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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도서]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 저/김지우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드디어 이야기가 끝났다. 장장 4권이나 되는 책이었는데 어느새 끝이 났다. 아직 내가 맞이하지 못한 나이대의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의 기억과 또는 나의 현재와 같이 흘러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고, 이탈리아라는 공간적 배경의 차이가 주는 느낌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는 노년이 된 레누가 뒤를 돌아보며, 릴라와의 관계에서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가슴이 조금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았다고 정리해보는 모습에 그래 잘 했어하며 박수를 쳐줄 수 있을 것 같다.

 

4권에서는 중년이 된 그들의 삶에서 이제는 아이들의 인생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그들의 삶이 또 다른 양상으로 다급하게 돌아간다. 릴라는 고향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챙기면서 고향의 악의 주측인 솔라라 형제를 골탕먹이는 등 이제 고향에 없어서는 안될 정의의 선()이 되어 모든 사람이 릴라를 신뢰하고 찬양한다. 레누가 남편인 피에로를 버리게 만든 리노는 전처와 헤어지지 않은 채 두 집 살림을 하고, 동성애자인 알폰소는 자신을 릴라처럼 꾸며 미켈레에게 다가가고, 미켈레는 자신을 옥죄는 릴라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릴라와 레누의 임신, 지진, 나폴리에서 릴라와 이웃하여 사는 삶, 릴라의 딸 티나와 레누와 니노의 딸 임마, 성장하는 아이들, 레누의 책, 다시 이사….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레누가 니노를 선택하면서 자신을 잊는 것은 아닌지 내 가슴이 답답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결국 레누는 니노라는 어릴 적 사랑의 대상에 대해 한 번은 겪었어야 했고, 우유부단하고, 어떤 여자들과도 탁월한 관계맺음을 하면서도 어느 여자와도 이별하지 않는 니노를 지켜보고 그 현장을 목격한 후에야 니노를 버릴 생각을 하게 되고 겨우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P130 그러던 어느날 니노는 타소 가에 아파트를 임대했다며 나와 아이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니노는 끊임없이 말하고 선언하고 약속했다. 나를 위해 뭐든 할 것 같았지만 가장 중요한 엘레오노라와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라는 말을 내게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소설은 고향사람들에게 주인공과 같이 나이를 먹게 하고 결국은 생을 다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마무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악의 축이었던 솔라라 형제가 살해 당하면서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에는 그들 관계에 대한 결론이 들어있지 않다. 아이들이 잘 성장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레누는 자신의 책들도 계속 출간하고 위기의 순간에는 항상 릴라와 관련한 글을 씀으로써 다시금 독자의 사랑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사랑하던 딸을 잃고, 삶에 있어 루저가 되어 버린 아들 리노를 둔 릴라는 결국 어딘가로 사라져버려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라짐의 이유가 레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고 그래서 릴라가 결국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음으로써 독자인 나는 그냥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P653 이 모든 설정은 계획적으로 독자들에게 유년 시절 유사 딸의 상실과 성인이 되었을 때 진짜 딸의 상실을 연관짓도록 만들었다. 릴라는 그런 설정을 냉소적인 데다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독자들을 기쁘게 하려고 우리 유년시절의 중요한 순간과 자신의 딸과 자신의 고통을 이용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릴라는 레누에게는 영감을 주는 뮤즈, 동성이어서 그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책 제목에 있는 잃어버린 아이는 티나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라져버린 티나 일수도 있고, 레누의 관점에서 사라져 버린 릴라일수도 있고 아님 그들의 어린 시절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이 책의 끝에는 화해도 없고 릴라에 대한 반전도 없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거지? 지금 드는 생각은 사라져버린 릴라를 부르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릴라의 귀환? 둘의 다시 시작되는 우정? 릴라가 사라졌을 때 레누는 이번엔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고 했다. 그런데 결국 릴라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다.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지?

