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판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뭔가 좀 다르긴 한데 싶었는데... 다른 사람의 평을 보니 '마술적 사실주의'의 영향/풍이 있다고 한 부분에 동감을 하게 된다. 사실 그 보다 먼저 느낀 건, 무라카미 류나 미셀 우엘벡의 책 등에서 나오던 극단적으로 잔인한 상황에 대한 견디기 힘든 섬세한 묘사 부분에서 독서 자체가 매우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속이 불편해질 지경이었으니까.
옌롄커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러다보니 그 극한까지 몰고다는 상황과 표현에 대해 먼저 인상이 남는다. 일단은 표현이었지만, 동의하듯이 거기에 마술적인 포장이 있는 것이라 감안하면, 오히려 견딜만 한데... 문혁의 처참한 상황을 정말 냉정하게? 무지막지하게? 한단계씩 밀어부치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 자체에서 참 견디기 쉽지 않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 당시를 문헌으로밖에 못본 입장에서,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 정도로 보고, 일부 통계가 언급되는 역사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사람이 이렇게 망가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름 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에 중국 문화계에 대한 경이감이 들기도 한다. 상부의 지시와 그에 반응하는 전달자, 그리고 수용소에 갇혀버린 지식인들, 개개인들의 고민/갈등 그리고 전락의 양태들이 참으로 다양한데, 중국 이야기들의 특징이랄까? 때로는 너무 격한 감정이 그려지다가 때로는 너무 냉랭한 반응과 움직임이 그려지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이야기들이나 서구의 그것과는 좀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모옌의 개구리에서도 슬쩍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번역의 문제일지, 한자소설의 특성의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얼핏 읽어본 서평자가 쓴 것처럼 중남미의 마르케스의 분위기가 더 나는 듯 하더라.
하여간, 저러한 상황을 경험한 국가이니, 뭔가 아직은 정상적인 정서를 기대하기 어렵겠단 생각도 들었다. 가슴아픈 장면들이 참 많았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지구를 빠져나오는 과정에 마주친, 그 지역으로 돌아가던 일반인들의 행렬이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저자가 마지막에 왜 시지프스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고.
이 작가의 다른 책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기대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