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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行人)

[도서] 행인 (行人)

나쓰메 소세키 저/송태욱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의 내용이 형이 동생에게 형수를 유혹하라는 즉,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의 아내와 하룻밤을 보내보라고 하는 것임을 알았을 때는 솔직히 조금은 당황스럽고 의아했었다. ‘작가는 왜 이런 장르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소재를 선택했을까하는 생각이 가장 첫 번째 드는 생각이었고, 과연 어떻게 내용을 풀어나갈까 하는 내용이 그 두 번째였다. 장르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 하지만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역량이 상당하니 결코 그것들과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되는 부분이었기에 책을 시작함에 망설임은 없었다. 소재와 달리 긴박하지도 않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역시 작가의 역량대로 주인공을 통해 항상 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준다.

 

<친구>

지로는 친구인 미사와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로 온다. 하지만 미사와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 마침 예전 본가의 서생이었던 오카다와 자신의 집의 하녀였던 오카네 부부의 집에 유숙하게 되고, 어머니의 부탁으로 오사다의 혼담을 위해 그 상대인 사노라는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미사와로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엽서를 받고 문병을 가고 그곳에서 어느 여자를 마주치게 된다. 미사와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얘기를 지로에게 공유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사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그로부터 소박 맞고 그의 집에서 유숙했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미사와가 왜 병원의 그녀와의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는지 이해하게 된다.

()
형과 형수어머니가 오사카로 오고 형은 미사와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그리고 의외로  여자의 정신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넷은 여행을 떠나는데 형과 어머니는 형수에 대한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형은 지로에게 형수가 지로를 좋아하는  같으니 떠보라고 하고 지로는 이를 거부하지만 형의 짜증스런 태도는 결국 지로가 그 제안을 허락하게 만든다드디어 형의 계획대로 지로는 형수와 와카야마로 떠나지만 마침 악천후로 인해 돌아가지 못한 채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그 이후로 형과는 더욱 더 어색해지고 만다.

<돌아오고 나서> <번뇌> 에서는 그 이후 어색해진 형과의 사이, 어머니의 형수에 대한 생각, 알 수 없는 형수의 행동에 대해서 전개된다. 형의 신경쇠약은 더 심해지고 지로는 결국 H씨를 통해 형과의 여행을 제안하게 되고 다행히도 형은 H씨와 여행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H씨는 지로에게 장문의 편지를 통해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면서 이 글은 끝을 맺는다.

 

이 책의 줄거리는 이와 같이 큰 맥락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지로의 생각과 형에 대한 행동들은 길고 깊은 고민을 수반한다. 이 지로라는 인물 또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처럼 복잡다단한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통해 풀어 놓은 그의 생각들은 우리가 흔히 살아가면서 가질법한 불편함과 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지로는 늘 마음속에 형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황에 놓일 때마다 형에 대한 생각을 제외시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즐거운 감정이 아닌 분명한 불편함이다. 예민한 성격의 형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 대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얻으려고 하고 이는 신경쇠약을 더 부추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인 나오에 대해서도 의심부터 하고 보고 그녀의 성격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어머니는 형의 편이 되어 형수의 행동을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관점은 신경쇠약의 형의 행동이 응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라도 형수인 나오의 행동도 동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쳐 있는 것을 넘어 무관심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형수의 태도는 솔직히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쳐 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움보다 더 나쁜 것이 무관심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 정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왜 그들 부부는 문제점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상대를 통해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P411 “어떤 사람한테 시집을 가든 여자는 시집을 가면 남자 때문에 부정해지는 거네. 그런 내가 이미 아내를 얼마나 못쓰게 만들었는지 모르네. 내가 못쓰게 만든 아내한테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 일 아니겠나? 행복은 시집을 가서 천진함을 잃게 된 여자한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네

 

이들이 보낸 하룻밤은 형에게는 절대로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지로도 알고 있고 형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해도 형은 그것을 믿지 않고 계속 다그친다. 눈에 보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음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소통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작은 균열을 동반하고 있다. 이 당시 작가가 위궤양을 심하게 앓았다는 정황과 예민했을 것을 가늠해 본다면 형인 이치로의 심리상태는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보여진다.

P381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거나, 내 앞에는 이 세가지 길밖에 없네. 하지만 종교에는 아무래도 입문할 수 없을 것 같네. 죽는 것도 미련에 막힐 것 같고, 그렇다면 미치광이지. 그런데 미래의 나는 그만두고, 현재의 나는 제정신일까? 진작에 어떻게 된 게 아닐까? 난 무서워 견딜 수가 없네

 

우리는 모두 행인이다. 그저 동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 그렇다면 조금은 서로에게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얼마전에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사진속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지만 망원경을 통하더라도 직접 본다는 것은 분명히 느낌이 달랐다. 광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모두 행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사람 1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갈등보다는 소통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 답을 구하기 보다 함께 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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