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냥 흔쾌하기만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일기와 같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쓰인 데다가, 심지어 그 주인공의 성격이 세심하고 소심하고 불면증적(?)일 경우라면 특히 더 그렇다.
나의 투쟁 1권을 통해 들여다본 그의 성장과정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아버지와의 소통부재와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형과 연인 토니에가 있었다. 나의 투쟁 2권은 그가 현재의 아내인 린다와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회성 부족한 그의 행동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호러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도 그럴것이 오베에게 사랑을 일깨워준 린다가 비록 조울증으로 인해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린다를 사랑한 오베는 린다에게 거절당했을 때 자신의 얼굴을 깨진 유리조각으로 그어 버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만약 이들이 아이를 셋이나 낳아 키우는 부부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 불안한 연인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졸였을지…
뭐랄까.. 이 둘은 일상이 평온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우려되는 상황을 더 안좋은 상황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태롭다고 생각하면서도 용케 잘 지내는 모습에 안도하게도 된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너무나도 자세한 묘사에 내가 좀 더 깊이 읽어 내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길을 혼자서 개척해가지만 소심함에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지 못하면서 린다의 거절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오베는 어쩌면 찌질이로 보이기도 한다. 마음에 불편한 상황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삭이지 못한 마음은
어느 순간에 튀어나와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아 버린다. 그게 특히 술을 마시는 상황일 것이다. 술이 취해 있는 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소설과 함께 하는 동안에는 흐린 날씨를 보는 듯했다. 흔쾌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라면 아무리 날씨가 좋은 날에도 그 주위는 먹구름으로
덮어 씌울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속에 그리고 사람들속에 작가는 함께 있지만 웃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혼자만의
세계? 자폐적인? 그런 것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게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대해 생각을 확장하고 불안해하고 남의 문제도 자신의 문제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불안정한 사람은 불안정한 사람을 알아본 것일까? 어쩌면
유유상종일것 같은 그 두 사람. 이해 못할 것도 없겠다.
도대체 오베는 언제 겉으로 자신의 기분을 표출하는 거지? 오로지 마음속에서
생각이 많아 그의 우울함이나 고뇌는 텍스트로 세세히 전달되어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심지어는
대게 그의 행복은 책 속에서 오직 한 줄로 표현이 되는 듯하다. ‘그 기간은 정말 행복했다.’ 뭐 이런 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뭐 이런 거? 지리하기도 한 그의 생각과 일상. 그가 가지는 편집증적인 생각에 내가 휩쓸려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단편만으로는 다른 일상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으니 마냥 무료해 보이기도 한다. 같이
있으면 불편할 사람, 딱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작가는.
P61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린다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그
민망함과 수치심은 내 눈빛 속에 그대로 나타났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말 그대로 패배자였다.
P111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그 삶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무진 애를 써보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해온 투쟁이다. 하지만 나는 성공하지못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동경은 눈앞의 일상에 구멍을 내기 일쑤였으니까.
P114
내가 현실을 혐오하는 이유는 현재의 삶이 무의미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톡홀름으로 이사 와서 린다를 만난 그해 봄, 세상은
내 앞에서 활짝 문을 열고 삶은 엄청난 속도로 강렬해졌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사랑에 빠졌던 나는 세상의
온갖 것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주변의 모든 것을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며 기쁨과 즐거움을 주체할 수 없어 감정이 폭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누가 내게 무의미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면 나는 그의 면전에서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나는 자유로웠고 세상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온갖 의미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P143
유모차를 끌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집에서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내 삶에 발전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행위는 내 삶에서 무언가를 제거해버린다. 나라는 인간의
한 부분, 남성적인 부분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P204
나에게 이차적 현상세계는 철학, 문학, 사회학, 정치학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 잠을 자고,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사람을 하고, 두 발로 뛰는 이 세상,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비와 바람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세상,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사고의 주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일차적 현상세계에서도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도를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추상적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사고하지만, 구체적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다루고
처리하기 위해 사고한다. 추상적 세상에서는 의미적 존재인 나를 떠올리지만, 구체적 세상에서는 몸뚱이와 눈빛과 목소리를 지닌 나를 떠올린다. 독립심이라는
것은 바로 이 구체적 세상 속의 내가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P415
나는 두 사람, 아니 거기 모인 세 사람을 모두 좋아했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내가 속한 세상에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서로 너무나 다른 두 개의 틀이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각각의 틀을 대할 때마다
거기에 맞게 내 태도를 바꾸어 왔다. 문제는 그 양극에 자리하고 있는 서로 다른 요소가 한자리에 있을
때면 나는 어쩔줄 몰라 당황해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라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우물쭈물하는 내 태도는 내가 봐도 낯설었다. 내가 에스펜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에스펜이기
때문이다. 내가 게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게이르이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진실하지
않게 보이는 그의 독특한 성격마저도 내게는 진실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호의적이며 교감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P442
아 나는 증오했다. 린다를 만족시키기 위해 내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들을 해야 하는 그 상황을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는 크고 작은 서로 다른 종류의
목적이 있으며 더 큰 목적을 위해선 작은 것들을 희생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필요하다면
땅속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처럼 스스로를 낮추어야 할 때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