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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조선의 마음을 담은 노래

[도서] 가사, 조선의 마음을 담은 노래

김용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YES24 리뷰어클럽에 김용찬 교수의 『가사, 조선의 마음을 담은 노래』가 오르기에 바로 신청했다. 당첨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째 희망이 통했는지 당첨이 되었다. 실은 그러지 않아도 읽어볼 요량이었다. 저자가 바로 예스무림의 '여중재(與衆齋) iseeman' 님이니까…. 이번 기회에 이력을 확인해 보니,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학·석·박사학위를 받으셨고, 현재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 한다. 저서도 꽤 소개되어있는데, 대표 저서로 이 책과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이 보였다. 책을 펼치고 단숨에 읽어내렸다. 처음엔 활자 시절의 간결한 교과서 편집 유형이라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했는데, 기우였다. 글의 흐름이 아주 매끄럽고 흥미를 놓치지 않도록 이어지면서도 품격이 있다. 이런 근저가 알찬 내용에 있다. 과연 고전시가의 전문가는 다르구나~하는 느낌으로 가득하다.


가사가 뭘까? 프롤로그를 보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읊조리는 긴 노래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4음보의 조용한 창(昌)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려나…. 소개되는 16편의 가사 중 첫 일곱 편(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송순의 '성산별곡',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고교 시절 교과서나 여러 교재를 통해 맛을 본 듯하여 익숙하게 와 닿았고, 박인로의 '누항사', 주인과 머슴(고공)의 목소리를 담은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 민중의 삶을 노래했다는 '우부가(愚夫歌)', '용부가(傭婦歌)', '갑민가(甲民歌)' 등은 생소하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차례를 훑어보면서 "응?"하고 눈길이 바로 간 가사가 있었는데, 작자미상의 '노처녀가'이다. 조선 시대 이런 노래도 있었나~ 싶어 보니 시집 못 간 노처녀의 서러움과 춘몽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 가사를 읽다가 오늘날의 5포 세대 청년들이 왜 떠올랐을까?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生涯) 어떠한가 // 옛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가 // 천지간(天地間) 남자 몸이 나만 한 이 하건마는 // 산림(山林)에 묻혀 있어 지락(至樂)을 모를 것가 //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앞에 두고 //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에 풍월주인(風月主人) 되었어라... 

'풍월. 즉 바람과 달은 자연을 대표하는 것이니 풍월주인이란 곧 자신이 자연의 주인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하겠다.'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이 문득 떠오른다.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 청풍명월의 자연을 즐기는 주인공이 나의 롤모델이니 말이다. 그 자연의 지극한 즐거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담양의 풍광은 문인의 이상향일까? 담양 봉산면 제월리 영산강변 작은 동산에 송순의 '면앙정가'로 유명한 면앙정이 있다. 소쇄원에 가까운 지실마을은 송강 정철이 살던 마을로 식영정(息影亭)이 있는데, 바로 성산별곡이 탄생한 근원이다. 이렇게 보면 담양은 가사 문학의 뿌리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인간(人間)을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없다 //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고 // 바람도 쐬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 밤으란 언제 줍고 고기란 언제 낚고 // 시비(柴扉)란 뉘 닫으며 진 꽃으란 뉘 쓸려뇨 // 아침이 모자라니 저녁이라 싫을쏘냐 // 오늘이 부족커니 내일이라 유여(有餘)하랴 // 이 뫼에 앉아보고 저 뫼에 걸어보니 // 번로(煩勞)한 마음에 버릴 일이 전혀 없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과연 마음처럼 격조 높은 풍류를 즐기는 자연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김홍도, 金剛四郡帖(금강사군첩) 중 총석정 사진: https://ko.wikipedia.org/wiki/%EC%B4%9D%EC%84%9D%EC%A0%95#/media/%ED%8C%8C%EC%9D%BC:ChongSeokJeong.jpg


관동별곡은 요즘 교과서에도 나오겠지? 그 옛날이 아스라하다. 가장 기억나는 대목은 총석정 부분이다. 외조부의 유첩에 금강산 만물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총석정을 그린 엽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된다면, 아니 구속 없는 자유로운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금강산을 거쳐 함경도까지 쭈욱 걸어가 보고 싶다.

