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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도서]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설재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 설재인

. 맞았지만, 때렸지만 서로 대등한 복서로서. 어느 한쪽이 억지로 허락한 적도 없는 지배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대등한 관계로서, 무작정 싸움박질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수 없이 훈련한 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사각 링 안에서 벌이는 최선의 한 판. 그게 스파링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는 하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책의 저자도 오랜기간 동안 준비해 임용고시에 합격한다. 게다가 두군데 학교가 동시에. 한곳은 일반고, 한 곳은 외고. 모두들 일반고를 추천하지만 외고를 선택한다. 그리고, 시간을 만들어 시작하게 된 취미활동이 복싱이다. 20대 중반 여성이 5년이란 시간을 넘게 최선을 다해 집중한 운동이 복싱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복싱을 선택한 이유부터 시작한다.

. 하루 중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다는 생각을 하던 바로 그때, 눈앞에 체육관이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김혼비 작가가 강력 추천했다는 거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아무튼 술을 쓴 작가. 자신이 경험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 일상의 소중함이 묻어나는 글을 쓰는 작가라 믿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예상은 했었다. 누군가 권투 이야기를 썼구나.

역시 예상대로다. 직접 온 몸으로 경험한 권투라는 운동에서 느낀 삶을 관통하는 통찰들이 넘쳐난다. 위에서 언급한 선택은 그렇다 치고, 5년이란 길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 구절이다.

. 어쨌거나 나는,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래도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다. 정년이나 안정에 목표를 두고 달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 돌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열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꿇고 있는 아이들도 족쇄를 끊어버릴 용기를 얻지 않을까 한다.

체육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낯설음, 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성철하게 되는 과정, 실제 시합을 하기 위해 계체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깨달음으로득하다.

. 큰 기대나 깊은 생각 없이 던진 '좋은 말', '힘 북돋는 말'로 사람이움직이고 바뀔 수 있다는 게, 인간관계의 신비로운 한 구석 아닐까 생각한다. 체육관에서 힘들어하는 초보 회원들을 보고 있자면 후다닥 달려가 그 옆에 서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 서서 정말 잘하고 있다고, 제가 초보자였을 때보다 백 배는 더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믿는 여유를 가지라고 싶다.

.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다. 이건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거울 앞 내 모습에 한없이 심취하는 것이 문제다.

. 이후에도 여러 번 감량을 반복하면서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점점 괴롭지 않았고, 체중계의 눈금은 내가 계획한 그대로를 출력했다. 감량은 시합의 일부이자 서로를 믿고 지키는 약속이다. 또한 자신의 몸을 의지와 정신으로 컨트롤하며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회열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기도 하다. 사람의 몸은 어찌 보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기계와도 같아서, 섭취할 칼로리와 활동량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마음대로 조각하는 것이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지 않은가?

나에게 가장 울림이 컸던 글은 책 끝머리 쯤에 나온다.

타인을 전력으로 응원해준다는 것. 그의 성과에 함께 진심을 다해 기뻐해준다는 것은 굉장히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사는 동안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일단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시기하게끔, 그 시기심을 원동력으로 삼게끔 교육과 입시 제도가 설정되어 있다(라고 생각한다). 교육받고 학교를 나와도 또 경쟁이다 자기 사업을 하든 회사에 취직하든 무조건 경쟁이다. 그렇게 죽는등 마는 등 열정적으로 살아도,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한마디로, 나 사느라 바빠 남을 응원할 겨를이 없는것이다. 특히 타인이 국가대표 선수나 프로축구 선수가 아닌 바로 내 옆의 평범한 누군가일 경우 더더욱.
그래서 내가 운동을 좋아한다. 31년을 사는 동안, 누군가를 순수하게 응원하는 감정을 운동하며 처음 경험했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링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경기도 아닌데 긴장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경험, 경기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 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그 사람의 움직임 하나만 눈으로 계속 따라가 가진 마음의 백 프로를 링 위의 그에게 쏟는 느낌. 공격 하나가 성공할 때는 내 일처럼 터뜨리는 함성, 그런 감정을 운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찾게 된다.

올해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들이 야구를 시작한거다. 내가 사는 곳은 수원이지만, 소속팀은 의왕리틀 야구단이다. 4월에 시작했으니 이제 8개월이 되어간다. 꽤 잘한다. 시합을 구경갈때면 저자가 느낀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아이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누가 나와서 잘하건 우리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을 한다. 리틀야구가 고등학교 야구보다 더 변수가 많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많이 연출된다. 그냥 동네야구라 생각하지 마시라. 한 팀의 에이스급 투수들 시속이 보틍 110Km 정도다. 초등학교 6학년이다. 하여튼 야구장에 가면 미친듯이 응원을 한다. 내 아이가 5학년이어서 게임을 뛰지 못해도, 나는 우리 팀을 응원한다. 20대에 복싱을 접한 저자처럼 젊지도 않고, 운동을 새로운 도전의 테마로 잡기엔 이미 세월의 무게가 크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간접경험을 하는 건 좋은 일이다. 저자처럼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통렬한 감정은 아니어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아빠로서 느껴보는 거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한참 봤다.

. 사실 누구보다. 떠나지도 포기하지도 스스로 죽어버리지도 않고 살아남아 어떻게든 달려온 나 자신에게 특히 고맙다. 너 이자식,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어쩌다 태어나 이 세상 사느라 수고가 많구나.

한해를 마무리 하는 오늘. 참 와닿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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