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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ungga007
200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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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문학에 무지하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세익스피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영국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의 문학은 여러 곳에 인용 될 만큼 유명하니까 말이다. 또한 내가 처음 접해 본 소설이 <로미오와 줄리엣>, <뜻대로 하세요>이었다. 그 책은 그림이 정말 예쁘고,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책이라 읽고 또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 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 <햄릿> 또한 굉장히 유명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구절 또한 낯설지 않다. 비록 이 책에선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바뀌기는 했지만 말이다.
가끔 교과서에서 잠깐 희곡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곰곰히 생각하고 곱씹으면서 읽기는 처음이다. 처음에 대사와 약간의 동작이 괄호 안에 있는 것만 보고서 내가 이 책을 이해 못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근데 기우였는지 싶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공기가 되어서 그들의 대화나 해동을 보는 듯한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인물들이 이것 저것 비유해 가면서 대사를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많았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인물들, 그 나라 속담이 나오는 부분이 많아서 대충 어림짐작으로 읽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래에 주석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긴 했지만, 더 복잡하기만 했다.
어떤 책에서 햄릿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인해 왕을 살해하지 못하고 계속 고민했다고 한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무뎌서 인지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저 햄릿이 왕비를 원망하고, 행위를 비난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왕과 왕비가 싫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는지 정말 양심에 털 난 인간들이다. 내가 <햄릿>을 읽어나가면서 햄릿이 그들은 언제 죽이나만 생각했을 정도였다. 햄릿도 참 답답한 인간이다. 죽일 것이면 빨리 죽이고, 안 할 거면 그냥 오필리아와 사랑이나 키워나갈 것이지, 그걸 갖고 질질 끌고, 앞에 대고 말하면 될 것을 연극으로 그들의 행위를 보여 주는 것을 보고, 나는 "저 인간 참 답답하다."라며 혀를 찼다. 그렇게 햄릿에게 못마땅해하면서도 나는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나도 저렇게 우유부단하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다가 건지는 게 별로 없는 성격이 참 나랑 많이 비슷하다. 그리고 약간 돌려 말하는 것도 나랑 닮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것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힘들 게 한다는 것을 알아서 요즘은 그런 성격은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햄릿도 살아 생전에 그것을 깨달아서 빨리 고쳤더라면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 참 아쉽다. 그리고 폴로니어스의 행동은 한마디로 "바보 그 자체"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재상이라는 직위에 앉아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하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또한 마지막에 햄릿, 레어티즈, 클로디어스가 죽는 장면에서 나는 진짜 이상하게 죽는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다 죽으면서 끝난다는 것이 어찌 좀 찝찝했다. 그렇다고 다들 손에 손잡고 "우리 친하게 지내요." 이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알 수 없이 묘한 느낌의 허무함이 들었다. 그것이 세익스피어의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번역이 잘못 된 것인지, 내가 무지해서 그런지 정말 감동이란 건 별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저 책을 다 읽었다는 후련함만 느껴졌을 뿐이다. 대작을 정말 형편없게 읽은 거 같아서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라고 생각해서 이제부터 세익스피어 이름 들어간 것에는 한숨부터 쉬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좀 이 책은 나와 안 맞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과정은 참 고행이었다. 세익스피어만 아니었어도 책을 창 밖으로 집어 던졌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허, 과연 그래. 헌데 지금은 턱 떨어져 구더기 마나님 밥이 되고, 묘파기꾼 삽질에 대갈통을 얻어맞네. 알아볼 재주만 있다면, 세상이 기막히게 도는 이치 여깄구만. 저 뼈다귀들을 키운 값이 던지기 노리갯감밖에 안 돼? 생가가니 내 뼈가 쑤시는군.