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시를 왜 쓸까요? 시인이 아니니 알기가 참 만만찮습니다. 아마도 삶의 절망이든 희열이든 그 달뜬 내면의 감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요. 누가 공감해 주든 아니든 그런 걸 초월하여 아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열정이며 삶이었겠지요.
그런데 이왕이면 자신의 언어가 뭇 사람들의 마음에도 통하여, 언젠가는 자신의 시 한 줄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하기를 갈망하지 않을까요? 그런 희망이 시인의 근원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나태주 시인이 어떤 분인지 아직도 잘 모릅니다만, '광화문 글판'으로 이름 붙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를 통해 시인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이 글이 은근히 자기 몰입하게 하는 매력이 있더군요. "풀꽃"이란 제목과 잘 어우러져 짧지만 강렬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더라는 거지요. 거친 시대를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에게 스스로를 다독거릴 수 있는 희망의 감성이 와닿았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나.태.주.란 시인의 이름이 각인되었지요.
그렇다고 나 시인의 시집을 더 읽어본 건 아닙니다. 평소 '시'를 사랑하거나 그런 취향이 아니니까요. 어느 날 블로그 지인께서 책을 한 권 보내 주시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기쁜 마음이었으나 읽고 싶은 책은 있어도 소유하고픈 책이 없다는 사실에 저도 좀 놀랐습니다. 독서력이 뛰어난 친구에게 요즘 잘나가는 책이 뭐 있는지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라**님이 강력하게 밀고 있는(?) 『나태주, 시간의 쉼표』가 떠올랐고, 일력이 아닌 소장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탁상용 일력을 그대로 제본했나 봅니다. 책은 한 손에 들어오는 문고판 정도의 크기(110*160*22mm) 입니다. 나 시인이 직접 그렸다는 스케치 같은 그림과 짤막한 생각의 나열 같은 글이 어우러져 이어집니다. '풀꽃 시인'으로 불릴 정도라더니 꽃이 연상되는 글이 많습니다. 찬찬히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니 머리가 어질해집니다. 365일 일력의 글을 단시간에 읽어내리다 보니 오는 현상입니다. 그냥 하루에 몇 글씩만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봄꽃이 피고 지는 시절이기에 관련 글이나 하나 올려야겠다고 이리저리 앞부분을 뒤적거립니다. 익숙한 풀꽃 시가 보입니다.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그리고 소개할만한 쪽을 찾아 몇 장을 더 찍어봅니다. 부질없는 일이란 생각이 스칩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읽을 사람은 읽을 것이고,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마음이 번잡하고 바쁜 나날 속에서 이런 간단한 글귀에서 잠시 넋 놓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는 것, 그게 시의 묘미이겠지요. 그런 시간을 갖게 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