릴라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릴라의 버전으로 속편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그냥 한 소녀의 성장해 가는 모습과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친구의 이야기이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결론내기 쉽지 않은 캐릭터. 레누는 릴라의 행동에 상처입지만 그때그때 합의점을 찾는다. 그리고 매 삶마다 사람들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자신보다 릴라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거나 자신이 그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릴라와 이웃하여 살았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결국 레누의 삶 속엔 릴라도 함께였던 것이다. 레누는 니노가 니노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했던 것은 릴라뿐이었음을 깨달으면서 니노에 대한 마음을 희석시키고 자신의 아이들이 릴라를 찬양하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상처입는다.

P120 나는 그 후 일어난 모든 일에서 릴라를 배제했다. 상처가 너무나 컸다. 릴라가 내게 2년이 지나도록 니노가 자신의 결혼에 대해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해서가 아니었다. 릴라의 말이 처음부터 옳았음을, 그러니까 내 선택이 잘못되었으며 내가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을 릴라가 끝내 증명해내고야 말았기 때문이었다.

P326 나는 우리의 사랑은 이미 저물어가고 있지만 그가 이스키아 섬에서 릴라와 보냈던 시절은 그에게 평생 눈부시게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피에트로를 버리게 한 이 남자는 릴라와의 만남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P563 주차를 해둔 차고에 도착하는 순간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니노가 자신의 야망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사랑했던 사람은 릴라뿐이었다. 이스키아 섬에서, 그 후 일 년간 니노는 골치 아플 것이 뻔한 위험에 몸을 내맡겼다.

P586 “엄마랑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엄마일과 리나 이모뿐이니까요. 무엇이든 결국 그 두 가지 일로 귀결되고 말아요. 엘사가 받게 될 진짜 벌은 이 집에 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잘 있어요. 엄마

P614 나는 릴라가 나폴리라는 도시에 관한 총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릴라는 나에게는 그 거대한 계획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릴라가 자신의 모든 열정에 나를 끌어들이던 시기는 이제 끝난 것이다. 릴라는 나 대신 내 딸을 자신의 절친한 친구로 선택했다. 엄마에게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자신의 마음에 든 장소나 호기심을 가지게 된 장소를 보여주려고 임마를 데려가곤 했다.

P375 나는 언제나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고 릴라는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런데도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주제에 상관없이 릴라의 몸에서 발산되는 알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나는 그 기운에 매혹됐다. 그 기운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 두뇌를 자극하고 내 사유를 도와주었다.

 

난 지금도 이 둘의 이야기를 우정이라고 정의하지는 못하겠다. 그래 어쩌면 레누가 소설속에서 썼던 어떤 우정이라는 제목이라면 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혹시 이 나폴리 시리즈가 사실은 80페이지짜리 이 어떤 우정을 더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릴라가 평생 레누를 속였는지는 알 수 없다. 릴라의 속마음이 없으므로물론 딱 한 번 릴라가 레누에게 자신의 심경고백을 하지만 결국은 너를 위한 일이었어라고 말할지라도 릴라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레누에게 미리 얘기한 적이 없었다. 레누의 생각이나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그것이 레누의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레누에 대한 릴라의 생각이 내가 더 똑똑해하는 무시였든 열등감이었든 난 지금도 이 둘의 이야기를 우정이라고 정의하지는 못하겠다. 그래 만약 레누가 소설속에서 썼던 어떤 우정이라는 제목이라면 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소설은 어떤 우정의 확장판이자 어떤 우정에 대한 레누의 기나긴 자기변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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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키미스

    와아... 시리즈를 다 읽으셨네요. 짙은 파랑님. 이 이야기는 리뷰로 제법 만나서 약간은 읽은 듯한 느낌도 들어요. ^^ 헌데 리뷰를 읽으면 읽을수록 언제 한번 꼭 만나는 봐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직은 못 읽겠지만요. ^^; 덧, 짙은 파랑님~ 추운데 건강조심하시고 늘 파이팅하셔요~!!>_<*~///

    2018.02.05 22:38 댓글쓰기
  • 파란토끼13호

    파랑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2018.02.14 22:47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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