸 드림을'이라는 부분만 빼면, 그냥 우리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비평으로 읽힐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런 생활방식은 좀 심한 정도는 있겠으나, 한국사회의 비교주의 평균주의의 폐해만은 아니라는 것이, 아주 보편적인 서양 중심의 도구적 합리주의의 일반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는 아돌프 케틀레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처음 나온다. 토드 로즈라는 저자가 생각하기에, 현대 문명사회에서 평균이라는 개념에 대한 맹신을 가지게 만든 실질적인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사람이다. 자연과학(천문학)의 방법론을 사회에 적용시켜, 객관적인 인간해석을 창시했다고 이야기하면 좀 과장일라나? 그런데, 어떠한 기법의 적용시 배경에 깔리는 실행자가 가지는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무서움이 바로 이 시작에서부터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케틀레는 인간의 평균을 해석하면 바로 이런 생각을 적용시켰다. 즉 개개인이 오류에 해다아고 평균적인 인간이 참 인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건 뭐 플라톤의 이데아에 접근하는 방법을 평균으로부터 찾았다고 해야 할라나? 하여간, 이러한 오류가 은근이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음을 저자는 거론하고 있다. 그 만연의 정도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당신과 나는 평균이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면을 특징지으며 자존심의 가장 내밀한 판단에까지 침투해 있는 섹에 태어났다." 저자가 여러차례 반복하듯이, 평균 출생몸무게에서 생장곡선, 평균성적, 소득, 지능 등등 산술적인 평균값을(그것이 중간값이든 최빈값이든~) 일종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정도를 가치판단의 척도로 생각하는 사회가 바로 이 사회가 아닌가 싶다. 자존심까지 말이다~!
자연과학을 배경으로 성장해온 나로서도 '개개인이 측정치의 배분으 그룹의 측정치의 배분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별난 가정'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살아왔다고 해야겠다. 이게 얼마나 별난 가정인지, 저자는 '에르고딕 스위치'라는 용어(피터 몰레나가 제안)로 설명하며, 기체 분자들의 평균운동 가정인 에르고딕 가정 역시 가장 기저에서는 에르고딕이 아니라고 밝혀졌다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하물며 수천 수만 사례들에 불과한 사람들의 외형적 특성들의 평균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믿고들 살아왔는지....
저자의 주장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삶의 평균적 경향이나 '본질적 기질'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저자는 그 사고방식을 무난히 제시하고, 사례까지 들고 있다. 여기서 책의 분량이 좀 아쉽긴 한데, 제시하는 그 방식 -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 - 을 좀 더 정교히 설명하고, 사례도 더 많이 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우리가 얼마나 생각없이 평균적인 수치들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려는지, 조직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가지는 고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를 인용해 본다. "... 그는 고용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수행되기를 바라는 '직무'에 대해 우선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했다.... " 나도 개인적으로 신입 연구원들을 뽑는 과정에 참여해봤지만, 어떤 일을 잘 하는지를 기준 삼아서 사람을 뽑아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짧은 면접에서의 대화정도? 학력과 자기소개서 등... 왜 이렇게들 사람을 뽑는지? 고시는 무엇이며 입사시험들은 무엇이지? 그런 사람을 기준으로, 즉 사람을 평가하는 몇 안되는 수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이 가지는 특장점들과 현재의 역량과 경험에 도닳게 된 맥락과 경로를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던 거고, 이 저자 역시 그런 사회의 보편적 편견의 희생이 되어왔던 것이라 하겠다. 저자의 말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진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경우든 당신에게 유용한 경로가 한 가지 이상은 있게 마련이라는 점과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최상의 경로가 미답에 가까운 경로일 것이라는 점이다." 평화롭게 얘기해서 가장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게 되는 철학이며, 평균주의의 오류를 잘 지적하는 시각이라 하겠다.
저자도 언급하듯이, 이와 같은 시각을 이 사회에 내 놓았을 때 거의 모든 분야에서 - 의학, 보건학, 교육학, 조직경영, 심리학, 사회학 등등등 - 기존의 전문가들은 "그럼 어쩌란 말이냐? 객관적인 접근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냐? 불가지론이냐? 일 하지 말자는 거냐? 아니면, 관련되는 관리자원이 지금보다 10배는 더 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하냐?" 등등의 대응을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사회 속의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내 삶의 목표와 기준이 평균일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향해서 살아야 하며, 내 아이는 어떠한 방향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자 반론은 앞에서 인용한 현대문명사회의 개개인이 가지는 평균을 기준으로 하는 목표설정과 그에 따른 불안함이다. 해 보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차마 그럴 용기나 엄두가 안나는 거지. 정말 꽉 막혔다는 비관주의가 들 정도로, 이 저자의 주장은 이 세상 곳곳에서 꽉 막혀있다. 하물며 각 지역의 날씨 정보에까지... 객관적이지 않은 인위적으로 설정된 기준에 따라 맞냐 틀리냐를 따지는 상황이 아닌가 모르겠다. (앙상블 모델링 기술에까지 회의가 들게 만들었다.)
일단은 교육에 대한 지적이 주된 내용이기는 하나, 정말 사회 곳곳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통계를 다차원적인 수치의 분포로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해본다. 평균, 편차/변위, 왜도/첨도, 상관관계 등등 각종 기법들이라는게 역시 있는 모든 정보를 제한적으로만 바라보게 하는 왜곡의 시작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현재를 회의하게 만들어라~!는 주장이 있다면, 이 책을 그 주장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