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으면서(장르 불문) 참 감정이입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나의 현실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하긴 이런 일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 대해(특히 사건, 사고) ‘나의 아이였다면..’ 이라는 대입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이 그랬다. 그래서 불편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베어타운은 일자리도, 미래도 없이 막다른 곳에 내몰린 소도시다. 온 마을이 아이스하키에 매달리는 이곳은 과거의 영광도 하키로 이루었고, 몰락도 하키에서 비롯됐다. 그들에게 찾아온 마을을 되살릴 단 한 번의 기회는 극적으로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묵직한 꿈을 몇몇 청소년의 어깨에 싣는다. 온 마을을 짊어진 아이들 사이에서 마을을 뒤흔들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큰 꿈을 품은 대가를 가슴 아프게 치르게 된다. – Yes24 책소개 |
베어타운은 이제 저물어가는 소도시로 과거의 영광만을 기억한채 막다른 길에 몰려있다. 그럼에도 이곳에도 부촌과 빈촌이 존재하고 그들의 삶도 여러가지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한가지 동일한 바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유망주인 케빈이 구단주의 딸 마야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좌절되고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갈리면서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참 애매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때는 그것은 분명히 정의이다. 하지만 어떤 공공의 적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뭉쳐지면 그것은 하나의 광기가 되기도 하고 린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의 번영을 위해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십대소녀인 마야를 헤픈 아이로 결론짓고 그들을 해하려 하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인 마야의 상처보다는 마을을 구해낼 구세주로 보여지는 캐빈의 잘못을 덮어주고 변호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마을을 구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케빈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아맛의 용기있는 행동, 말 못할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용히 마야를 위해 행동하는 벤이, 적극적으로 마야를 옹호하는 친구, 그리고 그 주위의 또 다른 많은 사람들…. 평소엔 있는지는 몰랐던 사람들의 용기있는 모습에 마음이 벅차기도 했다. 결과가 모두에게 좋은 쪽으로 나지 않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중간중간 복선을 보란듯이 던져주며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거의 흐름의 1/4에 이르러서야 소설의 처음부터 곧 있을 것 같던 하키경기가 시작되고 이쯤되면 경기를 하고 승리를 하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가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인데, 이런 여러 복선을 던져주면서 과연 누가 산탄총을 당겼고 누군가의 이마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주는 것이다. 아주 하찮은 이유만으로 원한을 살 수 있고, 한 순간의 감정으로 살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누구도 산탄총을 들 수도 있고 이마에 산탄총을 맞을 수 있을 것이므로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용의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이 무조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인간 대 인간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공공의 이익의 주요인물이라도 개인을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이들에게도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캐빈이 있는 팀이 우승을 해서 베어타운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었지만 일이 요원하게 되어 버렸고 그들에게는 그 희망의 상실과 좌절에 대한 비난의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야는 십대의 헤픈 계집아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마야가 내린 응징은 케빈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끝나기는 했지만 완벽한 결과란 있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가슴 답답함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느 드라마틱한 소설들처럼 드라마틱한 기적을 바랬던 것 같다. 기적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고 아이들이 베어타운에 대한 자부심을 간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책의 말미에는 ‘1년 후 그들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 그런 상황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최선을 다했어도 1위를 하는 기적은 없었던 것처럼 이들에게는 아직도 온전히 헤쳐나가야 할 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중반 이후로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뒷 얘기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들이 ‘헤드’팀으로 떠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떠났고 남은 넷이서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나갈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던져준 10년 후의 떡밥은 정말 떡밥이다. 덥석 물고는 후속작이 언제 나올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어쩌면 나는 그 10년 후를 통해 정의가 있었다고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후속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다른 책. 왜 ‘앵무새 죽이기’가 떠오르는 거지?
