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민음사 5권)
1) 소설 레미제라블…. 웬만하면 '장 발장' 정도는 어린 시절 듣고 오는 고전 중의 고전! 행운이 있어 민음의 책을 선물 받았고, 마침 영화 '레미제라블'의 상영과 맞물려 읽을 힘을 내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제게 오다니…. 정말 2012년의 독서 마무리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봅니다.^^
내용의 줄거리는 다 아는 것처럼 의외로 간단하지요. 배고픈 일곱 조카들을 위하여 빵 한 덩이를 훔치다가 19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장 발장. 출옥 후 냉대를 받다가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하루를 따뜻하게 대접받지만, 그만 은(銀)식기를 훔쳤다가 금세 잡힙니다. 주교는 은촛대는 왜 가져가지 않았냐며 위기에서 구해주지요. 그리고 엄숙한 어조로 한 말씀,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천주께 바친 거요.(1부 193쪽)". 당연히 감명 받아야죠. 이를 계기로 장 발장의 삶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속죄의 마인드로 바뀝니다. 마들렌이란 이름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다가 시장이 되는데, 여기서 장 발장을 쫓는 자베르 경감이 등장합니다. 어째 잘 넘어가는가 했는데 어디선가 장 발장이 잡혔다는 이야길 듣고 법정으로 달려가 자신이 장 발장이라고 밝혀버립니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양심의 발로겠지요. 이즈음 어린 딸을 위해 몸을 팔다 죽어가는 팡틴의 부탁으로 사악한 테나르디에 손에서 코제트를 구출하여 프티 픽퓌스 수녀원으로 들어가 10년간 잠적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코제트가 자라서 그만 젊은 공화주의자 마리우스란 청년과 사랑에 빠지네요. 장 발장은 코제트를 위해 바리게이트 항쟁에서 죽기 직전의 마리우스를 구출하고 둘의 결혼을 성사시키지만 조용히 사라집니다. 나중에 전말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장 발장을 찾게 되고 이들 앞에서 장 발장은 숨을 거둡니다….
2) 워낙 잘 알려진 소설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말하기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전 권에 흐르는 기본을 한 마디 읊어보라면 '인간 본연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용서와 사랑! 말은 쉽고 행동으로는 어려운, 그러나 지향해야할 '인간성'을 빅토르 위고는 말하고자 하는 거겠지요. 1800년대의 프랑스 민중들의 삶이 아주 고단했나 봅니다. 오죽하면 이 책의 제목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비참한(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겠습니까.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다(1권 31쪽)."는 말이 참 와 닿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혁명을 꿈꾸는 젊은 진보주의자들이 흘린 피는 부질없어 보이나 사실은 변화의 초석이지요. 작가는 혁명을 통해 민중의 지난한 삶이 변화되길 바랬을까요? 사실 여기서 헷갈립니다. 장 발장을 통해 보여주는 점진적이고 포용적인 변화와 ‘ABC(Abaisse)의 벗’들이 보여주는 급진적인 변혁이 대립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대중의 각성을 가져온 젊은 아베쎄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그리움일까요?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장 발장과 자베르의 관계야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 (Antithese;反定立)의 고전적 기법이니 그러려니 하구요, 미리엘 주교와 장 발장, 황제와 자베르 그리고 테나르디에의 대립구도에서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탈출구이며 미래의 희망이겠지요. 어쨌거나 수렁에 빠진 한 인간이 어떻게 성스러운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 신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짐작할 뿐이지요. 그런데 이런 심오함을 이해하는 덴 동양적 사고도 꽤 유용하다고 나름대로 이해해 버립니다. 얼마 전에도 인용했던 맹자의 고자장(告子章)을 떠올리면 빅토르 위고의 플롯이 바로 보입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셨으니, 혹시 작가가 맹자의 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아니겠죠? ^^
