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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도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저/우석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처음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네루다 지역의 우편배달부를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칠레의 유명한 시인의 이름이라니부끄럽다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는 그 마을의 저명한 시민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고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으로써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편물을 받는 사람이고 그 우편배달 일을 어부의 아들 마리오 히메네스가 맡게 된다. 이 청년이 할 일은 오로지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그의 시집에 자신을 위한 헌사를 부탁하기 위해 매달린다. 어느 날 마리오는 마을의 아름다운 베아트리스를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되고 시인에게 그녀만을 위한 시를 적어줄 것을 부탁하지만 시인은 시를 적어주는 대신 마리오에게 메타포를 가르쳐 준다. 마리오는 이 메타포를 이용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베아트리스와 결혼하게 된다. 이후 네루다가 칠레의 대통령 후보자가 되고, 또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마을을 떠나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통해 우정을 나누게 되는데, 아옌데 대통령이 사망하고 네루다 역시 죽음 앞에 있을 때도 마리오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네루다의 옆을 지킨다.

 

이 소설은 격변기의 칠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우울하지만은 않다. 라틴 특유의 정열과 즐거움을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이어가고 있고 그래서 심각하게 읽히지 않으면서도 소설이 주는 감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글을 언젠가는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한 청년의 인생에 연관되어 그에게 시를 쓰게 하고, 사랑을 하게 하고, 또한 아버지가 되게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루다와의 굳건한 우정이 되기도 한다. 솔직히 책 속에 나오는 시집들은 나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주민들의 입을 통해 읊어지는 시들은 이미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책의 결말이 다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단순하게 갖고 있는 라틴의 느낌이 밝고 화사하게 전해져서 특히 더 좋았던 것 같다. 조신하지 않은 태양의 정열을 한껏 머금은 듯한 표현들. 그들은 거리낌없이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듯 하다.

 

나는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이슬라 네그라의 풍경들을 녹음하는 장면에서 많이 뭉클했었다. 네루다를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까지 절절하게 작은 소리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일까. 문득 태풍이 치는 모습을 알기 위해 뱃머리에 자신의 몸을 묶고 태풍속에 뛰어든 어느 화가의 일화가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인상 깊다. 따지고 보면 결국 작가의 손을 떠난 창작물들은 작가의 것뿐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도 되는 것이다.

읽는 동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뽀르뚜가와 제제도 생각나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버지와 아들도 생각났었다. 사람이 서로 교감한다는 것은 참 가슴 따뜻한 일이다. 그것이 결국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내포한다고 해도 말이다.

 

 

(침묵) 좋아요. 여기까지는 시고요, 지금부터는 원하시던 소리들입니다.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 (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레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 (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 (거의 삼분간 윙윙거리는 위험천만한 주음향이 들리고 배경음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때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째, (분명히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군. (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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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키미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쓰여져 읽혀지는 순간, 작가의 것도 읽는 이의 것도 되는 것을요. 누군가가 읽어줌으로써 그것에 대해 알고 또한 빛을 발하게 되는 걸테니까요... 왠지 마음 따뜻할 것 같은 이야기네요. ^^*

    2015.04.01 00:40 댓글쓰기
    • 파랑뉨

      고전이기도 하지만 내용도 너무 좋아서 꼭 읽어보시라고 강추드립니다^^

      2015.04.01 09:33
  • 운학골친구들

    ㅋㅋ 저도 제목보고 네루다에 있는 우편배달부인줄 알았다는..저 전설의 민음사문학..인테리어용으로 소장하고 있던 애들도 우리딸이 야금야금 팔아치워서 이제는 남아있는 애들이 거의 없어요.ㅎㅎ 책읽기의 수준을 좀 높여야하는데 여전히 로설목록만 뒤적이고 있다는 ~~

    2015.04.01 09:56 댓글쓰기
    • 파랑뉨

      ㅎㅎ 참 재밌는 따님을 두셨군요!!! 인테리어용을 그런식으로 팔아먹다니요 ㅋㅋㅋ 전 요즘 책만 잡으면 조는게 아니라 아예 잡니다. 취침용으로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는것 같아요^^

      2015.04.01 14:00
  • 밤은노래한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소리를 녹음하는 소리는, 작가가 그를 위해 글을 쓰는 그런 맘이겠네요. 자기가 꼭 쓰고 싶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나가는 작업은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아옌데면 칠레의 격동의 시대이니 내용이 마냥 밝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2015.04.01 10:41 댓글쓰기
    • 파랑뉨

      그러게요. 어두울수 있는 얘기를 어둡지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따뜻함을 담았다고 해야할까요? 저 정도로 정성을 쏟아 녹음하는 것을 보면 사랑인가 봅니다.(간질간질)

      2015.04.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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