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기대감이 컸다. 그럴 수 밖에. 다른 나라의 독자들이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었다고 하니 그저 심파조의 내용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나도 마지막 몇몇 페이지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읽고 나서도 묘한 여운이 남는다. 윌이 안타깝고, 루가 안타깝고, 윌의 남겨진 가족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루이자(이하 루)는 착한 사람이기에 늘 가족안에서 당연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당찼지만 지금은 미혼모로 아들까지 있고, 그럼에도 공부를 계속 하면서 부모님께 얹혀 살고 있다. 루는 늘 동생과 비교당하고, 조카의 육아도 도와야 하고,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도움도 드리지만, 6년째 하고 있는 카페에서의 일도 만족스럽고 별다른 고민도 없다. 그런 루에게 자신이 6년간 일하던 카페가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오로지 차 만드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루이지만 잠시 숨 고를 시간도 없이 가족을 위해 당장 돈을 벌여야 한다. 결국 직업소개소에서 이런저런 일을 권유받지만 아무 자격도 없고, 경력도 없는 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마지막으로 C5/6 사지마비환자의 6개월 간병인 자리를 제의받은 루는 다행히 출근하게 되지만 첫 대면부터 너무 까칠한 윌리엄(이하 윌) 때문에 상심하게 되고, 그래도 높은 보수 때문에라도 계약기간인 6개월을 버텨보기로 작정한다.
P82 “저를 고용하신 건 아니잖아요. 전 당신 어머니가 고용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이젠 오지 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전 절대 안 나가요. 특별히 그쪽 걱정이 돼서도 아니고, 이 멍청한 일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쪽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싶어서도 아니에요, 그냥 돈이 필요해서예요. 알았어요? 전 진짜로 돈이 필요하다고요”
처음에는 너무나도 어색한 루와 윌. 하지만 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고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루는 윌을 위해 여러가지 외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세상이 윌과 같은 장애인에게 얼마나 팍팍한지 절실하게 느낀다. 그런 루를 보면서 윌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사춘기적 트라우마로 인해 안전한 세상안에서 꼼짝 안으려는 그녀를 위해 경제적인 도움뿐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자극을 주기 시작한다.
P360 “아니에요. 책임은 그들에게 있는 겁니다” 아무도 그런 말을 소리내어 내게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연민에 찬 트리나의 표정도 암묵적인 비난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술에 취해서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 앞에서 멍청하게 굴면….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힘주어 잡았다. 희미한 움직이었지만, 여실히 느껴졌다. “루이자,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때 나는 울었다. 흐느껴 울었던 건 아니다, 이번에는. 눈물은 내 몸에서 소리없이 흘러나왔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내게서 빠져 나간다는 말을 해주고 있었다. 죄책감. 두려움. 또 아직 나로서는 형용할 말을 찾지 못한 몇 가지 다른 것들.
P388 “혹시 이런 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특유의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웃음. 목이 어깨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루이자의 성이 클라크이다).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점차 그런 윌의 모습을 통해 기대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 하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는 윌로 인해 루는 상처를 받고 상심하고 슬퍼하다가 결국에는 도망치듯 윌로부터 돌아선다. 하지만 윌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루. 루는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 책의 압권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 있었다. 꽤 두꺼운 책이었기에 뒤로 가면서 윌이 제발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읽어 나갔다. 그리고 결국은 펑펑 울어버렸다. 한때 너무나도 오만했던 윌에게 있어서 지금 자신의 처지는 분명히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반신만 마비된 것도 아니고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음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보수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간절함 때문에 살고 싶을지라도 그 사랑이 지치게 되면 결국은 상처만 남게 될 것을 그는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것이고… 누구도 그런 상황에 도달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윌의 마음을 알기에 윌의 선택을 마냥 그게 아니라고 설득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남겨진 루는? 이 부분에서 가슴이 답답하다. 그들 사이에 남는 것은 추억뿐인데 루는 결국은 열린 세상을 향해 하나씩 발걸음을 내딛겠지만 평생 그 사랑을 추억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윌의 결심을 바꾸기 위해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고 사람들의 글을 유심히 보고 또 조언도 구하는 루의 간절한 모습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루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절실할 윌의 마음도 알기에 그 상황이 너무 아팠다.
P446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 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세상에 태어날 때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지만 죽음만큼은 선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많은 글들을 통해 접해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맞는 말인 것도 같지만, 조물주께서 주신 소중한 목숨을 자기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말을 생각하면 그게 또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사람의 목숨을 놓고 무엇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윌과 같은 상태에서 그 누구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산다면 전자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도 같다. 안락사라는 문제는 낙태나 피임만큼이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나마 윌의 경우 뇌는 살아 있어, 스스로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었지만, 뇌가 죽은 상태라면 그 삶의 종료는 과연 누가 결정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도저히 내가 만약이라는 말로 상상해 볼 수 없는 이야기이다.
P517 “그건 제 선택이 아니에요. 이 게시판 대부분 사람들의 선택도 아니에요. 물론 지금과 다르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내 삶을 사랑해요. 그러나 그 친구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결정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렇게 산다는 건 지치는 일이에요. 그 피로감은 AB가 결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정말로 그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도저히 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거기 함께 있어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옳은지 당신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곳에 꼭 함께 있어주어야 해요.
루가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않을까 봐 가슴 조였었다. 그리고 결국엔 안도했다. 결국 남은 이들은 슬픔으로 온 마음이 덥혀져 버렸을지라도 그의 마지막은 따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 그가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이라는 말에 실연당한 남자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이렇게도 간절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인줄 알았더라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홀로 남은 루는 그와 함께 한 추억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녀가 원하고 그가 이루어주길 원했던 파리행이 더 눈물겨운지도…
사진 안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