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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동백

[도서] 붉은 눈, 동백

송찬호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의 [인공정원]과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 지성사, 1994)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를 찬찬히 눈여겨보았던 독자라면 이번 세 번째 시집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줬던 송찬호만의 언어와 그 언어로 빚어낸 세계의 독특함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인공정원]에서 보여줬던 그의 시세계는 언어를 질료로 하는 시가 구축해야 할 하나의 지향점으로까지 보였다. 물론 세상의 저자거리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그 시끄러움을 삶의 꿈틀거리는 언어로 포획하여 다시 세상의 한복판에 내놓는 방법도 있을 테지만, 송찬호처럼 조금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몇 센티미터쯤 공중으로 떠올라 우리에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세계를 은밀히 건네어주는 시인도 필요하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두 시집은 조금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시적 원동력을 상상력에서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를 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지향하고 자 하는 상승적 상상력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은 삶으로부터 도망이 아니다. 어쩌면 '부정적 로트레아몽 콤플렉스'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를 동물적인, 그러나 자기 내부로 향한 공격성 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상상력은 현실계를 떠나 단순히 상상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의 단단한 방호벽에 미세한 균열, 그 자리에 조금은 아름다운, 언어와 존재 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도전 정신이다. 그러한 그가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낸 현실의 균열의 틈은 다름 아닌 [동백]이었다. 동백 은 사자이며, 사자의 울부짖음이며, 뚝뚝 끊어져버리고 말 목숨이며, 山經이다. 산경에 이르 는 길은, 壬申年 음력 동짓달 초하루, 파도가 잦아들자 동백국 으로 떠나는 배를 띄웠다 배에는 가축과 곡식 검은 부싯 돌과 흰 물을 실었다 가축과 곡식은 외눈이 반쪽이 쭉정 이 따위의 불구이거나 이름이 없는 무명의 것들로 동백 국에 가서 그들의 병을 씻어주고 귀한 이름의 종자로 얻 어올 작정이었다 배는 쉼 없이 나아갔다 그러나 동백국 길은 얼마나 멀고 험하던가 - [동백國에 배를 띄워보내다], 일부 무릇 생명이 태어나는 경계에는 어느 곳이나 올가미가 있는 법이지요 그러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저렇게 떨림이 있지 않겠어요? 꽃을 밀어내느라 거친 옹이가 박인 허리를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저 늙은 동백나무를 보아요 그 아득한 올가리를 빠져나오려 짐승의 새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 나오는 동백꽃을 이리 가까이 와 보아요 -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일부, 이하 강조 필자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 [동백이 활짝] 전문 그에게 동백은 현실의 꽃이자 현실 너머의 꽃이다. 검은머리 나무는 어디에 그 붉음을 가 지고서 이 세상에 꽃을 틔워보내는가. 틔워보냄은 뛰쳐나옴이다. 그 움직임의 역동성, [사자 ]의 동물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런 것이 송찬호만의 상상력이다. 왜 그는 멀고도 험한 붉은 나라, 동백국에 가려고 하는가.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 덩어리도 오늘만큼은 화사하게 동백 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삶이 비록 부스러기 쉬운 꿈일지라도 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였다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 [동백 열차] 일부 동백국은 부스러지기 쉬운 꿈 너머의 백일몽 같은 나라다. 비록 그것이 백일몽이라 하더 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를.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정 말 꿈이 아닐까.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나서 그것이 꿈이었구나 깨닫는 것처럼 우리의 현 실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꿈일지도 모른다. 미처 동백이 찬연히 피어있는 것을 다 둘러보기 도 전에 동백은, "동남풍/바람의 밧줄에/모가지를 걸고는/목숨들이 송두리째/뚝, 뚝 떨어져내 ([나, 동백꽃 보러 간다] 일부)"리고 만다. 멀리서는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사라져버리는 동 백,은 어찌보면 그가 기다리는,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詩 한 편이며, 노래이다.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 [임방울] 전문 여기에서 그의 시세계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시가 백 년 잉어가 되기 를 희망하는 것에 다름아닌 것이라는 것을. 산경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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