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리던 나쓰메 소세키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의 ‘전기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이 책 ‘문’, 제목에얽힌 이야기대로 애초에 소세키가 직접 붙인 제목은 아니지만 책의 내용과 어쩜 그리 일맥상통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 처음부터 제목을 붙인 사람이 대단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읽으면서 내내 ‘아이구 저 답답이~’라고 말하게 했던 ‘산시로’, 자신의 고집만으로 다른 상황들과 타협하지 않았던 다이스케를 보여주었던 ‘그 후’ 그리고 자신이 했던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 현재의 상황들을 그저 받아들이며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답답해 하는 소스케를 보여주는 ‘문’. 소세키의 위궤양 증세가 심해져서 스스로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선 것 같은 상황이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용들은 모두 우울하고 그 막막함이 내게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열리지 않는 문, 그 앞에서 간절히 문을 두드려대는 심정. 생각만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관청의 하급관리인 소스케는 아내인 오요네와 함께 도쿄의 변두리 벼랑아래 셋집에 살고 있다. 한때는 사업가의 아들로써 풍족한 삶을 살았던 소스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는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숙부의 집에서 의탁하고 있던 동생 고로쿠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소스케는 그마저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벼랑 위 주인집에 도둑이 들고 그들의 버려진 문갑을 찾아주면서 집주인인 사카이씨와 소스케 사이에는 친분이 생기고 왕래가 잦아지지만 이것은 자신이 피하고만 싶은 친구인 야스이와의 재회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사실이 부담스러운 소스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산사로 도피하지만 그곳에서도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지만 다행히 사카이씨의 동생과 야스이는 이미 돌아가고 없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다행히 관청의 감원바람에서 벗어난 소스케는 월급이 5엔 오른다. 그리고 봄이 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그들은 다시 겨울이 올 것을 떠올린다.
P169 그들이 매일 같은 도장을 가슴에 찍으며 긴 세월을 질리지도 않고 살아온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였을 뿐이었다. 외부를 향해 성장할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내부를 향해 깊이 뻗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야스이는 소스케의 친구였고 오요네는 야스이의 동거녀였지만 소스케와 오요네는 사랑을 택했고 그 결과로친구, 가족, 학교, 사회로부터 외면당한다.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서로에 대해 더 견고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인과응보라고 체념하며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소스케는 월급이 5엔 오르더라도 자리를 지키는 것에 안도할만큼의 소심성을 갖게 되었고 어깨는 움츠러져 버렸다.
P252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닫힌 문 앞에 무능하고 무력하게 남겨졌다.
항상 그렇듯이 세상은 자신과 상관없이 흘러가고 집주인 사카이와의 인연은 우연을 동반하며 야스이를 대면할 기회를 만들어 버리고 만다. 아직은 야스이를 피해 다니고 싶은 소스케는 그에 따른 부담을 이기지못하고 산사로 도망치듯 들어갔지만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온다. 결국 그 문이라는 것은 자신이 열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 문을 열기 위해 취해야 할 용기는 모험이라고 불러야 할만큼 큰 것이었다.
P51 “우리는 그런 좋은 일을 기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아닐까?” 하는 말을 과감히 내뱉는다. 아내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묵묵히 마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자신들은 스스로가 만든 과거라는 어둡고 커다란 구렁텅이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며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 숙부가 팔아 치웠다는 토지와 집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 처해 있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행동하지 않는 이유와 상황을 합리화시키고 서로 동조하면서 그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위로만을 나눈다. 한번도 해결을 위한 당장의 행동은 하지 않고 의지는 없어 보이고 그저 끊임없이 체념하고 인내하고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권리가 있는지를 의심하고 자업자득으로 결론내려버린다.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행하는 모습들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게 된다. 모든 일을 회피하고 미뤄버림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선순환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에 대한 다짐도 보이지 않아 더 답답하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지만 그저 오늘만 안온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시대를 거스르며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도련님을 빼고는 읽으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다. 어쩌면 더 현실적인 감정이입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의 가능성에 대한 동조로 인하여 피하고 싶은 또는 혀를 쯧쯧하고 차버릴 것 같은 그런 내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유부단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과거로 인해 현재를 소극적으로 대하고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은 또 다시 과거로 만들어 미래에 그것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빌미로 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도록 방치한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의 유산문제도 그 당시에 숙부에게 맡겨만 놓을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그들의 동생인 고로쿠의 미래마저도 저당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야스이와의 문제에 있어서도 계속 미뤄두기만 했기에 앞으로 또 다시 마주칠 일을 걱정하면서 살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이들은 회피라는 방식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소스케가 느꼈을 막막함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원인제공을 그가 했고 당연한 결과이므로 그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응원할 수 없다.
현재 많은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문을 열어 출구를 찾고 싶지만 찾을 수 없는 마음. 심지어는 열쇠마저도 보이지 않고 문을 열어줄 문지기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저 어떻게 잘 해결이 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마음.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면서 검지와 중지를 겹치는 행동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 어두웠던 까닭에 앞으로 더 어두워지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조금은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지금까지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잘 읽히는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