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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도서]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저/이덕형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책이라는 것이 읽는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영어공부를 위해 접했던 폭풍의 언덕은 분명 몇 장 되지도 않았고 내용도 아주 간단했었다. 지금 그 내용을 떠올려보면 히스클리프가 린튼 가에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돌아와 캐서린과 재회했다는 정도? 그런데 고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접한 폭풍의 언덕 518 페이지를 자랑하는 절대로 만만치 않은 두께였고 내용도 한 줄로 정리하기에는 대단히 무리가 있는 책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내가 중학 시절까지 접했던 책들을 다시 읽어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책이라는 것은, 특히 고전이라는 것은 연령대에 따라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괴리가 크다면 이건 완전히 다른 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워더링 하이츠에는 언쇼씨와 부인,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이 살고 있다. 어느날 언쇼씨는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사내 아이를 데리고 오고 그에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주는데 캐서린과 달리 힌들리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가 못마땅해 그를 괴롭힌다. 어느날 캐서린은 드러시크로스 농장에 갔다가 개에 물려 린튼가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때부터 린튼가와 언쇼가는 잦은 왕래를 하게 되고 에드거 린튼과 캐서린은 연인이 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그와 결혼하면 자신의 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배신감에 사라져 버리고 힌들리가 대학에 들어간 사이 언쇼씨가 죽고(부인은 이미 열병으로 사망했다) 만다. 장례식을 위해 돌아온 힌들리는 병약한 아내를 데리고 오지만 힌들리의 아내는 아들을 낳고는 폐병으로 인해 사망하고 힌들리는 술과 놀음으로 가산을 탕진하기 시작한다.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의 집에 머물면서 복수를 위해 양쪽 집안의 재산을 모두 자기 소유로 돌리기 위한 계획을 시행하고, 힌들리가 빚을 진채로 사망하자 힌들리의 재산을 저당잡으면서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은 재산도 없이 히스클리프에게 얹혀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편 에드거 린튼의 동생 아사벨라는 히스클리프에게 반하게 되고 둘은 오빠인 에드거 린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피를 해버린다. 캐서린은 딸 캐서린(딸이 엄마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을 낳고는 죽어 버리고 에드거 린튼은 혼자서 딸을 키워나간다.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의 사람됨됨이를 알게 되자 히스클리프로부터 도망쳐 몇 개월 후 아들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날 이사벨라는 병에 걸려 오빠인 에드거 린튼에게 자신의 아들을 데려다 키워줄 것을 부탁하고 죽지만 이를 안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아들인 린튼(아들의 이름을 린튼이라고 지었다)을 데려가 버린다. 히스클리프는 복수의 일환으로 헤어튼을 교육시키지도 않고 일만 시키고, 병약한 린튼은 제대로 치료해 주지도 않은 채 데리고 살면서 캐서린의 딸 캐서린이 자신의 아들 린튼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자 닷새동안 워더링하이츠에 감금시킨채 강제로 결혼시켜 버린다. 히스클리프는 며칠 후 에드거 린튼이 죽고 장례를 치루자마자 캐서린을 워더링하이츠로 데려가 외출은 물론 외부와의 모든 접촉마저도 금지시켜 버린다. 하지만 병약했던 린튼은 곧 죽어 버리고 히스클리프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캐서린을 닮은 헤어튼 언쇼와 캐서린의 딸 캐서린을 보면서 캐서린에 대한 갈망을 점점 더 키우다가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희열에 찬 표정으로 죽는다.

P125

(생략) 나는 천국에 가는 것도 필요없듯이 에드거 린튼과 결혼하는 것도 다 필요 없어. 저 방에 있는 악독한 오빠가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비천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나는 에드거와의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이제 와서 히스클리프와 결혼을 한다면 내 품위가 바닥에 떨어질 거야. 그래서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에게 알리지 않겠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잘 생겨서가 아니라 그는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건 그와 내 영혼은 같은 것이야. 린튼의 영혼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듯, 서리가 불과 다르듯 내 영혼과는 달라. 

