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를 좋아하나 한문에 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중국 고전을 좋아합니다. 한자 세대이기도 하지만 한자는 글자 하나에 많은 축약이 담겨 있어 생각의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배우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나 동양적 사유의 바탕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사고확장형입니다. 예를 들어 공(空) 한 글자 하나에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는 특이한 문자 체제입니다.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여 합리적이지 않은 면도 있지만, 사상적인 면에서는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문자를 통해 자신만의 의식을 넓혀나갈 수가 있습니다.
한시의 멋을 안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그냥 시험용으로 외우고 이해했을 뿐이었고, 그 이후로도 중국의 당대 3대 시인이라는 이백, 두보, 백거이 등에 끌려 당시선집(唐詩選集)을 읽긴 했는데 전문가의 해석에 감명을 받았거나 그런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서정적인 자연과 삶의 쓸쓸함을 연결하는 실존적 자각에 가끔 공감하곤 했지만요. 그러다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시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사성 성조를 통해 이론으로만 배운 한시의 구조를 깨우치게 되었다는 거지요.
시는 운율입니다. 요즘의 현대시는 파격에 가까운 언어적 유희일지 몰라도, 오래된 시들은 리듬이 있습니다. 한시를 중국어로 조금만 크게 리듬을 넣어 읽으면 악부(樂府)가 아니라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립니다. 어떤 정형의 틀이 미리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듣기 좋고 느낌 좋은 리듬이 한시의 정형으로 고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EBS의 [세계테마기행] '중국 한시 기행'을 보면서 더욱 실감했습니다. '평기식(平起式)'이니 '측기식(仄起式)'이니 압운(押韻)이니 하는 공부가 뭔지 절로 느꼈습니다.
이제는 유작이 되어버린 신동준 선생의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 수정 증보판을 읽고 있습니다. 한번 휘리릭 보고 책장으로 보낼 책이 아니라서 곁에 두다 보니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의 말을 빌리면, 장섭의 ‘주소본’을 저본으로 삼기는 했으나 진완준의 ‘보주본’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해당 시마다 주석으로 반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주석서를 두루 참고하되 시의에 부합지 않는 불필요한 주석은 과감히 생략하고 상세한 주석이 필요한 대목은 『사기』 등의 사서 등을 참조해 독자적으로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청(淸)나라 건륭제 28년(1763) 손수(孫洙)가 편찬했다는데, 당나라 시인 77명의 주옥같은 시 320수(원래 310수 + 주소본 추가 10수)와 부록 4편이 실려 있습니다. 오언/칠언 고시(古詩), 오언/칠언 율시(律詩), 오언/칠언 절구(絶句)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는데요, 옛 기억을 더듬어 한시 용어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총 8행의 시가 '율시'이고, 율시의 절반인 4행으로 된 시는 '절구'라고 합니다. 글자 수나 압운(일종의 라임 rhyme)/ 각운(행의 끝에 들어가는 압운) 등 한시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시를 '고시'라고 하구요.
일단 한 수 감상부터 해야지요, 오언고시 '005. 이백李白 - 하종남산과곡사산인숙치주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 종남산에서 내려와 곡사산인의 집에 들러 술을 마시며' 편의 일부(1~4구)입니다.
暮從碧山下 모종벽산하 날 저물어 푸른 산에서 내려오니
山月隨人歸 산월수인귀 산 위의 달도 나를 따라오네
?顧所來徑 각고소내경 문득 지나온 길 되돌아보니
蒼蒼橫翠微 창창횡취미 푸르스름한 산 기운이 기다랗게 뻗어 있다
......
산행을 많이 하는지라 이 시의 느낌이 완연히 와닿습니다. 특히 지리산이나 설악산 종주하면서 이런 마음이 많았지요. 그런데 한시는 그 명확하지 않은 문자의 여백으로 인하여 해석자의 시적 감각에 따라 표현이 많이 달라집니다. 4구의 창창蒼蒼은 초목이 무성한 모습이라 하고 취미翠微는 산에 어렴풋이 끼는 흐릿한 기운이라 합니다. 다른 분의 글을 보니 "푸르고 푸르구나, 안개 산허리를 둘렀네." 또는 "푸르디푸른 안개 기운 산허리를 둘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비전문가의 처지에선 그려지는 이미지만 좋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주선酒仙 이백의 시도 더러 좋아하지만 취음선생醉吟先生 백거이의 삶과 시가 더 좋습니다. 지난번 중국 낙양에 갔을 때 용문석굴 맞은 편에 있는, 백거이가 거주했다는 향산사(香山寺)와 그의 무덤 백원白園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백이야 하늘이 내려준 시를 쓰니 흔히 시선詩仙이라 일컫고, 두보는 고치고 또 고쳐 시를 짓는 완벽주의 시성詩聖에 비유합니다. 백거이는 현실적 소재를 많이 다루어 누구나 쉽게 시를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여 ‘시의 요술사’ 곧 시마(詩魔)로 한다더군요. 그 유명한 장한가 마지막 부분을 읊어 봅니다.
......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밀어를 속삭일 때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連理枝 되고 싶다고 말했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가 장구해도 다할 때가 있으나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한은 면면해 끝날 날이 없으리라.
해석이 입에 착착 감기는 건 아니지만 비익조(전설상의 외눈과 외날개를 가진 새. 자신과 다른 쪽의 눈과 날개를 만나야 비로소 완전한 새가 될 수 있다) 연리지(두 그루의 서로 다른 나무가 자라는 도중에 가지가 서로 붙어버린 것)는 누구나 꿈꾸는(꾸었던) 깊은 사랑의 이야깃거리로 각종 문학에 등장하고 있고, 천장지구(하늘과 땅이 영구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 원래 『노자』 제7장에 나오는 구절)는 유덕화 오천련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홍콩 영화가 겹쳐집니다. 사랑은 언제나 비익연리처럼 한 몸이 되길 원하나 현실은 항상 아픔을 동반하니까요.
고(故) 신동준 선생은 참으로 대단한 번역가였지요, 중국 고전 사상에 대한 박식함과 그 왕성한 번역의 힘은 존경 수준을 넘어가더군요. 그렇다고 번역이 완전무결 천의무봉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안목은 배울 것이 너무 많은 분이었습니다. 특히 청나라 말기 기서로 꼽히는 이종오(李宗吾 리쭝우)의 '후흑학'은 다른 분이 번역하지 않았던 책으로 알고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의 이름을 기억했더랍니다. 조금 더 사셨더라면 좋았으련만…. 그저 명복을 빌 뿐입니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 ! 별 다섯 ★★★★★ 도서입니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