P14 베어타운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심지어 지도상의 모습조차 특이하다 (중략) 어느쪽이 됐건 이 도시는 점점 가망이 없어지고 있다. 무엇에서건 희망을 느껴본 건 먼 옛날의 이야기다.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그와 더불어 인구도 줄고, 매 계절마다 숲이 폐가를 한두 채씩 집어삼킨다. (중략) 이 도시에서 녹아내린 모든 사람이 후대로 전승됐고 후손들도 여전히 그 경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빙판과 판자로 된 펜스, 빨간 선과 파란 선, 스틱과 퍽, 퍽을 찾아서 코너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젊은 선수들의 투지와 파워. 이 마을의 경제와 더불어 팀의 성적도 곤두박질쳤지만 관중석은 매년 주말마다 만원사례를 빚는다.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만원사례를 빚는 건지도 모른다. 다른 팀의 성적이 올라가면 도시의 다른 부분들도 덩달아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P21 그래서 청소년팀의 준결승전이 중요해봐야 어느 정도겠냐고? 이 일대에서 최고의 청소년팀으로 등극하면 온 국민에게 이 도시의 존재를 다시 일깨울 수 잇다. 그러면 정부에서도 헤드가 아니라 여기에 하키 스쿨을 설립할 테고, 그러면 이 주변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대도시가 아니라 베어타운으로 몰려들 것이다. 여기서 나고 자란 선수들로 이루어진 A팀이 또다시 1부 리그에 진입하면 대규모 후원사에서 관심을 보일 테고, 의회에서는 새로운 아이스링크와 넓은 도로는 물론, 어쩌면 오래전부터 얘기하던 컨퍼런스 센터와 쇼핑몰까지 건설할지 모른다. 그러면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나고 일자리가 늘어나서 주민들이 집을 팔기보다 깨끗하게 보수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꿀지 모른다. 그 시합이 중요한 이유는 이 도시의 경제가 결려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P54 “너희들 중에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지. 운이 좋아서 모든 걸 거저 누리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아이스링크 밖으로 나서면 모두 똑같다는 걸 기억해라. 그리고 너희들이 한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항상 간절함이 운을 이긴다는 거”
P348 “얘들아, 진실을 듣고 싶니? 사실 너희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대 팀들도 협회도 전국의 코치들도 저 밖의 관중석에 앉아 있는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이것이 꿈이었다면 너희들에게는 이것이 목표였지.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대신해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경기, 이 순간은… 온전히 너희들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남의 말을 듣지 말고 너희들이 정해라.
P373 다른 어떤 집에서는 다른 엄마와 아빠가 다른 식탁 앞에 앉아 있다. 그들이 십 년 전에 캐나다를 등지고 베어타운으로 이사한 이유는 그들이 아는 곳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나쁜 일은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간절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긴 밤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P377 그들은 ‘정황’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정황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얼굴이 있는 가해자를 원했다. 죄책감의 무게로 허우적거릴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들이 늪 속으로 끌려 들어가야 했다. 너무 이기적인 발상이었다는 건 알지만 벌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하늘에 대고 악을 쓰는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분노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만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적을 원했다. 이제 적이 생겼다. 그런데 그들은 딸아이의 곁을 지켜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를 해친 사람을 추격하러 나서야 하는 건지. 그녀가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책임지고 적의 숨통을 끊어야 하는 건지, 그 둘이 같은 게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다. 증오가 그 반대말보다 훨씬 더 쉽다. 부모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P415 하키단은 무엇일까? 프락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 그런지 몰라도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의 차별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 하키단이다. 하키단은 그들이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좀 더 위대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꿈을 구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문제가 복잡해도 해답은 단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성장하지 않는 마을은 어떻게 될까? 죽는다.
P433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절대 괜찮을 수 없어! 그 자식이 저지른 짓을 절대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돼… 나는 두렵다, 마야. 네 눈에 내가 그 자식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봐. 날이면 날마다 이십사 시간 내내 그 생각인데 그러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봐 너무 두렵다”
P449 아맛이 그를 살아 있게 만든 이유였다. 가장 어둡고 가장 힘들었던 밤에 그에게 이렇게 얘기한 사람이 아맛이었다. “사크, 언젠가 네가 저 자식들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영향력도 더 세지는 날이 올 거야. 그러면 너는 훌륭한 일을 할거야. 왜냐하면 힘이 없다는 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아니까. 그러니까 너는 능력이 되더라도 저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거야. 그러면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겠지”
P493 “정의라는 게 그런 거잖습니까. 사회에 법규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고요. 페테르는 결승전 이후까지 기다릴 수 있었어요. 케빈이 저지른 행동은 하키나 우리 구단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페테르는 스스로 처단하는 쪽을 택했어요. 덕분에 온 팀원과 온 구단이 피해를 입었죠. 온 마을도요”
P494 “저는 자기 딸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팀과 우리 구단과 온 마을 앞에서 신 행세를 하는 페테르를 존경할 수 없습니다. 제가 뭐 하나만 여쭤볼께요. 과연 케빈이 다른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가 있었다면, 상대가 자기 딸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페테르가 그 여햑생의 가족에게 결승전 당일에 경찰에 신고하라고 권했을까요?” 수네는 문설주에 머리를 기댄다 “내가 역으로 묻겠네. 다비드. 경찰에 고발당한 아이가 케빈이 아니었다면? 다른 아이였다면? 할로 출신이었다면, 그래도 너는 지금과 똑 같은 생각을 할까?””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