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내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정말 불편했다. 나는 고작 4주로 이 불편함이 끝나겠지만,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은 평생이 불편하겠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이런 장애를 갖고 있다면 이런 게 불편할까? 이런 시선으로 최대한 생각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니까 예전보단 조금은 달라지더라. 예상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부분들이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선 당연한 것과 같았다.
저자는 뇌병변장애인으로서 20년차 사회복지사이다. 장애를 직접 겪고 있는 만큼 비장애인과는 또 다른 시선에서 장애를 바라볼 수 밖에 없고, 비장애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영역들을 알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 어떠한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는 장애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
책을 보는 내내 정말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는다. 정말 오만가지에서 불편함이 있다. 가장 먼저 놀랐던 건 투표권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투표권의 행사는 장애인에게도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오게 되는 불편함은 나 역시 고려한 적이 없음에 놀랐다.
우리 비장애인들도 투표 도장 찍는 칸이 좁아서 얼마나 조심하면서 찍는가. 내가 찍고자 하는 후보가 아닌 칸에 찍을까 봐 조바심 내고, 칸이 조금 넘어가면 무효표가 될까 봐 찜찜하고, 종이 접을 때 도장 잉크가 다른 후보자의 칸에도 묻을까 봐 일부러 몇 초라도 말려서 접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투표 도장을 찍는 칸이 조금 넓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곧잘 하는데 장애인은 오죽 할까. 특히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의 경우 그 좁은 칸에 찍기란 너무 힘들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투표해야 할 때에는 비밀 투표가 사실상 위배되는 것이니 마음 한 켠이 걸릴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장애인이 투표를 해도 무효표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투표의 환경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사실상 빼앗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놀라움이 연속이었다. 빨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환경을 생각하여 빨대를 없애는 것은 좋으나 저자처럼 빨대가 항상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았다. 손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거나 잡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음료를 마시려면 빨대가 필수일 텐데, 환경을 생각하여 요즘은 빨대를 아예 비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니까 오히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환경 생각하다가 먹고 싶은 음료도 제대로 못 먹을 수도 있다.
키오스크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실 노인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 해보니 장애인이라고 다를까. 장애인도 키오스크 다루기가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동도 어렵겠다. 키오스크의 위치가 성인이 서 있을 때의 눈높이에 맞으니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이나 키가 작은 아동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일 텐데, 안타깝게도 키오스크는 그런 것을 배려하지 않은 동시에 요즘 현장에서도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 매는 비장애인을 봐도 먼저 다가가 도와주려는 점원들이 거의 없다 보니 결국 손님들끼리 십시일반 하는 경우도 많아서... 정말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머리로 알았지만, 다시 한 번 깨닫고 절감한다.
저자가 말한 모든 것들을 솔직히 다 해줄 수는 없다. 천천히 개도되어야 할 것들이다. 지금 되지 않는다 하여서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어쨌든 사회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내용들을 공감했지만 정말 공감했던 것은 처음 무언가를 설계할 때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여 만들었다면 훨씬 더 비용이 절감될 것이란 거다.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은가. 엘리베이터를 처음 건물을 만들 때에 만드는 비용과 건물 다 짓고 난 다음에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만들 때의 비용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항상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눈총을 받게 되는 건 소위 비용 문제가 있는데 애초에 처음부터 만들어도 좋았을 것들을 마치 생색내듯이,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이유를 붙여서 시설을 추가로 만들다 보니 오히려 그 필요성을 덜 느끼는 사람들은 "장애인 때문에 돈 쓰네"란 소리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란 생각이 든다.
장애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장애인은 보통 선천적인 경우보다 후천적인 경우가 98% 이상이다. 결국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때론 다쳐서 짧은 기간이나마 휠체어나 깁스를 통해서 이동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장애인을 배려한 구조로 되어 있다면 내가 잠시 동안 장애를 갖게 된다고 하여도 불편함은 줄어들 것이다. 생각해 보자.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만들어 놨는데 그걸 누가 이용하는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이용하려고 만들어 놓았으나 사실상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이 90% 이상 이용하고 있다.
장애를 가져도 불편함이 덜한 사회가 되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해 본다.
* 이 서평은 네이버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이벤트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