금란굴(金蘭窟) 돌아들어 총석정(叢石亭) 올라가니 // 백옥루(白玉樓) 남은 기둥 다만 네 개 서 있구나 // 공수(工垂)의 솜씨인가 귀부(鬼斧)로 다듬었나 // 구태여 육면은 무엇을 상(象)톳던고…. 

공수는 중국 고대 순임금 때의 뛰어난 장인이라 하고 귀부는 귀신이 지닜다는 도끼인가 보다. 여하튼 사진으로 본 총석정 주상절리의 기둥은 정말 대단하였다. 북한은 관동별곡 코스만 환경친화적으로 개방해도 먹고사는데 문제없을 듯한데…. 핵무기만 쥐고 엄포나 놓고 있으니…. 음...


고교 시절엔 '미인'이라 하면 자다가도 일어날 시기이다. 하지만 고전시가에서는 주로 왕을 지칭하는 용어로 인식된단다. 그래도 시험을 친 듯도 한 다음 내용은 참 맘에 든다…. 

동풍이 건듯 불어 적설(積雪)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구나 // 가뜩 냉담한데 암향(暗香)은 무슨 일고 // 황혼에 달이 좇아 베개맡에 비추니 // 느끼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 저 매화 꺾어 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자 // 님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까…. 매화의 별칭이 미인이기도 하다지…. 난 매화가 좋다. 

많은 후대 문인들은 정철의 가사 작품 중 속미인곡을 첫째로 꼽는 모양이다. '우리말 표현의 적절한 사용과 더불어 대화체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특히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세 편을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이라 극찬하였고, 초나라 굴원의 '이소(離騷經)'에 비견하기도 했다. 하여튼 대단한 송강 선생이다...


추언: 우와... 2021년 수능 국어 시험에 이 가사 이 부분이 나왔다. https://datanews.sbs.co.kr/pds/202012/2021%ED%95%99%EB%85%84%EB%8F%84_%EB%8C%80%ED%95%99%EC%88%98%ED%95%99%EB%8A%A5%EB%A0%A5%EC%8B%9C%ED%97%98_%EA%B5%AD%EC%96%B4_%EB%AC%B8%EC%A0%9C.pdf


누항사(陋巷詞)도 한마디 소회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누항이란 '누추한 골목'이란 뜻이라 한다. 어원을 찾아보니 『논어』의 공자와 안회의 대화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데, 가난한 삶 가운데서도 학문을 닦으며 도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자주 언급된단다. 임진왜란 이후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황폐해진 농촌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는데, '수의(隨宜)로 살려 하니 날로 조차 저어(齟齬)한' 그 힘겹고 곤궁한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작금의 우리네 삶 또한 신념이란 마땅함을 좇아 살려 하나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에 헤매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도 자신의 이상을 지키려는 다짐이 좋아 보였다. 어리석고 게으른 인물들의 행태가 그려진 '우부가'나 '용부가', 현실비판 가사인 '갑민가'도 흥미로웠다. 예전엔 정극인의 상춘곡이 가사의 효시라고 배웠는데, 지금은 고려 시대 나옹화상의 '서왕가'를 최초의 가사로 인식하는가 보다. 어쨋거나 16편의 가사 풀이가 품격이 있어 참 읽어볼 만한 역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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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iseeman

    잘 읽고 갑니다.

    2020.12.02 14:0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unbi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0.12.02 17:01
  • 파워블로그 블루

    저희 밭이 소쇄원 조금 지나서 있어요. 전에는 남면이었는데 지금은 가사문학면이 되었습니다. 그곳이 성산별곡이 탄생된 곳이군요. ^^

    2020.12.23 20:5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unbi

      블루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바로 그런 연유였군요. 가사문학면은 여러모로 잘 결정한 행정판단으로 보이구요. 고맙습니다, 블루님...^^

      2020.12.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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