 

이 이야기의 특이한 점은 이 소설자체의 형식이다. 이 이야기는 히스클리프와 양쪽 집안의 자녀들과 또 그 자녀들의 이야기인데 정작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는 엘렌 딘 부인이다. 딘 부인은 어렸을 때부터 언쇼 집안의 가정부였고 힌들리와 함께 자랐다. 그러다가 린튼 집안의 가정부였다가 다시 언쇼 집안의 가정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캐서린 언쇼와 딸 캐서린 린튼의 대를 이어가며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두 대를 이어가면서 가장 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사실은 딘 부인이 맞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 사람은 드러시크로스 농장을 히스클리프로부터 1년간 임대한 록우드 씨라는 점이다. 딘 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사실은 록우드 씨이고 1년뒤 히스클리프의 죽음에 대해 듣는 사람도 록우드 씨인 것이다. 하지만 이 특이한 형식이 결국에는 주인공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는 못하지 않았나 하는 한계를 갖게 한다. 우리는 각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힘들고 그저 들려주는 그들의 대사를 통해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영화를 보아야 입체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제제모임에서 나하님이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을 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으니 맞는 지적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게는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사랑보다는 병적인 집착증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스토커, 사이코 패스, 성격파탄자, 집착증 환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맨스를 꽤 읽은 나에게는 내가 가진 로맨스 주인공에 대한 범위를 확!!! 벗어낫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붉은 가위님의 늪,,혈 은 이보다 더하기는 하다) 이런 생각은 뒷부분에서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열어 보는 장면과 자신이 죽으면 그 옆에 묻어 달라고 묘지관리인에게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뒷받침이 된다. 아니!!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그럴수가!!! 있다는 말인가!!! 단순히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히스테릭하고 끔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처음에 두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봤을 때 이 글은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굉장히 청교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파격적이라는 단어를 뒷받침하는 부분을 지적해 보면 처음엔 문장이 거칠었다는 부분(속으로는 어떨지라도 겉으로는 점잖은 언어를 사용해야 했었을 테니), 자신의 복수를 위해 아이들을 학대하고 방치했다는 부분, 복수를 위해 재산을 담보로 잡고, 린튼가의 변호사를 구워 삶아 린튼이 유언장을 작성하지 못하게 했다는 부분,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열었다는 부분, 캐서린의 딸 캐서린과 자신의 아들 린튼을 결혼시키기 위해 감금했다는 점(결국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했다)등을 들 수 있겠다. 나는 명철한 분석가가 아니기에 일단 떠오른 생각 정도가 이렇다. 게다가 키드만 님 말씀을 참조해 보면 작가의 반발심도 일조했었던 듯 싶기도 하고 말이다.

 

P327

이를테면 지금 녀석이 뭣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 그것은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의 시작에 불과해. 또 녀석은 천박한 무지의 구렁텅이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거야. 녀석의 비열한 아비가 날 억압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난 저 녀석을 억압하고 천하게 만들었지. 녀석은 자신의 야수성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야. 짐승이외의 모든 것을 비열하고 나약한 것으로 경멸하도록 가르쳐주었어. 힌들리가 아들 녀석을 볼 수 있다면 자랑스럽게 여기려나?

 

 

이 소설을 읽다보면 한번쯤 제대로 언급하고 넘어갔어야 할 사항들도 그냥 지나쳤다. 예를들면,모든 죽음들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또 히스클리프가 어떻게 재산을 쌓고 지식을 습득했는지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그 내용들이 엄청 궁금한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이 책의 두께가 정말 감히 범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테니까

히스클리프를 사랑했지만 자신을 위해 현실을 택한 캐서린, 배신감으로 오랜시간 복수를 행하는, 하지만 결국 그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히스클리프, 그리고 그들을 거치며 생겼던 앙금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사랑과 희망을 시작하는 딸 캐서린과 헤어튼.... 마지막에 히스클리프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고, 헤어튼과 캐서린이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여는 사람들이 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은 결국은 인과응보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을 끔찍한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복수는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서 결국은 희망을 얘기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어쨌거나 해피엔딩에 마음을 놓으니 말이다.

 

 

정말 얼마만에 책이라는 것을 완독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ebook 로맨스는 계속 읽었지만 읽는데 시동에너지가 필요한 책은 근2년간 끝까지 읽은 책이 거의 없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 참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번의 완독이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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