3) 민음사판 레미제라블에 대해 잠깐 평을 해야겠습니다. 지금 시중에 나온 완역판 중에서는 민음사판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고, 번역도 가장 낫다고 말들 하더군요. 번역자의 레벨도 최고 수준이었기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대치에 조금 미치지 못하네요. 단문 중심으로 읽기 편한 번역인 것은 맞으나 한문 투의 문장으로 매끄럽지 않은 면이 많아 고개가 갸우뚱뚱뚜웅. 그래서 한번 찾아보니 1962년 출간된 한 출판사의 3권짜리 번역본을 바탕으로 정교수님이 한 자 한 자 원문과 대조해 가며 거의 새로이 번역하다시피 다듬었다더군요. 분명히 현대적 문체로 바뀐 것은 맞는데, 왜 그렇게 어색함이 남아있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 권에 걸쳐 남아있는 구시대적 단어는 교수님의 시대언어로는 아주 정상적으로(저에게도 크게 문제없이) 번역한 것은 맞으나, 한문은 거의 모르고 한글 체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신세대에겐 어색하고 모르는 단어들인지라 난처함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런 점에서 언젠가 다시 한 번 새로운 완역판이 나올 여지를 남겨둔 셈이라 생각해 봅니다. 결후(結喉), 역홍예(逆虹霓) _5권 하수구에서 장 발장과 테나르디에가 만나는 장면에서_ 이런 말 아는 사람 요즘 거의 없지 않을까요? 이런 부분이 크게 많았다고는 생각 안하지만 그래도 쉽게 고쳐야할 대목이 더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가끔씩 나오는 이 책의 번역 투로 말해보면 그저 홍복(洪福)입니다….^^
2. 영화 (톰 후퍼 감독, 2012)
지금 극장에는 톰 후퍼 감독과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을 맡았으며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이 출연한 영화 '레미제라블'이 상영 중입니다. 엊그제 보고 왔습니다, 벗님, 꼭 보려 가십시오. 후회하지 않습니다. 드물게 잘 된 영화입니다. 물론 1년에 몇 편 안보는 저의 말이니 웃기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저번에 본 ‘블랙 스완’ 보다 몇 배는 나아보였습니다. 당연히 영화 보는 비용 아깝지 않은 별 다섯입니다. 오히려 책 좀 읽는다는 분이 안보면 분명 후회하게 되실겁니다. 책과 다른 감동, 꼭 보십시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와서 평론가나 본 사람들의 평을 보니 별 4개 정도더군요. 그 이유의 핵심에 뮤지컬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Song-Through 형식)로 이어지니 일반 영화 생각하고 가신, 뮤지컬에 젬병인 분들은 별 하나로 평점을 줬더군요. 이해합니다. 158분 동안 노랠 들었으니…. 그런데 똑똑하신 분들도 뮤지컬하고 비교하여 고주알미주알 늘어놓으신 분이 많더군요. 뮤지컬은 뮤지컬, 그걸 영상화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분들은 원작을 읽어봤을까요? 단언하건대 많은 분이 읽지 않았을 거라 속단해 봅니다. 제 관점으론 이런 감동을 주는 영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에서 구현할 수 없는 웅장한 스케일을 잘 살려낸 영화입니다. 물론 축약이 있지만 그래도 원작에 충실하고, 출연배우들이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대단합니다. 특히 앤 해서웨이의 'I dreamed a dream'…. 감정이 절절히 스며든 게... 아~ 소름 짠~. 압권입니다. (동영상 하나 찾아 붙여봅니다). 그리고 개인적 느낌 하나, 팡틴 역의 앤 해서웨이와 김태희,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한예슬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그냥 그렇다는 얘깁니다. ^^*
사실 영화를 보려가기 전날 밤 또다른 ‘레미제라블’ 영화를 봤습니다. 밤에 EBS에서 빌 어거스트 감독의 1998년작 레미제라블(출연 : 리암 니슨, 우마 서먼, 제프리 러쉬, 클레어 데인즈)을 방영하더군요. 적시에 적절하게 잘 봤다는 생각을 톰 후퍼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답니다. 원작과 어울려 두 영화의 장단점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올 2012년, 레미제라블이 이렇게 3편이나 와닿아 버렸네요. 아마 EBS에서 재방할 때 꼭 이 영화도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레미제라블의 내용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만약 완역본 책만 읽었다면 곧 많은 내용이 잊히고 말았을 겁니다. 영화가 있어 감동할 수 있었고, 영화가 무엇을 놓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톰 후퍼의 영화에서는 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하수구로 구해내다가 테나르디에를 만나게 되는데, 테나르디에는 마리우스의 반지를 슬쩍~ 합니다. 이게 나중에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했음을 밝히는 증거가 되지요. 그런데 원작은 반지가 아닙니다. 뭔지는 비밀이구요.^^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결혼할 때 장 발장이 코제트의 신분세탁을 한다는 거, 이런 건 원작을 읽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와 원작을 같이 보고 읽으면 그만큼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5권짜리 원작, 읽을 만합니다. 앞에 지적했던 것처럼 요즘 잘 쓰지 않는 한문 투의 단어들이 가끔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술술 넘어가고 문학적 배경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책과 영화를 놓치면 정말 후회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