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울의 질곡에 빠지면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아 평생 우울의 감옥 안에 갇혀 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득하고 막막하다. 홀로 헤쳐 나가기 버거울 때도 많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럴 때 내게 필요한 도움은 일상에 밀착된 ‘도움이 되는 도움’이어야 한다. (86~7쪽)
『당신이 옳다』라는 심리 분야의 책을 읽었는데, 참 괜찮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을 움직였다. 공감에 관한 책은 많았지만 저자 정혜신류(流)의 공감은 말 그대로 공감의 장이자 치유의 출발선이었다. 갈등과 다툼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픈 마음을 부여안고 자기 소멸의 벼랑 끝을 걸어간다. 그 아픈 마음끼리 부딪쳐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불협화음에 대하여 가장 많이 듣는 해법이 '공감과 소통'인데, 우리의 공감능력이 사실은 어쭙잖은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에 불과한 헛다리 짚기였다는 걸 깨우쳐준다. 그런 말들은 일종의 언어폭력이기도 하다. 그럼 충조평판을 빼고 '소박한 집밥 같은 치유'의 공감은 어떤 것일까?
○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295쪽)
우리는 모두 고유하고 개별적 존재들이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나와 너 사이에 둘을 구분하는 경계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공감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아야 너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감에 대한 정확성이 높아진다(179쪽)."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경계'를 인식하는 공감이다. '경계'를 품은 공감이란 나와 너를 동시에 보호하는 공감이다. 이런 입체적인 공감이 이 책이 주장하는 논지가 된다..
감정은 존재의 핵이다. 우리에겐 정서적인 '내 편'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이게 되고, 비로소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다. '네가 옳다'라는 말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이 짧은 문장이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요인이라니... 결국, 핵심은 '감정'이다. 내 감정은 오로지 '나'이다. 나의 존재가 거의 지워질 때 사람들이 보이는 난폭성은 삶의 끝에서 부르짖는 '나의 존재'를 의식해 달라는 절규 같은 것이다. 나와 너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 공감만이 마음의 영역에 존재한 근원적 불안을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 존재의 인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란 걸 새삼 느꼈다.
○ 공감은 생각과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나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그 부위에 정확하게 꽂히는 치유 나노로봇이다. 이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정교하며 부작용 없는 치유제를 나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138쪽)
삶이 방전되어 '나'가 희미해질수록 존재증명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고" 이런 신음 같은 맞장구가 존재를 일깨우는 공감의 시작이란 걸... 그걸 몰랐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떤 거니?", "네 고통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니?"라고 물어볼 때, 즉 자신의 고통을 공감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 때 사람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는다. 이렇게 공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 중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힘"이 된다. 저자는 여기서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된다고 했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121쪽)."라는 부분에서 순간 섬뜩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씩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그런 "상처를 누르면 지내는 시간은 혼돈의 시간이다. 애증과 분노, 애증과 분노, 자책의 감정들 사이를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탈진의 시간이다. 널뛰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힘들어 방법만 있다면 그 시간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감정이란 감춘다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지는 고통도 많다. 그런 경우는 상처를 꺼내고 해결해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이때 억누른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하는 메스이자 연고가 바로 공감이다. 그 공감의 전제가 '존재'라는 거고... 존재 자체의 느낌이 만져지면 사람은 움직인다는 거다. 즉,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자기 존재와 그 느낌을 만나고 공감받은 사람은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과 길을 알아서 찾게 된다. 그것이 정확한 공감의 놀라운 힘이다. (149쪽)
○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274쪽)
○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247쪽)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268쪽)'라고 하였다.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상대의 고통을,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었던가? 돌아보면 나 역시 그저 공허한 충조평판으로 살아온 것만 같아 부끄럽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 했으니 이런 책으로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이 책에서는 정말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배워야 할 공감과 경계의 기술'이 들어 있다. 공감이란 실체를 진실로 들여다보게 하였다. 한 줄 요약하자면 '자기 존재감과 공간의 상관성'이라고 핵심어를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직장 독서 동아리에서 선정한 책이다. 다 읽고 나서야 문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한 책이란 걸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공감이 얼마나 얕고 관념적이었는지 새삼 느꼈다”라는 독후... 대통령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